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sssun Mar 11. 2017

금덕이는 지금 상하이 #9

상하이의 관광지 예원과 와이탄, 그리고 역사
































































상하이에는 여러 관광명소가 있지만 꼭 잊지 말아야 할 관광지가 있다면 바로 와이탄과 예원일 것입니다.

중국의 큰 대도시라 하면 베이징과 상하이가 있겠지요. 하지만 땅덩어리가 큰 만큼 사람들도, 두 도시의 느낌도 정말 많이 다릅니다.

베이징이 세련되지는 않지만 호탕하고 정겨운 느낌의 '아 이 곳이 중국이구나' 라는 느낌이라면 상하이는 일찍부터 외국에 개방이 되어서 그런지 '여기가 정말 중국이야?'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세련되면서도 아기자기하고 소박한 느낌이 들 때가 많습니다.

이는 일찍부터 상하이가 외국에 개방된 시대적 배경의 차이도 있겠지만 내륙 깊숙히 들어와 있는 베이징과 바다 옆에서 생활의 기반을 잡았던 상하이의 생활 방식의 차이도 있을 것입니다. 필자는 그 대표적인 차이를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베이징의 이화원과 상해의 예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중국의 최대 황가원림이라고 불리는 이화원은 1888년 중국의 유명한 악녀 서태후가  제2차 아편전쟁으로 파괴된 청나라 건륭제의 대규모 별궁을 재건하여 만든 여름별장입니다. 그 면적은 여의도 윤중제(하천의 넓은 윤중을 보호하기 위하여 그 주위에 만든 제방/출처: 네이버캐스트지식백과) 안쪽의 면적과 동일한 2.9평방킬로미터라고 하는데 그 중의 3/4을 차지하고 있는 쿤밍호가 사람을 동원해서 바닥을 파낸 완전 수작업 호수라고 하니 그 규모가 저절로 감탄을 불러일으킵니다. 이화원이 황실의 별궁이라면 예원은 귀족의 정원입니다.

 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니 예원이 이화원을 본따서 만든 정원이라는 글을 쉽지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알아본 결과 이화원의 전신이 되었던 청나라 건륭제의 별궁 청의원이 있던 시기(1700년대)를 따져본다고 하더라고 본따서 지을 수가 없는 약 100여년 이상의 격차가 있습니다.

<예원이 지어진 시기-1500년대 명나라/ 이화원이 지어진 시기-1800년대(1700년대 청나라의 별궁 청의원을 1888년 이화원으로 재건)>

  예원이 더 먼저 지어졌기 때문에 예원이 이화원을 본따서 만들었다는 것은 아닌 것으로 . ^^

(그런데 예원이 이화원을 본따서 만들었다는 말은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요? 저도 자칫하면 그렇게 적을 뻔... ^^;; 혹시라도 1956년 이후 상하이 정부가 손상된 예원 보수를 할 때 이화원을 참조했는지에 대해서까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혹시 더 정확한 정보를 아시는 분은 쪽지나 답글 부탁합니다. )


예원은 1599년 명나라의 관리 반윤단이 고향에 계시던 아버지의 편안한 노후를 위해 만들기 시작한 원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정원이 완공되었을 때, 이미 그의 부모는 세상 사람이 아니었고, 그 자신도 몇 년 살지 못하고 병으로 죽었다고 합니다.


이화원이 그 웅장함에 자연속 한 가운데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라면 예원은 나무의 가지 하나하나, 연못, 풀 하나까지 누군가 원하는 모습대로 만져놓고 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잘 정돈되어 있습니다. 탁 트인 시야로 모든 정원이 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니지만 각각의 문의 지날 때마다, 또 다른 테마가 있는 듯한, 서로 다른듯 같은 듯 통일감있는 조화가 세련되고 안정감있게 느껴집니다.

 예원은 그 건축물들도 멋지지만 기암석으로도 유명합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인공 석가산으로 알려진 대가산을 지나면(5번째 페이지) 중국 강남의 3대 명봉중 하나인 옥영롱을 볼 수 있습니다.(6번째 페이지) 북송의 황제 휘종이 수집하여 놓았다가 수도를 변경으로 옮기면서 유실된 기암괴석 중 하나라고도 알려진 옥영롱은  높이 3.3m의 거대한 태호석으로 70여개의 구멍이 있어 아래에서 향을 피우면 구멍마다 연기가 구름처럼 피어올랐다고 합니다.

