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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 폴라리스 Dec 09. 2016

재능에 대한 오만과 편견

월간 <폴라리스> '아이와 꿈' 中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천재라는 소리를 매우 싫어 했다. <최후의 만찬>을 본 친구가 “자네 같은 천재 는 다시는 없을 것”이라고 말하자 불같이 화를 내며 “밤낮으로 이 그림을 그리며 노력하는 나를 본 사람 이라면 감히 내게 천재라는 말을 하지 못할 것!”이라 고 대답했다. 우리는 과연 재능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을까. 재능에 대한 몇 가지 편견과 오해들. 

글 박재윤   에디터 한순호   포토그래퍼 강봉형

재능은 타고 나는 것이다

엄마의 성격, 아빠의 곱슬머리를 닮은 아이를 보며 많은 부모들은 아이가 부모의 재능도 물려받았을 것이라고 단정한다. 그것이 비록 천부적인 재능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특히 열 살이 되기도 전에 성인들의 지식 수준에 도달하고, 바이올린 협주곡의 명연주를 해내는 신동들을 보면 재능은 노력이나 환경적인 요인보다는 하늘이 내려주는 선천적인 능력임을 확신하게 되기도 한다. 재능은 정말 타고나는 것일까? 환경적인 영향은 어느 정도일까? 
그간 수많은 과학자들이 시행한 쌍둥이 연구를 보면 DNA의 유전력은 매우 강력한 듯하다. 태어난 직후 헤어져 전혀 다른 환경에서 성장한 일란성 쌍둥이들이 외모뿐만 아니라 성격이나 관심사까지 비슷해 화제가 되는 것을 우리는 종종 목격한다. 사실 체중, 키, 신진대사 등 육체적 특징은 물론 지성, 기질․성격, 불안이나 우울증을 겪을 가능성 등 심리적 특질에는 뇌의 물리적 구조가 반영되고, 뇌의 구조는 유전자의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이런 유전자의 영향력 아래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단,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유전이 된다는 사실과 불변성은 다르다. 유전된다는 것이 고정화되거나 발달시킬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실상 우리의 특질들의 상당 부분은 유전적 영향을 받는 동시에 환경 조건의 영향도 받는다. 최근 에릭 터크하이머 연구팀이 발표한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각각 생후 10개월과 생후 2년이 됐을 때 두 차례 지적 능력 검사를 받았던 미국의 쌍둥이 750쌍을 관찰한 결과 모든 핵심 변수는 가정환경이었다. 
또한 재능이 타고나는 것이라면 그에 해당하는 유전자가 있어야 하는 데, 특정 재능을 담당하는 유전자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풍부한 DNA 정보를 갖게 된 이후에 이뤄진 연구에서조차 재능이나 IQ를 결정하는 유전자는 발견되지 않았다.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중요한 발견 중 하나는 환경이 유전자의 발현을 촉진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유전자 구성은 끊임없이 환경과 상호작용을 하고 있기 때문에 만약 한 시점에 완전히 다른 환경에 놓여진다면 지 금까지 휴면 상태로 머물고 있는 유전자가 발현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 는 타고나기만 하거나 만들어지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영재로 태어난 건 행운이다

