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을 시골에서 나고 보냈다. 학교에 가려면 10리 길, 지금으로 치면 4km인 비포장 산길을 걸어 몇 개의 동네를 지나야 다다를 수 있었다. 가는 길에 커다란 저수지가 있는데 오늘처럼 추운 날은 꽁꽁 얼어붙어 아이스링크 같았다. 저 얼어버린 저수지를 가로질러 단숨에 학교에 갈까? 아니야 건너다 얼음이라도 깨지면 시베리아 살아남기를 해야 하니 그냥 가던 길 가자. 그 앞에 서서 여러 번 갈등을 했었다.
산길에는 또 재미난 일들이 많았다. 봄에는 분홍색 진달래를 꺾어서 콜라병에 꽂아 선생님 교탁에 올려놓을 마음에 얼굴이 붉어졌고 여름 장마철 논두렁에서 흘러넘치는 미꾸라지를 보는 일도 신기했고 가을이면 가을걷이하다 남은 밭에서 땅콩을 주워 까먹으며 가는 일도 즐거웠다. 겨울엔 발이 푹푹 빠지고 내 허리만큼 눈이 차서 손발이 동태가 되어도 겨울에 피어난 하얀 눈꽃을 보며 등하교하는 길은 그 자체가 즐거운 놀이 여행이었다. 그래서일까. 단 한 번도 6년 동안 개근을 놓친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호기심이 참 많은 아이였다. 나보다 5살 위인 언니를 따라 학교에 가겠다고 떼를 쓰자 아버지는 내게 깍두기공책과 연필을 사주셨다. 언니의 학기가 지나버린 교과서는 보통 화장실 휴지로 사용되었는데 그것은 나의 학습지였다. 학교에 얼른 다니고 싶어 그것을 읽고 따라 쓰고는 입학도 하기 전에 한글을 일찍 익힐 수 있었다.
게다가 나는 할아버지하고 많은 것을 하며 지냈다. 할아버지께서는 직접 나무를 베다가 지게를 만드셨다. 소나무를 쌀겨에 묻어서 불을 붙이고 그것을 그을리셨다. 또 싸리나무를 모아서는 발을 치거나 짚으로 새끼를 꼬셨다. 지금처럼 겨울 휴식기에는 화투로 패를 떠 매일 운세를 맞추셨다. 그는 종종 내게 떠보라고 시키셨고 어린 내가 그것을 척척 해내는 것을 보시고 신통해하셨다. 할아버지는 일본어를 가르쳐주시기도 했다. 이런 과정에서 할아버지가 하시는 모든 일에 고사리 손을 거들었고 할아버지는 나를 영특한 특급 조수로 인정해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성적이 뛰어난 학생은 되지 못했다. 일등을 하는 친구는 따로 있었고 호기심 천국 나는 수업은 잘 들어도 머릿속에 생각이 많아 집중을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궁금한 것을 질문하다 친구들의 눈총을 받은 적도 있고 선생님 말씀에 토를 자꾸 달아서 수업시간을 웃음바다로 만드는 장본인이 나였다. 그러니 뭐 성적이 잘 나올리는 만무했다. ‘말을 잘한다’, ‘노래를 잘 부른다’ 이런 소리를 자주 듣고 자랐지만 정작 시험에 나오고 성적에 관련된 답에 대해서는 잘 듣지 않은 그런 학생이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나의 호기심은 마찬가지였다. 영어공부를 하다가 이 단어는 왜 이렇게 길고 발음은 왜 이렇지. 이런 표현은 왜 이렇게 해석이 되는 건지. 사람에 대한 호기심.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호기심. 어느 날은 어른들이 하셨던 욕의 의미가 무엇인지 찾아보기도 했다. 지치지 않는 나의 호기심이 좋아하는 일을 찾게 하고, 하고 싶은 일을 만들어가는 나를 있게 했다.
그때 내가 얼음 위를 가로질러 직선코스로 학교에 도착했더라면 어떠했을까. 오래 걸려 돌아갔지만 산길을 돌면서 스스로 탐색하고 고민했던 그 시간이 지금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끈기 있게 할 수 있게 해 준 자양분이 되었다.
세상에 대한 나의 관심과 호기심이 가져다준 '점들의 연결'이었다.
관심을 가지면 관찰하게 된다. 관찰은 응용하고 융합하게 만든다. 당연함을 부정하고 관점을 달리해보자. 그러면 매일이 그리고 세상이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