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오후 친구 K에게서 30분 후에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전화를 끊자마자 부리나케 나갈 채비를 했다. 직장 일과 집안일을 병행하는 와중에도, 수개월 째 입원 중인 어머니를 병구완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는 친구. 당분간 느긋하게 약속을 잡을 수 없는 상황이니 근처에 온 김에 시간을 쪼개어 연락을 했을 터였다.
헉헉대며 카페에 들어선 K는 고단한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살짝 올라온 바짓단 아래로 얼룩덜룩한 멍과 함께 여기저기 반창고가 덧대어진 다리가 보였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으니 며칠 전 길에서 심하게 넘어졌다고 했다. 온 힘을 다해 집과 직장, 친정 그리고 병원을 분주히 오가다 기진맥진 상태로 다리 힘이 풀렸을 K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우리가 오랜만에 만나서 나눈 대화의 대부분은 각자의 부모와 시부모의 건강에 관한 것이었다. 골절과 입원 끝에 부쩍 기력이 쇠해진 K의 어머니, 입원 병동의 다른 환자들과 간병인 이야기도 이어졌다.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고마움과 서운한 감정, 때로는 분노가 마음속에서 수시로 엉긴다는 친구는 지쳐있었다.
‘간병, 섬망, 요양’과 같은 불과 1년 전만 해도 하지 않던 이야기를 듣는 내 마음은 무거워졌는데 그 이유는 바로 전날 있었던 일 때문이었다. 우리 집에서 함께 식사를 하려던 시어머니가 못 오신다는 연락을 오후 늦게서야 받은 것이다. 음식 준비가 다 된 상태로 들은 소식에 허탈했던 마음은 잠시, 손녀 얼굴을 보려고 아침부터 수십 번 마음속으로 길을 나섰을 시어머니의 몸 상태가 이제는 훌쩍 차에 올라 달려오기에도 버거워졌다는 생각에 먹먹해졌다.
K와 헤어지고 참석한 저녁 미사에서 오늘이 교회에서 정한 ‘조부모와 노인의 날’이라는 강론을 들었다. 몇 년 전 감염병의 유행으로 고통을 겪던 노인을 위로하고 가정과 사회에서의 노인의 역할과 중요성을 되새기고자 교황 프란치스코가 제정한 날이라고 했다. 고독과 질병으로 고통을 받는 노인들에 관한, 어쩌면 예전에 흘려들었을지도 모를 강론 내용이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다.
K는 요즘 매일 저녁 감사 일기를 쓰고 있다고 했다. 그러다 보면 하루는 섬망 속에서 어린아이처럼 화를 내던 어머니가 이튿 날 다시 씩씩하게 식사하시는 모습에 안심하게 된다고. 어머니의 세계가 조금씩 무너지는 듯 보여도 그 안에서 반짝 감사한 순간을 찾을 수 있다고. 다리 곳곳에 멍이 든 채 파삭한 낯으로 나를 만난 K는 오히려 내게 지금의 힘든 순간은 ‘다 지나갈 것’이라고 격려했다. 그 말은 K가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 같기도 했다.
아직 살아보지 않았지만 언젠가 맞이하게 될 내 노년의 모습은 어떠할까. 나와 내 주변 이들의 부모가 통과 중인 노년의 시기를 자식인 나는 어떻게 지켜보며 도와야 할까. 서로의 존엄성을 지키고,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으며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경험하지 못한 생경한 세계로 서서히 접어드는 마음이 편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