영재라고 하면 남 얘기로 치부하다가도, 아이가 남달리 잘하는 것을 발견하면 ‘혹시 영재는 아닐까?’라는 기대를 품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그러나 영재가 된다는 것은 과연 행운일까? 
영재라고 하면 평균보다 빨리 배우고, 높은 IQ를 가진 아이를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영재의 가장 큰 특징은 지적·정서적 작동의 특이성이 다. 예를 들어보자. 수학 영재 아동은 대개 빠른 계산과 순식간에 답을 산출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덧셈․뺄셈은 전혀 신기할 것 없는, 직관적으로 가능한 연산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그 방법이나 해법을 물어보면 바로 설명을 못한다. 아이는 ‘그냥 답을 알고 있을 뿐’이니까. 이런 아이들에게 ‘구구단’은 심각한 장애물이며, 어떻게 문제를 풀었는지 전개하고 답의 근거를 증명하라는 시험 문제는 풀 수 없는 난제다. 바로 이런 특성 때문에 영재아들은 대개 학교나 사회에서 적응의 어려움을 겪는다. 한편 정서적 측면에서 볼 때 영재 아동은 극도의 감수성을 지닌 존재다. 주위 환경에서 쏟아져 나오는 모든 정보를 매우 예리하게 인식하고 분석하는데, 문제는 이것들을 일일이 느끼고 통합하고 정교화하기가 대개는 어렵다. 그 결과 아이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 어떤 감정 영역과도 거리를 두려 하고, 심지어 자기 자신의 감정과도 단절하려 한다. 이러한 작동은 영재의 정서 발달을 약화시키고 취약한 아이로 만든다. 
영재를 소개하는 한 TV 프로그램에 수학 영재가 출연한 적이 있다. 겨우 여섯 살에 중학교 수준의 문제를 푸는 아이였다. PD는 프로그램 취지에 맞게 아이의 수준을 알아보려 문제를 냈다. 그런데 문제가 너무 어려웠고 아이는 당황했다. 그런데 당황하는 아이의 표현이 너무나 처절해보였다. 의사는 아이 마음속에 있는 자격지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주변 사람들의 칭찬에 부모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무조건 더 잘해야 한다는 강박과 불안에 사로잡혀 있다는 게 의사의 견해였다. 영재가 가진 지능과 감성의 놀라운 능력은 매우 매력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영재의 특성은 놀라운 능력만큼이나 숱한 어려움을 야기한다. 영재도 결국 평범한 아이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주위의 도움이 절실한 아 이일 뿐이라는 것을 어른들이 너무 쉽게 잊어버린다. 


아이가 신동형일지 대기만성형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따라서 섣불리 아이의 가능성을 포기하거나, 지금 당장 부모가 원하는 대로 따라오지 못한다고 해서 다그쳐서는 안 된다.

 
더디면 재능이 없는 걸까

“나를 만든 건 1%의 재능과 99%의 노력이다.” 이는 천재 발명가 에디슨의 말이다. 유년기 에디슨이 영재와 거리가 멀었다는 건 대부분 아는 사실이다. 에디슨은 요즘 기준으로 보면 ADHD에 가까운 산만한 아이였다고 한다. 그리고 난청이 있어 잘 듣지 못했고 초등학교 때 이미 지역 교육청에서 학습부진아로 분류됐다. 결국 교사는 에디슨에게 “바보!”라며 구박을 했고 그 사실을 전해들은 에디슨의 어머니 낸시 여사는 아들을 학교에서 데리고 나오기에 이른다. 더딘 아이의 성공 사례에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천재 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도 포함된다. 아인슈타인은 천재였지만, 영재는 결코 아니었다. 어린 시절 아인슈타인은‘어떤 일을 해도 성공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됨’이라는 성적표를 받아올 정도로 지적 능력이 떨어졌다. 조선시대 최고의 종합 농업 서적 <농가집성>을 집필한 신속 역시 어려서부터 무엇이든지 늦된 아이였고 마흔다섯이 돼서야 과거에 급제할 수 있었다고 한다.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더 많이 배우도록 권하는 우리나라 교육 풍토에서 아이의 속도를 그대로 인정해주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내 아이가 신동형일지 대기만성형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따라서 섣불리 아이의 가능성을 포기하거나, 지금 당장 부모가 원하는 대로 따라오지 못한다고 해서 다그쳐서는 안 된다. 에디슨, 아인슈타인의 어머니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던 양육 태도는 인정과 칭찬이었다고 한다.그들은 못난 아이를 질책하는 대신 광적인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다. 훗날 에디슨은 자신의 어머니를 이렇게 기억했다. “어머니께서는 늘 나를 믿어주셨다. 그 덕에 나는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다 는 자신감이 생겼고, 그녀를 실망시키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목표 의식도 재능이다

