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폴라리스 '아이가 미술을 만나면' 中
아이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 하루를 선물해주고 싶다면, 아이가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일상에서 만난 적 없는 다양한 미술 체험의 세계. 다채롭고 색다른 미술을 만끽하는 감성 충전 여행을 시작해보자.
글 성소영 에디터 윤경민 포토그래퍼 이선권 사진 제공 현대어린이책미술관
파블로 피카소는 “모든 어린이는 예술가다”라고 말했다. 어른들은 감히 할 수 없는 독특한 상상력, 자신만의 표현 방법, 색다른 시선을 가진 아이들이 만나는 세상은 언제나 현란한 예술의 산실이다. 하지만 모든 아이가 예술가로 자라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어른이 되면서 순수한 동심으로 바라보았던 세상을 점점 잊어간다. 미술을 일상의 곁에 두고 지내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생활 속에서 다양한 미술을 접하면 감성의 섬세한 결이 점점 깊어지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의 감성이 어떤 빛깔로 물들지를 결정하는 것은 아이에게 얼마나 많은 예술적 체험의 기회가 주어졌느냐에 달려 있을 수 있다. 집이 아닌 낯선 공간에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껏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다채로운 체험 여행을 떠나보자.
온몸으로 신나게, 그림을 그려요!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에 위치한 ‘마이파파베어’는 낙서하기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최적화된 놀이 장소다. 빌라와 소규모 가게들이 밀집한 골목 사이로 들어서면 모던하고 오롯한 자태의 카페 건물이 보인다. 그 앞으로 넓게 펼쳐진 잔디밭과 버드나무, 분수의 조화가 마치 작은 리조트에 온 듯 편안한 느낌을 준다. 지난 4월 오픈한 이후 특별한 홍보 활동을 하지 않았는데도 주말이면 드로잉 체험 예약이 모두 꽉 차는 것을 보니, 마음껏 미술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갈증을 짐작할 만하다.
이곳에서는 아이들이 부모에게 혼날 걱정 없이, 마음껏 벽에 낙서를 하고 물감을 뿌리고, 그림을 그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드로잉 체험을 할 수 있다. 어린 아이들의 미술 활동이 주로 타일이 붙어 있는 집의 화장실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 주목해 마이파파베어를 오픈한 황영준 대표는 넓은 공간에서 엄마, 아빠와 함께 그림을 그리는 것이야말로 진짜 즐거운 놀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중학교 체육교사였던 그와 디자이너로 활동한 아내, 건축가인 아버지가 합심해 만든 이 공간에는 아이들을 향한 사랑과 배려가 그대로 녹아 있다. 낡은 창고 건물을 개조해 카페를 완성하는 데 걸린 시간만 일 년. 긴 시간을 투자한 만큼 구석구석 가족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고. 마이파파베어라는 귀여운 이름에는 아이에게 친근하고 따뜻한 ‘아빠 곰’으로 불리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다고 한다.
마이파파베어에서는 아이들의 일방적인 드로잉 체험을 제공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엄마, 아빠와 아이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에 무게를 둔다. 성인의 입장료를 따로 받지 않는 것도 그 때문. 아이는 아이대로 놀이를 하고, 엄마와 아빠는 주변에 앉아 커피를 마시거나 아이를 관찰하는 형태로 이루어진 일반 키즈 카페와 차별화되는 점이다.
마이파파베어에 가면 넓고 흰 벽에 물감으로 마음껏 그림을 그리고 낙서하는 놀이가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큰 즐거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빠가 자진해서 아이에게 목말을 태워주고, 손바닥 한가득 물감을 묻히는 시범을 보이며 아이들에게 더 신나는 미술놀이 방법을 알려주는 모습이 유쾌하고 즐겁다. 드로잉 체험장 문밖에서는 황영준 대표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의 체험 모습을 꼼꼼히 지켜본다. 놀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창의적인 모습에 깜짝 놀랄 때가 많다고. ‘여백을 메워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가진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친구의 낙서를 지우며 노는 등 자신만의 즐거운 놀이 방법을 만들기 때문이다. 곤지암에 위치한 덕분에 주말이면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 엄마, 아이 삼대가 나들이하듯 카페에 들러 드로잉 체험을 하기도 한다고. 덕분에 마이파파베어에서는 손자와 벽에 그림을 그리며 즐거워하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정겨운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드로잉 체험을 신청하면 일회용 앞치마, 3가지 색상의 물감, 놀이에 필요한 미술 도구를 제공한다. 일반적인 붓뿐만 아니라 다양한 모양의 스펀지 도구를 함께 주기 때문에 물감을 묻혀 벽에 찍기만 해도 색다른 작품이 탄생한다. 체험에 사용되는 물감은 인체에 무해한 수성 물감으로, 옷에 묻어도 물빨래 한 번이면 금세 지워지니 걱정하지 말고 마음껏 놀이를 즐겨보자. 맞은편 벽면에는 칠판을 배치해 물감과는 다른 질감의 그림을 그려볼 수 있도록 했다. 체험이 끝날 때마다 물청소를 하기 때문에 회차에 상관없이 늘 깨끗한 벽에 드로잉 체험을 할 수 있다.
