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폴라리스> '아이와 꿈' 中
에디터 한순호 포토그래퍼 강봉형
부모의 탄생
잠든 아이의 머리카락을 살며시 쓸어본다. 이미 자정이 다 된 시각.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 있다. 고개를 들어 거실을 보니 아이 장난감이며 찢겨진 색종이 조각들로 난장판이다. 아마 부엌에는 설거지할 그릇들이 잔뜩 쌓여 있을 것이다. 내가 이러려고 결혼했나, 내가 이러려고 애를 낳고 키우고 있나.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낮은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나에게는 꿈이 있다. 나라를 구하는 것도 아니오, 위대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오,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다. 나는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 내 아이에게만큼은 정말 좋은 엄마. 그러나 좋은 엄마가 되는 길은 평범한 것 같아 보여도 결코 쉽지 않다. 특히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말이다.
일단 요즘은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것부터 굉장한 용기가 필요하다. 이전 부모 세대에게 결혼과 출산은 어른이 되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 중 하나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결혼과 출산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 것은 기뻤으나 그만큼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고민도 깊었다. 또한 예전에는 최소한 돈이 많고 적음이 아이를 낳고 키우는 부모의 자격에 해당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부모가 되는 것은 어찌 보면 인간이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권리이기도 한데, 지금은 마치 경제적 능력이나 사회적 지위가 있어야만 부모의 자격이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또 잘난 부모가 너무나 많다. 인터넷 세상에 접속해보면 나보다 요리도 훨씬 잘하고, 일도 육아도 똑 소리 나게 잘하는 부모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정보를 얻으려 또는 신기한 마음에 블로그나 카페를 클릭하다가 점점 작아지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이렇게 하면 더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다고 여기저기에서 아우성인데 정작 좋은 부모가 되는 길은 더 멀어 보인다.
이러한 이유로 나도 결혼하기 전부터 좋은 부모는커녕 부모가 되는 것이 참 두렵고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그리고 당시 나는 이런 사회적, 환경적 어려움 외에 한 가지가 더 고민됐다. 바로 모성애에 대한 부분이었다.
결혼 전 <케빈에 대하여>란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자유로운 삶을 즐기던 여행가 에바는 원하지 않던 출산을 하게 된다. 에바는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 타고난 모성이란 것이 그에게는 없었다.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엄마의 모습을 흉내 내려고 하지만 아들 케빈과의 관계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악화돼 갔다. 케빈은 그런 에바에게 이렇게 이야기 한다. “익숙한 것과 좋아하는 것은 달라. 엄마는 그냥 나에게 익숙한 거야.”
처음 부모가 될 것임을 알게 된 순간을 기억한다. 결혼 2주 만의 임신. 신혼생활을 좀 즐기고 아이를 갖자고 했던 남편과 나는 예상치 못했던 임신 통보에 병원을 나와 밤거리를 정처 없이 걸었다. “우리가 엄마, 아빠가 되다니!” 화려한 네온사인이 빛나는 신촌 거리를 걸으며 같은 말을 수없이 반복했던 기억이 난다. 나와 남편 모두 정신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집에 가기 위해 건너야 할 횡단보도도 그냥 지나쳤고, 그저 남들이 가는 방향대로 따라 꿈꾸듯 거리를 걸었다. 한참을 길거리에서 배회한 후 집에 돌아와서야 내 감정이 참 복잡하다는 걸 느꼈다. 누웠지만 잠이 오질 않았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두려움을 떨쳐내려 애써야 했다. 나는 한 번도 내가 좋은 엄마가 될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아이를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고, 누군가를 세심하게 돌보는 것은 가장 자신 없는 일 중 하나였다. 다정다감한 성격도 아니었다. 이런 나도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좋은 부모가 되고 싶은데…. 그렇게 ‘좋은 부모가 되고 싶다’는 꿈과 처음 마주하게 됐다.
좋은 부모가 되고 싶어라
누군가 그랬다. 두려움은 그것의 실체를 모를 때 생긴다고. 모성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가 예뻐 보이며 서서히 사라졌다. 예상보다 꽤 괜찮은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엄마라는 새로운 이름에 조금씩 적응해 갔다. 세상의 여느 엄마들처럼. 그 과정에는 지금까지의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정신적·육체적 노동이 뒷받침돼야 했다. 그런데 그 노동은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았다. ‘정말로 세상의 수많은 엄마들이 이렇게 대단한 일을 소리 소문도 없이 해내고 있는 것인가?’에 대해 다른 엄마들에게 물어볼 정도였다. 그렇게 물어보면 다들 웃고 넘겼지만 나는 진심으로 궁금했다.
