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토요일이면 구독 설정을 하고 챙겨보는 일간지 연재 글이 있다. 백영옥의 '말과 글'이 그것인데, 짧지만 울림이 있어 한 주를 마무리하며 마음을 다잡기에 제격이다. 오늘 올라온 글의 제목은 '정서적 비만'이었는데, 이는 글쓴이가 '적절한 좌절'이라는 책에서 접한 표현이라고 했다.
정서적 비만이란 요즘 부모들이 자녀를 과잉보호하며 생긴 아이들의 상태를 뜻했다. 내 자식이 아픔 없이 꽃길만 걸었으면 하는 마음에 아이의 갈등 상황을 대신 해결하는 것은 오히려 자녀의 건강한 성장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공감했다. 인간은 좌절과 실패를 경험하며 성숙한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동시에 내 속은 뜨끔했다.
그 이유는 며칠 전 딸아이의 현장체험학습 때문에 있었던 일이 생각나서였다. 아이가 매년 누구와도 둥글둥글 잘 지낸다면 얼마냐 좋겠냐 만은 올해는 그렇지 못했다. 어렵게 사귄 친구 한 명마저 전날 불참할 거라는 소식을 듣자 내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다른 곳도 아닌 롯데월드에서 홀로 시간 보내기라니! 탑승 대기 줄에 선 채 자신의 앞뒤로 삼삼오오 무리 지은 아이들이 재잘대는 소리를 묵묵히 듣고 있을 아이를 상상하니 심란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가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낼 수는 없을 듯했다. 놀이동산은 그날이 아니더라도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쉬는 시간에도 반 아이들에게 다가가기 어색해서 일종의 도피 수단으로 책을 꺼내 읽는다는 아이가 그곳에 머무르며 상처받을 필요가 있을까.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제안했다. 체험학습을 가지 않는 게 어떻겠느냐고. 엄마는 아무래도 그 편이 나을 것 같다고.
아이가 고민하다가 말했다. 개근상을 꼭 받고 싶으니 일단은 가보고 힘들면 돌아오겠단다. 어쩔 수 없었다. 굳이 고난의 길을 걸어가겠다는 아이를 억지로 막을 수는 없는 일. 그래도 마음을 놓지 못한 나는 검색을 시작했다. ‘롯데월드에서 혼자 놀기’, ‘롯데월드 조용한 곳’ 등등…. 해당 링크를 아이에게 보내고 덧붙였다. 언제든 힘들면 선생님께 부탁드리고 빠져나오라고. 오히려 밖에는 혼자 편하게 다닐 곳이 많으니 그 편이 나을 것 같다고.
체험학습 당일 출근하는 내 발걸음은 무거웠다. 아이로부터 무슨 일이 생겼다는 연락이 오면 모든 것을 내던지고 달려 나갈 기세였다. 오전 수업을 연달아 마치고 돌아와 휴대폰 화면을 켜보니 가족 단톡방에 알림 숫자가 떠 있었다. 연락이 와도 걱정, 안 와도 걱정이었던 나는 심란한 마음으로 대화창을 열었다.
대화방은 복작복작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한 아이가 입장권 사진을 올리자 남편이 칭찬했다. 잠시 후 타기로 한 놀이기구 이름을 올린 아이를 남편이 격려했다. 뒤늦게 대화 내용을 읽은 내가 잘 놀고 있냐고 묻자 아이가 답했다. 학교에서 점심시간에 이따금 어울렸던 다른 반 아이들과 어우렁더우렁 다니고 있다고. 함께 밥을 먹고 난생처음 무서운 놀이기구도 탔다고, 안 왔으면 후회할 뻔했다고.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만난 아이는 여전히 흥분감이 가시지 않은 듯했다. 아이는 그곳에서 산 토끼 머리띠를 한 채, 그날 탄 놀이기구의 짜릿함과 새롭게 사귄 친구들의 이야기를 줄줄 읊어댔다. 충만한 시간을 보낸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그간의 걱정이 기우로 끝났음에 감사했다. 체험학습 전날까지도 불안해 보였던 아이는 스스로 길을 찾아냈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냈다. 가장 큰 문제는 나였다. 아이가 경험할 최악의 상황을 혼자 상상했던 것이다.
공교롭게도 다음 날 백영옥의 글을 읽은 나는 앞으로 지녀야 할 태도를 생각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아이가 삶의 울퉁불퉁한 부분을 지날 때 담담한 자세로 지켜보고, 도움을 요청할 때 손을 잡아주며, 때로는 좌절하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격려해 주는 것, 그래서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는 것. 결심한 것만으로도 마음이 잔잔해졌다. 거침없이 속을 휘젓던 불안감이 잦아들고 비로소 편안해진 내 마음이 아이에게도 닿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