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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통달 Aug 10. 2021

오늘, 출근길

또 급똥...

또 시뻘건 급행 버스가 먼저 온다. 시뻘건 급행 버스의 요금은 1650원, 시퍼런 일반버스의 요금은 1250원. 지하철역에서 환승을 위한 버스 이용이라 400원을 추가로 부담하는 것이 여간 아깝지 않다. 그 400원 비싼 시뻘건 놈을 보내고 나니 시퍼런 놈이 좀처럼 오지 않는다. 그냥 400원 더 주고서라도 탈 걸 그랬나? 내가 이용하는 버스정류장에 버스 도착 알림 전광판이 없으니 이렇게 하루 시작부터 선택을 강요당하는 더러운 기분을 맛본다. 매일 나는 400원이란 돈 때문에 쪼잔해지고 쪼잔해진다. 제기랄!



오늘은 운이 좋다. 버스에서 내려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니 전동차가 딱 기다리고 있다. 긴 좌석의 가장자리 스테인리스 봉으로 오른쪽을 막아주는 좌석에 편안하게 앉았다. 지하철 종점역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지하철 전동차 안에서 사람들의 모습은 대부분 비슷하다. 거북목으로 스마트폰을 보며 구부정하게 앉아 있는 모습… 나는 스마트폰을 가방 안에 넣고 책을 꺼냈다. 출근길 전동차 안에서는 책이 술술 읽힌다. 한창 책 읽기에 집중하고 있는데, 맞은편에 앉아 있는 남녀가 서로 이야기를 하며 분위기를 흐린다. 왼쪽에 있는 젊은 남성은 전화로 코로나 백신의 종류와 부작용에 대해서 통화를 한다. 책을 가방 안에 넣고 스마트폰을 꺼냈다. 나도 사람에서 거북이로 변한다. 시바!



카카오톡 창을 열었다. 어제 여러 가지 단톡방에서 내가 떠들었던 대화를 다시 읽어본다. 혼자 일하는 시간이 많아서 사람과의 소통에 목이 마른 탓인지 단톡방에서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는 버릇이 생겼다. 외로움의 방증이다.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면 꼭 실수를 하는 법이다. 얼굴을 보지 않고 대화를 하니 제동력 없이 분위기를 타고 쭉 미끄러져 내려간다. 어제도 단톡방에 없는 사람을 비난하고 욕을 한 나의 노란 대화창이 보인다. 부끄럽다. 말로써 하는 대화는 기억의 한계로 쉽게 잊히기라도 하지만, 스마트폰에 저장된 나의 대화는 내가 지워버려도 누군가의 스마트폰에 저장되어 끝까지 나의 저질 인격의 징표가 된다. 이런!



스마트폰을 보다가 내려야 할 역을 지나쳤다. 돌아서 다시 오려다 그냥 내렸다. 사무실까지 터벅터벅 걸어간다. 똥이 마렵다. 어제저녁을 좀 많이 먹었더니 나의 소화기관은 밤새 풀가동되어 음식물을 똥으로 만들어 배출구로 밀어내고 있다. 식은땀 줄줄 흘리며 상가 화장실을 수색했다. 뭔 화장실에 보물이 들어있는지 다들 열쇠로 막아 놓았다. 다행히 문이 열린 화장실을 찾았다. 급하게 바지를 내리고 오물을 쏟아냈다. 그런데 휴지가 없다. 이런, 시바, 제기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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