프랑스의 대문호이자 <노트르담 드 파리> <레미제라블>의 작가인 빅토르 위고(1802~1885). 나폴레옹 휘하의 군인이었던 아버지와 왕당파 집안 출신의 어머니 아래서 태어난 위고는 열 살에 코르디에 있는 기숙학교에 입학했다. 이 시기에 독서와 시에 심취하기 시작했는데 그러면서 자연히 작가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불과 열한 살의 나이에 “나는 샤토브리앙(프랑스 낭만파 문학의 선구자)이 아니면 아무 것도 되지 않겠다”는 글을 일기장에 적었다. 이후 위고가 첫 시집 <오 드와 잡영집>을 낸 건 그로부터 9년 후인1822년이었다. 분명 그에게는 작가로서의 자질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창작에 대한 열정과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이 없었다면 위대한 대문호가 될 수 있었을까. 
재능을 논할 때 선천적 지능과 후천적 환경은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개인의 목표 의식이나 열정은 거의 다뤄지지 못했다. 저명한 인지심리학자 스콧 배리 카우프만은 이러한 점을 지적하며 지능을 ‘개인적 목표를 추구할 때 일어나는 참여와 능력들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으로 재정의 한다. 이른바 ‘개인지능(Personal Intelligence)’이다. 아이들마다 좋아하는 것도 다르고, 관심을 갖는 분야도 다르다. 자신이 좋아하고 관심이 있는 영역에서 아이들은 끈기를 가지고 노력하게 되고, 그 결과 더 많은 성취와 발전을 이룬다. 만약 아이의 꿈과 목표를 무시한 채 지능지수나 성장한 환경만 보고 아이의 가능성을 판단한다면, 불가능해 보이는 것에 도전하라고 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 될 것이다. IQ 테스트와 각종 시험으로 아이들의 능력을 판별하기보다는 아이들이 할 마음을 갖고 지속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불가능한 미래도 꿈 꾸도록 끊임없이 격려해주는 태도가 어른의 몫이 아닐까.
 
IQ의 함정지능 테스트의 허와 실 

처음으로 지능의 개념화와 측정을 시작한 이는 프랑스의 심리학자 알프레드 비네였다. 당시 비네가 추구했던 방식은 오늘날처럼 숫자로 표시하는 것이 아닌 문장 이해, 주의력, 기억력, 도덕 판단력을 측정하는 테스트였다. 그는 지능검사법과 동시에 “테스트가 한 사람이 지닌 지능의 절대적 수준을 측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확히 밝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상적인’ 학생들이 함께 뒤처지지 않도록 지적 장애가 있는 학생들을 색출해 내길 원했다. 이후 1914년 독일의 심리학자 윌리엄 슈테른이 정신연령과 나이를 대입해 수치로 검증되는 오늘날의 IQ를 고안해냈다. 이후 IQ검사는 미국을 거쳐 오늘날의 모습으로 자리를 잡았다. 초반에는 여성들의 IQ가 높게 나오자 여성들에게 유리한 항목을 빼기도 했다고 한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지금의 IQ 테스트는 마치 그 사람의 잠재력과 나아가 미래까지도 결정짓는 척도로 여겨지는 듯하다. 여전히 교육 현장에서는 IQ 점수로 학습장애를 판별한다. 그러나 오늘날 사용하는 IQ의 의미는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표준점수를 사용하는 방식과 마찬가지로 같은 시기에 같은 테스트를 받은 또래들 중에서 나보다 낮은 점수를 받은 사람이 몇 명인지 알 수 있는 상대적인 평가다. 즉 IQ가 160인 아이가 IQ가 80인 아이보다 두 배 더 똑똑한 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한 사람의 IQ 또는 재능을 신장이나 체중처럼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같은 사람이라도 잠시 딴생각을 하는 바람에, 감기가 걸려서 집중력이 떨어져 점수가 다르게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검사에 대한 불안감이나 검사에 대한 의욕 등 개인적인 요인들도 IQ 점수를 변화시킨다. 물질적 보상을 제시할 경우 IQ 점수 상승이 뚜렷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또 IQ는 성장하면서 달라진다. 
사실 IQ 점수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문제는 IQ 검사를 통해 아이들을 이런저런 범주에 집어놓고 각각의 다른 꼬리표들을 달아주는 일이다. 검사 점수에 맞춘 부모의 기대는 아이들의 능력을 완전히 바꿔놓을 수도 있다. 낮은 기대치는 아이들에게 ‘자신들의 난관은 변화시킬 수도, 극복할 수도 없다’는 잘못된 믿음을 갖게 하고 종종 동기부여와 사회성에서도 문제를 일으킨다. 만약 IQ 검사를 받은 후 그 잣대로 아이의 가능성을 미리 예단할 것 같다면 아예 IQ 검사는 받지 않는 것이 낫다.
 


참고 도서  스콧 배리 카우프만 <불가능을 이겨낸 아이들>, 잔 시오파생 <영재의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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