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가까이 엄마가 교사이셨고, 아빠는 공무원이셨다. 큰외삼촌도 교사셨고, 작은 외삼촌도 공무원이셨다.
친할아버지 외할아버지도 공공기관에서 일하셨다. 친오빠도 그렇다.
그러니 지금 내가 나만의 사업을 하겠다고 나서는 것을 이해해줄 사람이 내 주변엔 별로 없을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가끔 엄마의 학교에 놀러 간 적이 있는데 모두 하교하고 남은 빈 교실에서 나는 혼자 선생님 놀이를 했다. 엄마의 동료 선생님들은 날 이뻐하셨고, 갈 때마다 기부니가 좋아졌던 곳이다.
풍금을 치며 노래도 부르고, 가끔 엄마가 칠판 가득 문제들을 판서하라고 임무를 주면 나는 신이 나서 판서를 하였다. 분필을 가지고 칠판에 글씨를 쓰는 게 재밌었고 좋았다. 이것은 아이들이 등교하면 아침에 푸는 문제풀이 같은 거였다. 지금 생각하니 참 빡빡하신 선생님이셨네....
엄마는 그런 날 보면서 '음, 교사가 될 상이군?'이라고 생각하셨을까? 나에게 한번도 교사가 되어보라고 권하신 적은 없으셨던 것 같다. 아마 이세상의 모든 부모가 그렇 듯 더 좋은 직업을 갖길 바라셨을까...
엄마는 학교 생활을 참 즐거워하셨다. 승진을 하기 위해 노력을 하지도 않으셨고, 퇴직하시는 그날까지 담임을 하셨다. 학부모 총회를 하시면 학부모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시는 분위기 메이커이셨다.
내가 교사가 되고 몇 년 후, 퇴직을 하신 엄마는 내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할 때마다 "너 참 대단하구나!" " 너 그런 건 참 나랑 비슷하구나." 이런 말들을 해주셨다. 교사였던 엄마의 그런 피드백이 싫지 않았다.
나는 엄마가 사는 삶을 꿈꾸었나 보다.
나는 엄마처럼 되고 싶었나 보다.
학교에서는 가끔 엄마와 같이 근무하셨던 선생님들께 배우는 일이 종종 있었고, 그런 선생님들은 날 이뻐해 주셨다. 혹은 우리 엄마가 교사이셨기 때문에 날 좋게 봐주신 분들도 있었을까? 그래서 그런지 난 선생님들이 좋았고, 잘 따랐고, 학교에 있는 게 좋았던 것 같다.
선생님이란 대상은 나에게,
연예인처럼 보기만 해도 즐거운 대상이었고, 내가 관심 갖기 충분한 대상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들이 해주시는 말씀은 꼭 새겨들었고, 지금도 고등학교 때 존경하던 선생님께서 써주신 글귀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이러니 다른 직업을 꿈꿀 필요가 있었나.
엇. 갑자기 떠오르는 게 있다.
나의 갤럽 강점 검사 결과 중 4위에 '화합'이라는 테마가 있는데 그 테마에서는 나의 강점을 이렇게 설명한다. 이러한 강점으로 나는 선생님들을 잘 따르는 것이었고, 지금도 무언가 도움이 필요할 때 전문가를 찾는 것 같다.
그래서,
운명처럼 나는 사범대에 진학하였고, 운명처럼 학교의 교사가 된 것이다.
사실 여기에 나는 '운'이라는 말을 쓸 만큼 그것은 무언가 숙명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교사가 되었다.
그리고 파노라마처럼 22년 동안의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내 삶을 풍족하게 해 주었던 나의 교사생활.
그저 그런 선생님은 되고 싶지 않았고, 아이들을 사랑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열정들은 점점 사그라들었고, 지금도 교사는 업으로는 잘할 수 있겠지만, 이제 내 안의 열정은 마지막 남은 잎새 같은 느낌이다.
내가 새로운 길을 가고 싶은 것은
나다운 것이며, 내가 나처럼 살아가는 것이기에 나는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이런 나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불안감을 느끼는 것 같다.
그래, 나는 역시 남들처럼 흔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구나라는 만족감이 어디에선가 올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