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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 폴라리스 Nov 18. 2016

파란 당근이 어때서? 자유롭게 그리는 즐거운 미술

월간 폴라리스 '아이가 미술을 만나면' 中

뭘 그려도 괜찮아

글 김지연   에디터 윤경민   모델 장태민



걱정 마세요. 내년엔 제대로 된 당근을 그릴 테니. 
마음에 담아 두지 마세요


몇 해 전 예술교육 심포지엄에 참여한 적이 있다. 예술교육의 필요성과 다양한 접근 방법들, 예술가 교사들의 역할에 대해 사례 발표와 실습들이 이루어진 인상적인 워크숍이었다. 예술가 교사는 본인의 예술성과 예술 활동을 공유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예술가들이다. 유럽인 발표자 중 한 아트센터원장이 자신의 아이 유치원 참관 수업에 갔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원장이 유치원에 도착해 아이들의 전시물들을 보고 있는데 아이들 모두가 똑같이 그린 당근 그림이 벽에 쫙 붙여져 있었단다. 전부 주황색 당근 그림이었는데, 그중 파란 당근 그림이 눈에 들어와서 보니 자신의 아이 그림이었다고. 아이의 예술가적 소양이 듬뿍 담긴 창의적인 파란 당근 그림을 흐뭇하게 감상하고 있는데, 유치원 교사가 오더니 “걱정 마세요. 내년엔 제대로 된 당근을 그릴 테니. 마음에 담아 두지 마세요”하며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를 하더라는 것이다. 워크숍 참여 예술가 교사들과 강연자는 이 말이 무슨 뜻이고 어떤 상황인지 너무 잘 아니 박장대소를 했다. 어느 나라건 예술적 자질을 갖춘 교사를 만나는 일은 행운과 같은 일이다.  

아이들에게 미술 시간은 개개인의 다양성을 발현하는 기회의 장이며 표현하는 것 자체를 즐기는 시간이다. 그런데 미술이 교육 과목이 되는 순간 일방적인 지시 사항이 되는 기묘한 일이 일어난다. 교사들은 아이들을 일방적으로 지도한 후 시간 내에 작품을 완성했는지 평가하기에 급급하고, 부모들 또한 아이가 무엇을 만들었는지 결과물에만 집착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술 과목 중 특히 미술은 100명이 그림을 그리면 100장의 그림이 다 의미가 있고 가치 있다. 100장의 그림엔 100개의 다른 이야기와 감정이 있는데 이걸 어찌 점수화하고 획일화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부모도, 교사도 아이들은 모두 예술가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이들의 작품을 존중해줘야 한다.  

그를 위해서는 부모가 먼저 미술에 대한 생각을 바꿔보자. 먼저 미술학원은 그림을 잘 그리도록 기술을 가르쳐주는 곳이라는 생각보다 아이들이 더 다양한 예술적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공간이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그러면 아이는 미술학원에 들어서는 순간마다 ‘창작의 즐거움’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주어진 작업에 대해 스스로 여러 방법을 모색하고 문제를 해결해 가며 아이는 즐거움을 느끼고 창의성을 발휘한다. 작업이 완성되지 않으면 좀 어떤가. 미술학원에서는 자유롭게 탐구하고 그 과정 자체를 즐기면 된다. 교사와 부모의 역할은 아이의 탐색을 지켜봐주는 친구이자 다른 세계로 이끌 안내자이며, 아이의 순수에 동참하고 협력하는 예술가이다.  

좋은 미술 교사는 묘사에 능한 아이에겐 주황색 당근을 자세히 표현하게 해 성취감을 맛보게 하고, 창의적인 활동을 즐기는 아이에겐 분홍색 당근도, 파란색 당근도 권해볼 수 있는 교사다. 또 늘 한 발자국 뒤에서 아이들을 지켜보며 아이들이 충분히 미술을 즐길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교사다. 아이들에겐 그런 유연함을 가진,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아이를 존중해주는 미술 선생님 그리고 부모가 필요하다. 아이들이 알아볼 수 없는 그림을 그려 오더라도 ‘아이가 정말 즐거운 시간을 가졌구나’ 하며 함께 웃을 수 있는 교사와 이를 이해해주는 부모 가 있다면, 아이들은 늘 미술 시간을 기다리게 될 것이다.




김지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그림책 작가이며, 아이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미술 선생님이다. 부모와 교사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 로 20년 가까이 아이들과 미술로 소통해온 경험을 모아 <지우개 선생님의 이상한 미술 수업>이란 책도 냈다. 그동안 쓰고 그린 책으로는 <부적> <깊 은 산골 작은 집> <꽃살문> <한글 비가 내려요> <개그맨>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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