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하자” 그날 밤, 우리는 같은 이불 아래 있었다
우리는 자주 싸웠다.
그리고, 심하게 싸웠다.
목소리가 높아졌고
감정이 격해지면
말은 쉽게 선을 넘었다.
물건이 날아들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싸움들엔 ‘이기겠다’는 의지보다
전달되지 않는 마음에 대한 좌절이 더 컸던 것 같다.
싸움이 끝나면
언제 끝날지 모를 기나긴 침묵이 이어졌다.
싸운 이유조차 흐릿해질 즈음,
아주 간단한 일상의 말들을
조심스럽게 서로에게 건넸다.
"밥 차려놨어."
"오늘 야근이야."
"저녁에 약속 있어서 밥은 알아서 챙겨."
그 말들은 화해가 아니라
잠깐 멈춘 전쟁의 휴전선이었다.
감정은 남고, 쌓이고,
풀린 적은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그 후의 싸움은 더 쉽게 격해졌고,
이전보다 더 긴 침묵이 필요했다.
그 시간들 속에서
나는 밖으로 나돌았고,
아내도 말없이 집을 나가곤 했다.
반복되다 보니
감정이 무뎌지는 걸 느꼈다.
그게 무서웠다.
화를 내는 것도,
서운함을 느끼는 것도
점점 지쳐서…
아예 내려놓게 될까봐.
어느 날은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숨 막히게 답답하게 느껴졌다.
‘내 집인데 왜 이렇게 불편하지?’
그 답답함의 원인을
내가 아닌 아내에게서 찾고 싶었던 것 같다.
‘너 때문이야.’
‘네가 나를 이렇게 만든 거야.’
원망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작은 실수 하나에도
화를 참을 수 없게 됐다.
그 와중에도 이상하게,
‘그래도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있고 싶다기보단,
버려지는 게 두려운 마음이었다.
그게 참, 모순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평소처럼 우리는 냉전 중이었고,
나는 만취한 상태로 늦은 밤 집에 들어왔다.
쌓이고 쌓인 울분이 터졌고,
서로 주고받은 말은
감정의 밑바닥을 뚫고 내려갔다.
"나 너랑 못살겠어. 이딴 식으로 살 바엔…그냥 이혼하자."
지금까지 수없이 싸우면서도
우리는 단 한 번도 ‘이혼’이란 말을 꺼낸 적이 없었다.
그 단어를 말하는 순간
정말 그렇게 될까 봐 두려웠던 것 같다.
그런데 그날은,
그 모든 걸 한순간에 무너뜨려버렸다.
"내일 아버님한테 가서 말씀드려. 엄마한텐 내가 말할테니까."
아내는 말끝을 자르고
작은방으로 들어갔고,
나는 소파 어딘가에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사실 나는
과도한 스트레스나 과음 후
무의식중에 걷거나 말을 하는
몽유병이 있었다.
연애 시절에도
자다 말고 집 밖을 나가
아내가 뛰어나와 나를 붙잡은 적도 있었다.
그날 밤,
오래 잠잠했던 그 증상이 다시 찾아왔다.
무의식 중에도
그녀가 있는 방으로 향했고,
익숙한 습관처럼
같은 이불 아래에 누웠다.
마치,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처럼.
그녀의 품에 안겼다.
다시 오지 않을 줄 알았던,
마지막 밤이었다.
깨질 듯한 두통에 눈을 떴을 땐
아침이 밝아 있었고,
소파에서 잠들었다 생각한 나는
아내를 껴안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우린 알게 됐다.
아이가 생겼다는 걸.
끝이라고 말하던 그날 밤, 우린 서로 알지 못한 채 새로운 삶을 맞이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