야외 잔디밭에는 캐치볼, 에어볼 등이 있어 드로잉 체험이 끝난 가족은 자연스레 잔디밭에서 공을 가지고 뛰어노는 것이 하나의 코스처럼 이어진다. 카페 내에서 편하게 휴식을 취하고 식사를 하기에도 안성맞춤. 계절별 제철 과일을 활용한 주스와 파스타가 인기메뉴다. 곧 키즈 메뉴도 추가될 예정. 앞으로는 드로잉 체험장 및 카페 한편에 위치한 클래스 공간을 활용해 음악, 체육, 요리 등 다양한 분야를 접목한 놀이 프로그램을 선보일 계획이라니 아이들에게 얼마나 더 신나는 공간으로 거듭날지 자못 기대가 된다.
예술의 공간으로 풍덩! 특별한 미술관 산책
마이파파베어에서 30분 남짓 차를 타고 이동하면 경기도 성남시에 도착할 수 있다. 곤지암에서 성남은 대중교통 이용이 원활하지 않고, 평일 출퇴근 시간이면 판교신도시로 진입하는데 교통 체증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에 심리적 거리가 멀게 느껴지지만 실질적 거리를 고려하면 충분히 하루 코스 여행이 가능하다.
지난해 화려하게 문을 연 현대백화점 판교점 5층에는 ‘현대어린이책미술관’이 자리하고 있다. 국내 최초로 ‘책’을 주제로 한 어린이 미술관으로, 국내외 우수 그림책들이 가득하며 아이들의 상상력과 감성을 자극하는 예술적인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곳이다. 백화점 내 5~6층에 연면적 2736㎡ 규모로 들어선 미술관은 아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밝고 독특한 내부가 특히 매력적이다. 전시관은 5층과 6층에 자리하고 있는데 두 층을 연결하는 계단이 눈길을 끈다. 달팽이가 숨어 사는 집 같기도 하고, 물의 파장을 닮기도 한 이 ‘버블스텝’에서는 나선형으로 이루어진 계단을 오르며 한편에 앉아 책을 읽기도 하고, 부모와 아이가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다. 독특한 휴식 공간이자 5·6층을 잇는 통로인 셈이다.
버블스텝을 따라 6층에 오르면 가장 먼저 ‘열린 서재’가 눈에 들어온다. 이국적인 인테리어의 서재에는 주제별로 모은 그림책 5000여 권을 자유롭게 볼 수 있는 서가가 자리하고 있다. 아이들은 계단을 오르내리고, 열린 서재에 숨겨진 곳곳의 공간을 오가며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다.
‘어린이책미술관’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소장하고 있는 그림책 외에 전시 주제와 연관된 그림책들을 이야기별로 모아 전시실에 함께 배치하고 있어 미술과 책을 모두 즐길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 국내 그림책은 물론 시중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해외의 그림책까지 종류가 다양해 아이들뿐 아니라 엄마, 아빠의 감성을 키우기에도 좋은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유아들의 경우 전시 연계 프로그램에 참여해보기를 권한다. 전시 주제와 교육을 연계해 그에 맞는 예술 체험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전시 주제와 내용에 따라 매월 교육프로그램 또한 달라지니 체험을 원한다면 미술관 홈페이지(www.hmoka.org)를 참고하는 것이 좋겠다. 상시 체험 외 모든 교육 프로그램은 사전 예약을 해야 한다. 이외에도 전문 에듀케이터들의 장·단기 교육프로그램이 마련돼 있으니 정기적으로 방문해 교육에 참여해보면 아이의 예술적 감수성을 키우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5층에 위치한 MOKA Lab에서는 전시 주제와 관련된 그림을 마음껏 그리고 미술 체험을 할 수 있다. 사인펜, 색연필 등 다양한 도구가 마련돼 있어 아이들이 이곳에서 한동안 앉아 자유롭게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펼친다. MOKA Lab에서의 체험은 미술관 관람객이면 누구나 무료로 현장 참여가 가능하다.
