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요즘 수행평가 시즌이다. 입학 후 엄청난 긴장감으로 중간고사를 치렀을 학생들은 미처 숨 돌릴 틈도 없이 줄줄이 이어지는 수행평가 준비로 분주히 움직인다. 지켜보는 교사의 마음도 불편하다. 과정 중심 평가로 인해 과목 당 서너 종류의 시험을 여러 방식으로 대비해야 하는 학생들의 부담감이 확연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한 학생이 쉬는 시간에 교무실로 나를 찾아왔다. 평소 같은 반 아이들과는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수업이 끝나면 교실 앞으로 와서 자신의 이야기를 내게 조곤조곤 건네던 학생이었다. 무슨 사연이 있길래 교무실까지 왔나 궁금하여 찾아온 이유를 물자 아이가 대뜸 답했다.
“건의드릴 일이 있어서 왔어요.”
“뭔데? 얘기해 봐.”
“선생님, 사람에게 하루라는 시간은 무엇인가를 하기에 참 긴 시간이죠?”
“갑자기 그걸 왜 물어보는 거야? 단도직입적으로 말해봐.”
“어제 말하기 평가를 본 학생들과 오늘 평가를 보는 학생들은 준비 상태가 다를 테니, 오늘 시험을 볼 아이들에게는 점수를 더 깐깐하게 주셨으면 좋겠어요.”
28명의 학생을 시간 관계상 한 차시에 평가할 수 없어서 이틀에 걸쳐 시험을 진행하던 차였다. 전날 자신감 있는 태도와 충분한 준비 과정이 돋보였던 그 학생은 당연히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자신의 점수가 다음 날 시험을 보는 아이들보다 낮을까 봐 불안한 듯했다. 충분히 들 수 있는 감정일 것이라고 이해는 했으나 내 마음은 불편했다. 행여 그런 마음이 들었다 하더라도 지금껏 그 생각을 굳이 입 밖으로 낸 학생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솔직함일 수도, 용감함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 어쩌면 무례함으로 비칠 수도 있다는 점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말해주었다. 사정상 시험 일자가 나뉘었지만, 이 시험은 절대평가이니 각자 최선을 다하면 나는 이를 감안하여 채점할 것이라고. 네가 우려하는 바는 이해하지만, 아직 시험을 보지 않은 친구들에게 더 까다로운 기준을 부여하라고 요구하는 네 태도가 그다지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고.
학생을 보내고 얼마 후 교실로 들어섰다. 서둘러 평가를 진행하려는데 그 학생이 교탁 앞으로 걸어 나왔다. 문장을 연습하는 아이들로 웅얼거리는 소리가 가득한 가운데 아이가 다시 말했다. 아까 자신의 생각이 좀 짧았던 것 같으니, 선생님은 그냥 그대로 채점하시라고. 그리고 덧붙였다. 생활기록부에 자신이 이기적이라는 문구는 쓰지 말아 달라고.
이것은 또 무슨 말인가. 자꾸만 나에게 무엇을 하라고, 또는 하지 말라고 하는 아이의 발언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말해줘야 할지 혼란스러웠던 나는 수업 후 다시 아이를 불러 이야기했다. 높은 성적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소중한 것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학교를 다니며 배우는 것은 수업 내용만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이들과 잘 지내는 법이기도 하다고. 사실은 그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지금까지 많은 학생을 만나 오면서 점점 확신하게 된 것이라고.
사실 아이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할 법한 고민이었다. 아이의 표정은 나에게 말을 건넸을 때도, 내 말을 들을 때도 진지하고 절박해 보였다. 그런 아이에게 나는 어떤 사람으로 비쳤을까. 불과 얼마 전 내신 등급을 나누기 위해 소위 ‘킬러 문항’을 출제한 사람. 그리고 오늘 다른 종류의 평가를 하면서도, 성적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이해 안 되는 말을 하고 있는 사람?
경주마처럼 앞만 보며 달리고 있는 그 아이가 향하고 있는 곳은 회색일까, 총천연색일까. 아이는 달리는 동안 사방에서 흐드러지게 피고 지는 꽃을 흘낏 보고는 있을까. 전속력으로 달리느라 휙휙 지나치고 있을 주변 사람들은 아이에게 어느 정도의 의미가 있을까.
한두 번의 대화로 아이의 생각을 바꿀 수는 없었다. 어쩌면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옆자리 친구와 경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학생에게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계속 가르치고 있는, 모순적인 행동과 말을 하고 있는 내가 그럼에도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쉬지 않고 고민할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