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선연하게 귓가에 울리는 말.
내 생애 이 나라를 이렇게 오게 될 줄 과연 상상이나 해봤을까?
한국에서 치열하게 살아오다 보니 늘 내가 잘하는 것이 남들도 다 잘하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항상 달려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들은 더 앞서가는 느낌, 그래서 그런지 나는 여전히 쉼표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쉴 틈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나를 놓을 수 있는 낯선 타국, 내가 변화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했다. 일종의 지친 나를 달래기 위한 도피처였던 것이다.
한국에서 비행기로 약 5시간의 거리인 캄보디아의 씨엠립향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부모님은 딸이 캄보디아로 갈 거라고 하니 꽤나 무서운 관련 기사들을 접하시고 공항 들어가는 순간까지 꼭 가야만 하냐고 되물으셨다. 아무리 무소식이 희소식이라지만 꼭 하루에 한 번은 연락하라고 나의 약속을 받으신 채 외국에 곧잘 나가 그러려니 하실 만도 한데, 떠나는 순간까지 부모님의 근심 가득한 얼굴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꽤 추웠던 겨울에 떠났던 터라 잔뜩 껴입은 외투를 주섬주섬 매만지며 입국 심사를 겨우 끝내고 설렘보다는 긴장감 잔뜩인 채로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 짐가방들을 수화물 벨트에서 기다렸다. 수화물을 늦게 찾으면 현지 사람들이 들고 갈지도 모른다는 흉흉한 소문으로 인해 나는 이미 수화물 벨트 입구 시작 지점부터 나의 키티 캐리어 네임택을 열심히 찾고 있었다.
가까스로 양손에 짐을 무사히 찾고는 비자를 발급받기 위해 줄을 다시 섰다.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하는 웃돈문화가 있었다.
'세상에? 강제팁을 주지 않는다면 나는 비자를 발급받지 못한 상태가 되다니! '
비자 발급비는 $30, 추가 1불을 팁으로 주지 않으면 내 여권은 옆으로 잠시 빼놓는다. 바로 처리해주지 않겠다는 소리다. $1이면 지금 환율로 1300원 정도인데, 관광객을 먹고사는 도시라서 그런지 외국인 상대로 이렇게 팁들을 대놓고 요구하곤 했다. 줄을 서는 내내 일부 관광객들은 1불로 인해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캄보디아 공항 사람들은 왜 이렇게 한국말을 잘하는 건지 "빨리빨리 원딸라"라고 외치는 소리가 뒷줄에 있는 내 귀에도 들려왔다. 그리고 주섬주섬 지갑을 꺼내 줄을 서있는 동안 30불에 추가 1불도 같이 준비하고 있었다. 언제 내 차례가 오나 기웃기웃거린 채 말이다. 31불과 여권을 내미니 아무 말없이 바로 비자가 발급이 됐다. 1불이 이렇게 가성비가 좋은 돈이었던가
요즘에는 간단하게 도장을 찍어주곤 하는데, 아직 캄보디아는 한 면 전체 종이로 된 것을 붙여줬다.
처음에는 살 집을 구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호텔에서 이주정도 묵기로 되어있었는데, 꽤 두렵기도 한 마음에 호텔 픽업서비스를 신청했다. 공항을 벗어나니 후텁지근한 습기 가득한 날씨에 금세 겉옷을 벗어야만 했다. 그리고 두리번거리며 열심히 내 이름이 적힌 피켓을 찾았다. 꽤 지쳐있던 탓에 그 습한 공기에 숨이 턱 막혀 있던 찰나 내 이름을 적은 채로 열심히 팔을 흔들고 있는 호텔 직원이 보였다.
그리고 단숨에 양손에 캐리어를 질질 끌며 갔다.
"섭섭하이" 그가 나에게 건넨 첫인사.
그렇다, '섭섭하이'는 캄보디아어로 '안녕하세요'라는 뜻이었다.
그렇게 '섭섭하이'와 함께 나의 캄보디아 해외생활이 시작됐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 채 해맑게 '섭섭하이'가 꼭 경상토 사투리 같다며 즐거워하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