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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를 그만두며 가장 아쉬운 것들

정신연령 꼭 맞는 세상 활기찬 아이들을 일상에서 자주 접할 수 있을까.

중학생 아이들과 함께 있다는 건 정말 재미있는 일이다.

늘 학교에서 나에게 미소를 머금게 하는 것은 아이들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웃긴 소리를 해대지?

어떻게 저렇게 재미있게 놀지?

하루하루가 신기하다.


집에서는 중학생 자녀가 힘들다. 나도 집에 있는 중학생 자녀보다 학교에 있는 아이들이 더 재밌고 귀엽기도 하다. 어쩐지 내 자녀와는 좀 다른 느낌적인 느낌. 같은 중학생 다른 느낌!


종종 나의 딸 아들의 친구들을 가르치는 일도 있다. 

누구누구 엄마시냐며 놀라는 아이들을 보는 것도 꿀잼이다.


어제는 한 여학생이 수업이 끝나고 나에게 물었다.

"선생님, 선생님은 어릴 때 꿈이 뭐였어요??"

"나? 나는 학교 선생님! 나 좀 짱이지?"

"우왕~~~ 네 (끄덕끄떡)"


아휴 귀여워 죽겠네. 이런 질문을 하는 아이들도 거의 없지만, 친근하게 다가와서 이런 걸 물어주면 정말 친구 같은 느낌을 서로 받는 것이다.


선생님에게 인정받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아이들은 안쓰럽지만, 이렇게 스스럼없이 선생님을 편하게 대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조곤조곤 거려 주는 아이들이 최고 사랑스럽다.


내가 중학생과 코드가 맞는 건지, 정신연령이 맞는 건지 아이들 입담에 배 아프게 웃어댄 적도 많다.


부모님들은 힘들어 죽겠다 하셔도 학교에 와서 선생님에게는 세상 예의 바른 아이들.


나는 담임을 하던 시절에 아이들의 칭찬거리가 생기거나 소소하게 즐거웠던 이야기를 부모님께 문자를 드렸다. '00 이가 학교에서 이러이러했습니다. 함께 칭찬해 주세요. 혹은 기뻐해 주세요'


이것은 부모님, 나, 학생이 모두 행복해지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 


나는 '수업하기 싫은 교사' (주문해야 제작이 되는 책인데, 주문도 제작도 안 되는 책이더라. 너무 관심을 안 갖고 살았나봐.) 에서도 학교의 삭막함을 이야기했었다. 나의 아이들을 보내는 학교에서도 나도 삭막함을 많이 느낀다. 교사는 노동절에도 쉬지 않으며 노동자에 속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교사직은 일로써만 봐서는 안된다. 그런데 점점 학생과 비즈니스 하듯 대하는 선생님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 조금은 서글프다.


선생님들의 사생활 물론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존중한다.

그렇지만 과거에 달동네로 아이를 만나러 다니고, 밤 12시에 경찰서로 찾으러 다녔던 그때가 훨씬 더 찐하고 절절했다. 마치 쓰고 찐한 에스프레소처럼.


나 꼰대.


나는 항상 아이들이 학교에서 따뜻함을 느끼기 바랐고, 부모에게는 아이에 대해 자부심을 심어주고 싶었던 교사였다. 졸업하고도 선생님을 찾아오시는 학부모를 본 적이 있는가? 나에게는 그런 학부모님들이 계신다. 그것도 한여름에 시원한 수박을 숭덩숭덩 잘라 선생님들 드시라며 보자기에 싸오신 어머님.(아주 오래전 일이이지만) 이제 이런 것들은 더 이상 경험하지 못할 것이다. 


해마다 찾아와서 스승의 은혜를 복도에서부터 불러 주는 제자들을 더 이상 학교에서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서른이 넘어서도 찾아오는 신기한 아이들. 


군대 입대하는 날, 제대하는 날 중학교 때 담임선생님께 먼저 전화하는 칠푼이 같은(여친도 없냐 이것들아) 녀석들까지...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다. 


학교에서 나도 아이들과 함께 많이도 성장하였다.


내 인생이 온통 교사로서의 경험들로 차있는 것이 새삼 행복하다.


이래도 학교 나가고 싶냐고??


YES!!!


나는 지금 또 다른 하고 싶은 일에 꽂혀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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