오는 11월 6일까지는 <덴마크에서 온 두 친구> 전시를 진행한다. 덴마크의 문화예술을 그림책 일러스트로 만나볼 수 있는 특별한 시간으로 덴마크 최고문학상인 ‘카렌 브릭센상(Karen Blixen Prize)’ 수상자인 피터 베이 알렉산더슨(Peter Bay Alexandersen), 라스무스 브렌호이(Rasmus Bregnhoi)의 대표 작품과 그림책이 전시된다. 경쾌하고 아름다운 색감의 일러스트를 통해 두 작가가 들려주는 신비한 이야기 속에 빠져드는 시간이 될 것이다. 11월 18일부터는 미술관 개관 1주년을 기념해 ‘MOKA the 1st Diary’라는 이름으로 지난 1년의 시간동안 전시됐던 작품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될 예정이다.
아이와 미술관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 후 허기가 진다면 멀리 갈 필요 없이 현대백화점 판교점에서 식사를 해결하자. 국내 최대 규모의 식품관이 있는 이곳에는 한식, 양식, 중식, 일식, 디저트 등 맛있는 음식이 가득하다.
꽃과 미피, 휴식이 함께하는 아트 스페이스
현대백화점 판교점에서 나와 길 하나를 건너면 금세 다다르는 라 스트리트 건물 1층에는 ‘미피갤러리’가 있다. 카페 외관부터 귀여운 미피 캐릭터로 둘러싸인 이곳에서는 미피와 함께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다. 엄마의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든 캐릭터 미피를 아이에게도 소개해줄 수 있는 이 추억의 공간에 들어서면 향긋한 꽃향기가 먼저 코끝을 간질인다. 천장을 가득 메운 시네시스 드라이플라워는 몽환적이고 로맨틱한 분위기를 완성한다. 테이블 밑에 깔려 간간이 밟히는 나무껍질은 마치 동화에 등장하는 비밀을 간직한 숲 속 한가운데에 와 있는 느낌이 들게 한다.
카페 전체가 꽃으로 둘러싸인 이유는 이곳에서 플라워클래스가 진행되기 때문. 매주 평일에는 일반적인 키즈 플라워클래스가, 주말에는 잉글리시 키즈 플라워클래스가 열린다. 새벽 꽃시장에서 공수해온 싱싱한 제철 꽃을 작은 상자에 꽂아 꽃바구니를 만드는 수업이다. 아이들은 손 힘이 약해 꽃을 다루다 다칠 수 있으므로, 선생님이 손질해준 꽃을 자유자재로 꽃꽂이용 스펀지에 꽂아 하나의 작품을 만들게 된다. 꽃을 만지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어떤 특성을 가진 꽃인지 배울 수 있어 자연과 어우러진 예술을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잉글리시 클래스는 기존 플라워클래스와 내용은 동일하지만, 수업이 영어로 진행된다.
꼭 플라워클래스를 신청하지 않더라도 차를 마시고 휴식을 취하면서 간단히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미피 아트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미피 에코백 만들기, 머그컵 만들기, 물감으로 미피 아트토이 꾸미기, 미피우산 만들기, 배지 만들기 등 카운터에 이야기하면 다양한 미술 체험에 필요한 재료를 테이블로 가져다준다.
체험이 끝나면 카페 한편에 앉아 음료를 마시며 나들이의 쉼표를 찍어보자. 이때 ‘미피블렌딩티’를 꼭 주문하길 추천한다. 제주도 친환경 허브 농장에서 항공 편으로 운송된 싱싱한 생허브 몇 종류를 블렌딩해 만든 차로 한입 머금는 순간 온몸에 진한 허브 향이 퍼진다. 말린 허브 잎으로는 느낄 수 없는 충만감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수제마카롱, 쿠키 등도 준비돼 있다. 유기농 과일을 1인분씩 얼려 만드는 빙수와 감귤, 사과주스 등도 추천 메뉴다. 가만히 앉아 꽃과 미피, 플라이모빌이 가득한 실내를 바라보면 절로 동심에 빠져드는 기분이 든다.
끊임없이 낙서를 하고, 손을 움직여 무언가를 만들기 좋아하는 어린 아이들에게 하루짜리 미술 여행이 주는 만족은 생각보다 더 크다. 봄에 돋아나는 새싹의 연두가 녹음의 초록으로 번지고 어느새 노랑과 빨강으로 물드는 가을이 오듯, 다양한 미술 체험을 만끽하는 동안 아이의 감성도 하루 사이에 몇 번이고 다른 빛깔로 변하며 마음을 물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