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챔피언의 계절

프로야구 비즈니스를 연구하는 전 구단직원의 가을

by 명세희

야구에 관심 없는 사람에게는 큰 감흥이 없었겠지만, 일본에 살고 있는, 야구에 관심 있는, 프로야구 비즈니스를 연구하고, 전 직장이 프로야구 구단이었던 저에게는 관심을 안 가지려야 안 가질 수 없었던 미국 메이저리그의 월드시리즈를 끝으로 '가을야구'가 드디어 막을 내렸습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과 대만, 미국의 프로야구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꾸준히 관중수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는데요. (자세한 내용은 관련보도 링크를 첨부할게요.) 세계 야구팬들의 심장을 뜨겁게 달굴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대회를 앞두고 특히 아시아의 야구팬들은 순식간에 지나가는 가을 날씨만큼 각국의 챔피언을 가리는 포스트시즌도 금방 끝난 것 같은 기분일 것 같습니다.


✔ 2025 시즌 동아시아(한국/일본/대만) 프로야구 리그 관중수 기록에 관한 기사

한국 KBO https://www.koreabaseball.com/MediaNews/Notice/View.aspx?bdSe=11690

일본 NPB https://www.nikkansports.com/baseball/news/202510020000465.html

대만 CPBL https://pacificleague.com/news/2025/10/77544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더위가 가시고 드디어 가을이 찾아온, 제가 살고 있는 일본 교토는 개인적으로 가을에 그 진가를 발휘하는 도시라 자부합니다. 산에 둘러싸여 있어 여름엔 일본에서도 덥기로 유명한 분지 중 하나이고 겨울에는 눈이 잘 오지 않는 오사카와 다르게 눈이 꽤 오기도 하고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꽤나 쌀쌀합니다. 반면 가을엔 교토를 둘러싼 산맥들이 울긋불긋하고 집에서 조금만 나가면 쉽게 볼 수 있는 목조건물과 절과 신사들은 가을색과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물론 천년고도였던 만큼 일본의 산해진미가 모이던 이 도시의 미식을 즐기기에 더없이 멋진 계절. 조금 샛길로 빠졌지만 계절 중에서도 최고인 가을은 야구팬들에게도 리그의 최고봉을 가리는 계절이라 모두가 손꼽아 기다리겠지요.


따로 연재했던 글에서 적었던 것처럼 저는 야구팬은 아니었지만 프로야구구단에서 일을 하면서 야구의 매력을 조금은 알게 된(?) 케이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시절 리그 우승을 밥 먹듯이 하던 구단에 입사를 하게 되었는데, 입사한 시즌에도 내내 리그 상위권을 유지해서 당연히 올해도 우승하겠구나! 했는데 월드시리즈를 넘어 프로야구 계의 살아있는 전설을 써 내려가고 있는 오타니 쇼헤이 선수의 일본에서의 마지막 시즌 대활약으로 아쉽게 리그우승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 해의 일본챔피언은 다른 리그의 우승팀인 히로시마 카프라는 팀이 이십몇 년 만에 우승을 했는데, 연구실 동기가 그 팀으로 입사를 해서 이야기를 들으니 '마지막으로 우승했을 때 일했던 사람이 거의 없어서 뭘 해야 할지 몰라'라고 했던 기억이 남아있어요. 제가 있던 팀은 이미 여름에 챔피언 굿즈를 발주해서 입고까지 해서 판매대까지 준비를 했지만 시즌 마지막에 주르륵 미끄러지는 팀 성적과 함께 우승굿즈는 이 세상에 나오면 안 될 상품이 되었고 빛을 보지도 못하고 바로 폐기 처분되었습니다. 우승이 익숙한 팀은 여름부터 굿즈를 준비하고, 우승을 기억하는 사람이 적은 팀은 최고의 매출을 기록할 수 있는 그 순간에 허둥지둥했는데 그래서 스포츠는 매력적인 것 같습니다. 절대강자와 절대약자가 없으니까요.


오타니가 미국 메이저리그로 이적하고 제가 근무하는 우리 팀은 내내 무언가의 챔피언이었습니다. 이번 일본시리즈는 최단기간 리그우승을 기록한, 교토를 포함한 칸사이 지역의 최고 인기팀 센트럴리그의 한신 타이거즈와 저의 옛 직장인 퍼시픽리그의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대결이었는데요. 초반에 시소게임으로 가다가 호크스의 연승으로 시리즈가 끝났는데, 근무했을 때는 매년 챔피언 굿즈를 만들고 프로모션 준비하느라 못 느꼈던 챔피언이 되기 위한 길고 긴 여정이 새삼 힘들고 대단한 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프로야구 선수도 우승반지 없이 은퇴하는 사람이 많은데 저는 운 좋게도 일본챔피언 우승반지가 여러 개 있거든요. 정말 배부른 소리임을 올해 다시금 느꼈습니다.


퇴사하기 전 마지막 시즌, 홈에서 일본챔피언
감사하게도 매년 우승 후 다음 날은 출근길이 꽃길이었어요.

올해 일본챔피언이 된 호크스는 5년 만에 다시 정상에 올랐는데 제가 퇴사할 때 일본정상에 오른 이후 처음이라고 하네요. 오랜만에 우승 인터뷰나 각종 축하 이벤트에 보이는 반가운 옛 상사들의 얼굴과 모든 걸 준비했을 옛 동료들을 생각하니 축하의 마음이 더 커졌습니다. 작년에 눈앞에서 일본챔피언을 놓쳤기에 더 간절했던 것 같아요.


이제 팀 운영 파트는 선수들과의 재계약과 새로운 선수영입에 바쁠 거고 사업 운영 파트는 시합일정 마지막 조율과 스폰서 영업, 캠프 준비와 시즌 준비로 바쁜 시기에 접어들겠죠. 프로야구 구단은 겨울이 가장 바쁜 시기이기에 구단직원들은 짧은 챔피언의 계절인 가을을 있는 힘껏 만끽할 겁니다. 지금도 출근길에 노란 꽃이 가득한 통로가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어딜 가든 축하한다는 인사를 받았던 가을.


지금은 제 연구와 지도하는 4학년 학생들의 졸업연구로 정신없지만 짧아서 더 소중한 가을을 조금이라도 더 즐겨야겠어요.


챔피언의 계절 가을, 계절의 챔피언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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