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폴라리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월간 폴라리스 Oct 13. 2016

세상의 모든 아이들을 위하여

월간 폴라리스 2월호 '반가워, 사회성'

글 류미희  에디터 한순호






15년 전, 다운증후군 영아가 어린이집에 입소를 한다고 했을 때 열정만 가지고 장애통합 보육을 시작했다가, 담임선생님도 나도 어찌할 줄을 몰라서 중간에 퇴소를 결정하게 된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쓰라린 기억이다. 그 일을 계기로 장애통합을 체계적으로 할 수 있도록 인적, 물적 환경들을 조금씩 개선해 왔고, 장애통합반을 조심스럽게 준비했다. 그리고 현재 만 3세에서 만 5세까지 장애통합반 세 반을 운영해오고 있다. 장애통합 보육은 장애아동과 비장애아동이 같은 보육환경에서 함께 놀고, 배우며 생활하는 것을 말한다. 다행히 지금은 장애통합 보육에 대한 부모님들의 인식이 많이 개선돼 입학상담 시 장애통합반에 대해 설명을 드리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아이가 장애 아동을 따라하지는 않을까?’ ‘장애아동이 우리 아이를 괴롭히거나 교육을 방해하지는 않을까?’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라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사회성은 한 사람이 타인과 관계를 바람직하게 지속시켜 나가는, 즉 ‘대인관계 능력’을 의미한다. 누리과정의 5대 발달 영역 중 하나인 ‘사회 관계’ 내용을 보면 나를 알고 존중하기, 나와 다른 사람의 감정 알기, 더불어 생활하기, 또래에 관심 갖기, 사회에 관심 갖기 등이 있다. 한편 누리과정에서는 전 영역에서 질서, 배려, 협력 등의 사회성 발달의 기본요소를 담은 인성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장애통합 보육이 영유아들의 사회성 발달 및 인성 발달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친다는 것은 이미 다양한 연구 결과로 입증된 바다. 장애아는 또래집단의 행동을 관찰해 모방함으로써 발달이 촉진되고 생활습관이 좋아지며, 비장애아의 경우에도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과 공감능력 등 사회성이 발달한다. 또한 장애통합반에서는 아이 개개인의 발달을 더욱 꼼꼼하게 관찰하고, 세심하게 신경 쓰기 때문에 장애아, 비장애아 할 것 없이 아이의 발달 과정에 맞는 적절한 행동 발달 촉진이 더욱 세심하게 이뤄진다는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 장애통합 보육을 통해 아이들의 마음 주머니, 생각 주머니가 커지는 것을 보며 장애아와 비장애아가 함께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고, 소중한 것임을 깨닫는다. 영유아기 아이들에게는 장애에 대한 편견이 없다. 친구만 있을 뿐이다. 아이들은 친구가 무엇이 필요하고 어떻게 기다려 줘야 하는지, 어떻게 놀면 되는지, 언제 참아야 하는지를 함께 생활하면서 스스로 터득해 간다. 아침에 오면 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화장실을 같이 가고, 씻는 것을 도와주고, 야외 학습 갈 때면 손을 꼭 잡고 걷는다. 아파서 못 노는 날이면 “00이는 왜 안 왔어요?”라고 물으며 안부를 챙긴다. 


최근에 있었던 일이다. 가정학습 기간에 ‘선생님에게 편지쓰기’ 활동이 있었는데, 한 아이가 한 친구에게도 꼭 편지를 써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부모님이 이유를 물으니, 지난 달 어린이집에서 하는 생일잔치 때 그 친구가 자기를 초대해, 자신이 친구를 위해 축하 노래를 불러주었기 때문이라고 했단다(우리 어린이집에서는 생일을 맞이한 아이가 축하를 받고 싶은 친구를 초대하면, 초대받은 친구가 노래 등으로 축하하고 있다). 생일이었던 장애아동은 한 학기 동안 화장실을 갈 때마다 도움을 준 그 친구가 고마워 지목을 했는데, 지목을 받은 아이도 축하 노래를 부를 수 있었던 것이 기뻤나 보다. 어찌됐든 편지는 보내졌고, 장애 아동의 부모님은 정성 어린 편지에 감동의 눈물을 흘리셨다고 한다. 장애아동은 글 대신 자신이 잘 그리는 공룡 그림으로 답장을 했고, 답장을 받은 비장애 아동의 엄마는 장애아동이 좋아할 만한 장난감을 선물했다. 그 일을 계기로 두 가정은 절친한 사이가 됐다. 이렇듯 장애통합 보육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가정과 사회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연결되는 가장 기본적인 토대이며, 건강한 사회로 나아가는데 기본이기도 하다. 


유럽 등 선진국의 장애아 통합보육 현장을 방문할 기회가 몇 번 있었다. 제도나 정책, 시스템이 잘 뒷받침 돼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지만, 무엇보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장애아전문어린이집’ ‘장애아통합어린이집 지정’이란 용어나 “비장애 어머님들이 불편해 하거나 걱정하는 점이 있나요?”라는 질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장애아를 둔 부모들은 가까이에 있거나 혹은 원하는 어린이집에 스스럼없이 상담하고, 입학했다. 또한 아동의 발달 상황에 따라 특수하게 교육을 받아야 할 경우 자원봉사자나 특수교사가 지원되는 등 장애아동에게 필요한 인적, 물적 서비스가 충분히 지원되고 있었다. 미국은 장애 학생 가운데 95%가, 캐나다는 장애 학생이 100% 일반 학교에서 공부를 한다. 내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지역에서 친구들과 함께하는 것이 당연한 권리인 것이다.


장애통합은 장애 영유아들에게는 또래들과 함께 놀고 교육받을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다. 비장애 영유아들에게는 인성과 사회성 향상을 위한 최고의 교육장이다. 보육 현장에서 수고하는 많은 교사들에도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장애통합 보육은 이제 인식의 전환점을 지나, 정책적 차원에서 권장,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시점이라 장애통합 보육 현장에는 여전히 많은 어려움들이 있다. 그러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실천하는 이들이 많을 때 보다 건강한 사회가 지속,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 사회에는 지금까지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이 만나고 서로를 알 기회가 별로 없었다. 서로에 대해 알 기회가 없으면 무심해지고, 자신도 모르게 편견을 가지게 되기 마련이다. 장애에 대한 편견이 생기기 전인 영유아 시기 장애통합 보육이야말로 가장 시급한 사회성 교육, 인성 교육이 아닐까. 장애아동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한민국 아니 세상 모든 아이들을 위해서 말이다. 



류미희

서울시 종로구에서 부암어린이집을 운영하며 장애통합 보육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전국장애아통합어린이집협의회 회장으로서 장애아동과 비장애아동이 평등하고 당당하게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통합을 위해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행복을 키우는 영유아 교육라이프 매거진 <폴라리스>는 매월 한가지 주제만 심층적으로 다루되, 확장성을 가지고 다양한 관점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폴라리스>는 앞서가는 부모를 위한 영유아 교육 지침서 역할과 교육의 관점에서 삶을 바라보는 교육 전문지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부모 스스로에게 해볼 만한 질문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