 당시 부자들 사이에서는 기암괴석을 수집하는 것이 유행하였는데 이 기암괴석을 원형 그대로 가지고 옮겨오기 위해 진흙을 바른 후 굴려서 옮겨와야 했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엄청한 비용이 소요되었습니다. 그래서 집안에 기암괴석이 있다는 것은 그들이 부자라는 것을 과시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1842년 제 1차 아편전쟁을 치르면서 이 곳은 영국군에게 점령되어 손상을 입었으며, 1860년 태평천국운동 당시 태평군이 상해로 진군했을 때 그들을 진압하기 위해 청 정부는 영국과 결탁하여 성황묘와 예원을 외국 군대 주둔지로 사용했습니다. 그들은 원림 안에 있던 돌을 캐내 연못을 메우고 서양식 군대 막사를 짓는 등 예원을 파괴시켰고, 근대 이후 20여개의 공상행업소가 나누어 점유하게 되면서 다방과 술집으로 전락하게 되는 등 수난을 겪습니다. 1956년 이후 중국정부가 수리해 1961년 일반에게 개방되었으며 1982년 국가유적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예원과 같이 아편전쟁으로 인해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수난의 시간을 지나 너무나도 아름답고 화려한 관광지가 된 곳이 있습니다.


   바로 와이탄입니다.


  예원을 지나 황푸강 쪽으로 나와 강변을 걷다 보면 노란 등불 아래 고풍스럽게 자리잡은 유럽식 건물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국적인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고, 특히 밤에 보이는 건너편 푸동지구의 야경이 유명해 많이 사람들이 몰리는 관광지입니다. 원래 와이탄은 외백도교(外白渡僑<wàibáidùqiáo>)와 스류푸 페리 터미널까지의 중산동이루(中山東一路<zhōngShāndōngyílù>) 일대를 지칭하는 말이었으나 지금은 상하이의 대표적인 관광지가 되면서 관광객이 모여드는 산책로만을 지칭하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거리이지만 이 거리에는 사실 슬픈 역사가 깃들어 있습니다. 아편전쟁에서 청군의 패배로 개항하게 된 상하이에 19세기 중반부터 외국인들이 들어와 건물을 짓고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뱃길로 들어올 때 가장 먼저 보이는 곳이 와이탄이었기 때문에 이곳을 중심으로 서양식 건물들이 들어서게 됩니다.

  아편전쟁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자면, 18세기 무렵 서양에서 중국의 비단, 차 도자기에 대한 인기가 많았던 반면, 서양의 물건들은 중국에서 인기가 없었습니다. 영국은 차 마시는 문화가 유행하면서 중국산 차를 대량으로 사들여도 했고, 이 과정에서 영국의 은이 청으로 빠져나가게 됩니다. 은이 점점 줄어들자 영국은 인도에서 재배한 아편을 몰래 청에 팔게 되면서 다시 은을 가져오게 됩니다. 하지만 아편에 노출된 청의 국민들은 건강이 나빠지고 나라의 경제는 휘청거립니다. 청은 아편무역을 금지시켰고, 영국은 이를 구실로 중국을 공격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미 1830년대 말 중국의 아편 중독자 수가 500만명이 넘어선 상태에서 청은 영국에 질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는 대중국 수출을 위해 영국이 일으킨 역사상 가장 부도덕한 전쟁으로 기록됩니다. 이렇게 일어난 전쟁이 아편전쟁, 그 결과로 중국에게 매우 불리하게 맺어진 조약이 1842년 맺어진 난징조약입니다. 이 때 중국은 홍콩을 영국에게 넘겨주게 되고 상해를 포함한 광동, 하문, 복주, 영하 5개 도시를 개항하게 됩니다. 홍콩이라는 이름도 이 때 생겨났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자로만 보면 '향기나는 항구'이지만 실제로는 아편 냄새로 가득한 항구였다고 합니다. 영국 장교는 아편 연기를 보고 '향기로운 항구'라는 의미를 가진 광둥어의 한자발음을 실제 발음하는 대로 알파벳을 적었다고 합니다.  홍콩 광둥어 발음으로 이 한자의 발음은 홍콩으로 들린다고 합니다.


