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시간

by 이지하

영국 드라마 '소년의 시간'은 학생 간에 벌어진 살인사건에 관한 이야기이다. 피해자의 주변 인물 수사를 위해 학교를 방문한 형사는 학생들을 불러 조사하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다. 공교롭게도 그곳엔 형사의 아들도 재학 중인데, 그는 조용히 아버지에게 다가가서 말한다. '인스타그램이야. 인스타. 거기 게시글에 나온 색이 암시하는 게 있다고. 아빠가 여기 와서 헛다리 짚고 다니는 거 창피해서 말해주는 거라고.'


그렇다. 요즘 아이들 소통 수단은 문자도 카톡도 아닌 인스타라는 말을 나도 익히 들었다. 하지만 나는 굳이 그 세계에 발을 담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가뜩이나 바쁜 일상을 인스타 사용으로 더 번잡스럽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드라마 속 형사와 비슷한 상황을 직접 겪기 전까지는.


오전 내내 학교 밖을 배회하던 A가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어디를 갔었냐 물으니 등교하지 않은 B의 집에 다녀왔다고 했다. B는 평소 싹싹하고 살가운 태도가 인상적인 학생이었다. 이튿날 B를 불러 사실 여부를 확인하니 B는 정색했다. A에게서 전화가 왔을 때 자고 있었다는 증거로 부재중 전화가 찍힌 화면까지 보여주면서.


B를 보내고 다시 A를 불러 묻자 이번엔 A가 정색했다. 자신은 수업은 빠져도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며 그날 B와 주고받았다는 인스타 DM을 내게 보여주었다. 사실이었다. 자고 있었다던 B는 초롱초롱 깨어 있었고, 인스타 화면 속 그들 대화는 탁구대 위를 톡톡 날아다니는 공처럼 생기가 넘쳤다.


그 무렵 다른 학년은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각 방의 베란다 사이를 속옷 바람으로 타잔처럼 타 넘으며 객실 내 음주와 흡연을 주도했다는 C의 소식이 전해졌다. 학생부의 사안 조사에서 C는, 자신이 혼자서 벌인 일이 아니라며 D를 지목했다고 했다.


며칠 후 생활교육위원회가 열렸다. 그곳에 참석한 D는, C가 자신을 지목한 것이 억울하다고 했다. 자신은 C에게서 전화가 왔지만 받지 않았다고 했다. 어라? 익숙한 장면이었다. 학생부 교사와 학생 간의 대화를 지켜보던 나는 D에게, 그렇다면 C와 주고받은 인스타그램을 봐도 되겠냐고 했다. 그 순간 D의 눈빛이 요동쳤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허공에 떠다니던 질문과 대답으로는 실체조차 모호했던 그들 간의 은밀한 대화가 적나라하게 화면에 드러나자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굳이 알고 싶지 않았던 내용이 줄줄이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평소 정제된 옷차림으로 마주했던 학생이 온몸에 문신을 드러낸 채 술병을 흔들고 있었다. 배설 수준의 발언에 환호하는 무리의 영상은 안 보느니만 못했다. 진실을 알아냈다는 후련함보다는, 감당하지도 못할 그들의 내밀한 세계를 굳이 들춰낸 데 따른 충격과 자괴감이 더 컸다.


자발적으로 내게 화면을 내밀었던 A와, 공적인 자리에서 내 요구에 따라 자신의 휴대폰 화면을 보여준 D의 경우는 시작부터 달랐다. 어쩌다 그런 상황까지 갔을까. 나도 아이들이 내게 처음 했던 말을 믿고 싶었다. 그런데 밝혀진 내용은 달랐다. 그렇다면 내가 분명히 보았던, 자신들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던 그들의 진지한 눈빛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회의에 들어온 학생들은 어김없이 반성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 표정은 진짜일까. 믿을 수 없었다. 조금 전 나는 어떻게 했어야 했나. 아이들이 감추고자 하는 바를 끝까지 모른 척해야 했을까? 그들이 자신만의 세계에서 시간을 주도하도록 방관해야 했을까? 이를 고민하는 나는 도대체 교사인가 형사인가. 학교는 거침없이 일탈하는 학생들을 어디까지 제어할 수 있을 것인가.


무력감이 밀려오는 와중에도 할 일은 해야 했다. 한마음으로 학생들에게 자학적인 폭주를 멈추라는 교사들의 절절한 조언과 충고가 이어졌다. 언제나 그랬듯 받아들이는 것은 그들의 몫이었다. 회의가 끝나니 저녁 8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허탈한 마음으로 학교를 빠져나왔다.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스승의 날이 끝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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