내가 서 있는 자리는 나의 인생에서 처음 와보는 낯선 곳이었다. 아이를 키우며 막막한 순간을 마주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당시 난 전문가 또는 지인들의 조언을 따르고 배우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아이와의 관계가 좀 적응되자 더 좋은 부모가 되고 싶은 욕구도 샘솟았다. 어떤 것이 좋은 부모의 모습인지를 생각하기보다 그냥 열심히 하려고만 했던 것 같다. 아이에게 하나라도 더 해줘야 좋은 엄마라고 생각했고, 그러다 보니 좋은 부모란 기준을 정해 놓고,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 아등바등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지나친 욕심이었다. 육아 서적은 아이의 발달을 목표로 가장 이상적인 부모의 역할을 다룰 수밖에 없다. 그 기준에 맞춰 나를 채찍질하다 보면 금방 지칠 수밖에…. 여기저기서 보고 들은 육아법을 남편에게 요구하다 보니 남편 또한 점점 육아를 더 부담스러워하는 눈치였다. 그 모습을 보며 나만 더 좋은 부모를 위해 노력하는 것 같아 속이 상했다. 그때가 아이를 낳고 겪은 가장 힘든 시기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 이 시점에서 돌아봐도, 내게는 누군가를 세심하게 돌보는 재능은 별로 없는 듯하다. 나는 친정엄마나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동생에게 자주 잔소리를 들었다. “이렇게 추운 날 달랑 바지 하나만 입혀 나오면 어떻게 하냐” “언니는 유모차 운전을 너무 험하게 해” 등 대부분 ‘시시콜콜한’ 얘기들이었다. 그렇다. 중요한 건 나에게 그런 말들이 ‘시시콜콜한’ 이야기로밖에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잔소리를 해도 크게 달라지는 게 없자 엄마는 “성격이 저런걸, 뭐”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는 진심으로 내 아이가 예민한 성격이 아님을 감사했다. 만약 아이가 예민했다면 좋은 엄마가 되겠다는 나의 꿈은 더욱 멀어졌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적응해가며 3년을 함께 살고 있다.
꽤 괜찮은 엄마를 위하여
좋은 부모란 무엇일까. 아이가 한 달 후면 네 살이 되는 시점에서 나는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좋은 부모의 기준은 다 다를 것이다. 돈이 많아서 아이가 원하는 걸 많이 해줄 수 있는 부모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친구 같은 부모가 최고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이를 위해 모든 걸 희생하는 부모가 좋은 부모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과연 어떤 건 맞고, 어떤 건 틀리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떤 부모가 되고 싶은지 남편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남편은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게 해주고 싶다고 했다. 공부는 못해도 상관없으니 마음껏 뛰어놀게 하고 싶다고도 했다. 그러더니 뜬금없이 “음악을 한다고 하면 시킬 것”이라고 선언을 했다. 어릴 적 음악이 좋아 뭐라도 하고 싶었는데 결국 못했기 때문이란다. 어떤 부모가 되고 싶은지 물었는데, 답변은 엉뚱하게도 어떤 아이로 키우고 싶은지로 돌아온다.
흔히 좋은 부모 혹은 훌륭한 부모란 평가를 내릴 때 아이의 성공 여부를 판단 기준으로 삼는다. 어쩌면 그런 프레임에 익숙하기 때문에 “어떤 부모가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어떤 아이로 키우자”는 답변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뭐,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그게 전부는 아닌 것이 분명하다. 내 기준으로 봤을 때 난 꽤 괜찮은 엄마다. 일단 처음 아이가 태어났을 때보다 할 수 있는 게 훨씬 많아졌다. 결혼 전까지는 발라낼 줄 모르던 생선 가시도 모조리 발라낼 수 있고, 밥을 먹다가 아이의 똥을 치우는 일도 감정의 동요 없이 해낼 수 있게 됐다. 저절로 된 것이 아니라 노력하고 환경에 적응한 결과다. 무던한 내 성격이 육아에 방해만 된 것도 아니다. 아이가 집을 잔뜩 어질러놓아도, 실수를 하더라도 남들보다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엄마가 덜렁대고 허술한 덕분에 아이는 조심성이 많고 자기 물건을 잘 챙긴다.
내가 아직 좋은 엄마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3년 동안 ‘썩 괜찮은 엄마’라고 스스로 믿게 됐으니, 앞으로 좋은 엄마란 꿈을 이룰 가능성도 많지 않을까. 내가 생각하는 좋은 엄마의 모습은 이렇다. 내 아이의 인생에서 조연이 됨을 기꺼이 인정할 수 있는 엄마, 내가 할 수 없는 일에 매여 속상해 하기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내는 엄마. 또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아이가 커서 “엄마는 내가 있어 참 행복했었다”고 기억하면 좋겠다.
좋은 부모란 꿈이 완결되는 순간은 아직 한참이나 남았다. 나는 내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한순호
세 살 아들을 둔 워킹맘. 월간 <폴라리스> 에디터이기도 하다. 출산 후 2년 동안은 ‘군대에 왔다’란 마음으로 살았고, 지금은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다’는 마음으로 최대한 느긋하고 행복하게 하루하루를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