1843년 11월 7일 상하이항이 정식 개항하면서 외세에 대한 굴욕과 경제의 번영이라는 혼란기를 거쳐 점차 오늘날의 상하이의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1865년이 되던 해에는 외국인들이 거주하던 조계지 인구가 13만명이 넘어서게 되었는데 개항 후 서방 열갈이 상하이를 점령하다시피한 후, 중국인은 조계지에 출입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황푸강변을 지나다 보면 볼 수 있는 지금의 황푸공원은 1868년 영국 영사관 앞에 생겼던 공원으로 당신 입구에는 '중국인과 개는 출입금지 ' 와 같은 푯말이 붙어있었다고 합니다. 이 푯말은 1916년에 반포된 공고의 5개 조항과 관련된 것으로,  제 2조에는 '개와 자전거 입장 불가' 그리고 바로 그 다음 제 3조에는 '중국인 입장 불가. 단 백인을 모시는 중국 하인 제외', 제 5조에는 '인도인(복장이 우수한자 제외)과 일본인 입장 불가(양복 착용한 제외)'라는 말이 함께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개항은 경제 번영의 계기가 되었지만, 동시에 서구의 침략에 잠식당하는 굴욕적인 시기의 단상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출처: 네이버캐스트/ 상하이-'놀라운 번영을 이끄는 중국의 심장' >


이렇게 아픈 역사의 전유물이었던 와이탄 앞의 서양식 건물들이 지금은 상하이를 너무나 아름다운 관광의 도시로 만들어주었으니 역사는 정말 아이러니합니다.


 와이탄에서 중국의 근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면 황푸강 건너편에 있는 푸동지구는 상하이의 현대를 보여줍니다. 하늘 높게 솟아오른 건물들이 바로 상하이의 현대를 말해줍니다. 말 그대로 푸동은 황푸강의 동편, 푸동(浦东)을 의미하는 곳으로 행정 상의 공식명칭은 푸동신구라고 합니다. 1990년에 개발이 발표되어, 개발이 시작된 이례 현재 푸동은 중국의 금융 및 상업의 허브로 대두하였습니다.

 푸동지구 하면 떠오르는 것은 동방명주입니다.

 동방명주는 상하이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로 중심축에 구슬 세 개를 꿰어 놓은 듯한 모양입니다. 중국의 미디어 그룹인 동방명주 그룹의 방송 수신탑으로 1994년 준공될 당시 캐나다, 러시아, 중국 광저우에 이어 세계에서 4번째로 높은 건물, 아시아에서 두번째로 높은 건물이라는 기록을 세웁니다.

 그러나 시대가 지나 세계 각국에서 더 높은 건물들이 계속 생겨나면서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 10위권 밖이며 가장 높은 전파탑 5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참조: doopedia.co.kr> 그 예로 푸동지구 안에서도 그보다 더 높은 건물인 상하이세계금육센터와 상하이 타워가 있습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푸동지구의 야경에서 단연 눈을 사로잡는 동방명주의 모습은 우리로 하여금 동방명주를 상하이의 가장 높은 탑으로 기억하게 만들지 않나 싶습니다.


오늘은 정말 글이 꽤 많이 길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좋은 정보 많이 알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금덕이는 지금 상하이입니다.


  





**몇몇 단어에 대한 정보입니다. **

-성황묘(城隍廟<chénghuángmiào>) : 중국문학에서 도시의 수호신으로 알려진 상황실을 제사지내 위한 사당.<출처: 위키백과>예원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다.

-조계: 주로 개항장에 외국인이 자유로이 통상 거주하며 치외법권을 누릴 수 있도록 설정한 구역. 아편전징 이후 1845년에 영국이 상하이에 둔 것이 최초이다.<출처:네이버캐스트 두산백과>

-외백도교 外白渡僑<wàibáidùqiáo>: 조계시절 영국인들이 의해 만들어진 교량으로 영국 조계와 일본 조계가 나뉘던 기준이었다. 철교가 놓인 후부터 외국인은 무료, 청인(중국인)은 유료라는 치욕스러운 역사가 담겨있다.


 

관련정보 : http://m.terms.naver.com/entry.nhn?docId=1528549&cid=42971&categoryId=42972 

                http://m.tip.daum.net/openknow/45096618

                http://m.terms.naver.com/entry.nhn?docId=962673&cid=42864&categoryId=50859 

               http://m.terms.naver.com/entry.nhn?docId=1396110&cid=43792&categoryId=43798 

                http://m.terms.naver.com/entry.nhn?docId=1396111&cid=43792&categoryId=43798 

                http://m.terms.naver.com/entry.nhn?docId=1396109&cid=43792&categoryId=43798 

                

                http://m.blog.naver.com/dkcaihong/220940193935 

                https://ko.m.wikipedia.org/wiki/이화원

            

                http://m.terms.naver.com/entry.nhn?docId=960065&cid=47307&categoryId=47307 

                http://m.terms.naver.com/entry.nhn?docId=1833034&cid=42976&categoryId=42976 

                http://m.pub.chosun.com/mobile/news/view.asp?cate=C05&mcate=M1002&nNewsNumb=20170323718&nidx=23719 


작가의 이전글 금덕이는 지금 상하이 #8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