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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 폴라리스 Dec 14. 2016

꿈을 찾는 엄마가 꿈꾸는 아이를 키운다

월간 <폴라리스>  '아이와 꿈'  中

꿈이 있기에 나는 행복한 엄마다


엄마도 꿈이 있다. 인생을 한 걸음씩 나아갈 힘이 되는 꿈 말이다. 꼬박꼬박 월급이 나오던 안정된 직장을 박차고 나와 경찰 시험을 준비하고, 잠을 줄여 가며 책을 써서 작가의 꿈을 이룬 김미영 경사를 만났다. 그의 꿈은 과거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이다.

글 박헤나  에디터 한순호  포토그래퍼 유재철

경찰의 꿈을 이루다

초등학생 시절, 김 경사는 정의감에 불타는 소녀였다. 못된 아이들이 약한 친구들을 괴롭히면 어디서든 나타나 혼내주곤 했다. 영웅이 등장하는 영화나 어린이 드라마를 즐겨 보면서 그들처럼 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곤 했다. 그게 현실 속에서는 경찰이었다. 악당을 물리치고 세상을 구하는 경찰 말이다. 하지만 경찰의 꿈은 멀기만 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곧바로 취직을 해야 했으니까. 맏딸로서 집안에 경제적으로 도움이 돼야 했다. 
“늘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듯 의기소침했어요. 경찰이 되고 싶은 열망이 점점 더 커졌죠. 직장 생활을 하면 할수록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동경이 더 커졌고, ‘나는 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나’하는 생각에 우울하기까지 했어요.”
2004년, 결국 그는 직장에 사표를 냈다. 경찰이 되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어려운 결단을 내린 것이다. 꿈을 실행에 옮기기까지 자그마치 5년이란 시간이 걸린 셈이었다. 
“꼬박꼬박 월급이 나오는 직장을 무작정 그만두고, 어리지도 않은 나이에 경찰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겠다고 하니 가족조차 못 미더운 눈치였죠. 9급 공무원 시험이 뭐 대단한 도전이냐 싶을 수도 있지만, 당시 이 시험에 빨리 합격하지 않으면 생계를 위해 다시 적성에 맞지도 않는 회사를 찾아서 취업해야 했기에 정말 이를 악물어야 했어요.”
엄마는 “1년 안에 승부를 내라”고 못을 박았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 큰딸이 퇴직금으로 노량진 고시원에 들어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겠다고 하니 걱정과 우려가 컸던 것이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벽에 붙여 놓은 토익 단어들을 외우고, 학원에서도 강의실 앞자리를 맡기 위해 뛰어가는 5분의 시간이 아까워 강의 테이프를 들었어요. 한 번은 추운 겨울날 오전 9시부터 하는 보강 수업을 들으러 갔는데 7시부터 수강생들이 길게 줄을 서 있더라고요. 그 대열에 껴서 기다리는데 1시간쯤 지나 손발에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 거예요. 깜짝 놀라서 온몸에 열을 내기 위해 노량진 길바닥을 미친 사람처럼 뛰기도 했어요. 병원에 가는 시간도 아까운데 동상이라도 걸릴까봐 그런 거죠.”
밥 먹는 시간을 아끼려고 삼각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고, 고시원 의자에 앉아서 먹고 마시고 졸면서 공부한 결과, 7개월 만에 필기시험에 합격했다. 예상보다 짧은 기간 내 합격하자 가족이 가장 놀랐다. 남들보다 똑똑하지도 않았고, 공부에 특별한 재능이 있지도 않았다. 꼭 경찰이 되겠다는 절실함이 에너지가 됐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경찰의 꿈을 이룬 뒤 처음으로 배치 받은 곳은 강화도의 한 지구대였다. 첫 출근하던 날, 사람들은 그 지역 최초의 여경이라며 김 경사를 반기는 한편 신기하게 여겼다. 남성 비율이 높은 직업 특성상 무엇보다 여성이라는 선입견과 편견을 깨는 것이 경찰 조직에서 멋지게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인정받고 싶었어요. 가장 기본적인 인사부터 시작해 탈의실과 화장실 청소까지 시키지 않아도 나서서 했죠. 시간이 날 때마다 그 지역의 지도를 보며 길을 외우기도 했어요. 당시 맡은 지역이 도시에서 떨어진 시골이라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해도 이상한 곳으로 안내해줄 때가 많았거든요.” 
한 번은 도둑이 들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하는데,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해도 안내가 나오지 않았다. 같이 출동한 선배 경찰도 그쪽 길을 잘 몰랐다. 그는 곧바로 차를 몰아 신고가 들어온 장소까지 단숨에 찾아갔다. 그 뒤 똑 부러지게 일 잘하는 경찰로 동료들의 신뢰를 받게 됐다. 피나는 노력의 결과였다. 열심히 하는 자에게 하늘은 기회를 준다고 하지 않았던가.


엄마도 꿈이 있어요?

경찰의 꿈을 이루고,  경찰인 남편을 만나 두 아이의 엄마가 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상을 보내는 사이 그의 꿈은 현실 속에 묻히는 듯했다. 그러나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시인 폴 발레리의 말처럼 꿈에는 삶을 이끄는 힘이 있었다. 
“두 아이를 낳고 육아 전쟁을 치르느라 여념이 없을 때, 제 모습이 참 낯설었어요. 하고 싶은 일들을 적어놓은 드림 리스트에 먼지가 쌓이고 현실에 안주해 의욕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죠.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이가 자라서 ‘엄마도 꿈이 있어요?’하고 물으면 뭐라고 답해야 할까. 그때 지갑 속에 꼬깃꼬깃해진 채 들어 있던 오래된 드림 리스트를 꺼냈고, 접어두었던 꿈 하나를 집어 들었죠. 그게 바로 책 쓰기였어요.”
김 경사는 책을 쓰겠다는 오래된 꿈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첫째가 다섯 살, 둘째가 한 살 때였다. 책 쓰기 카페에 가입해 정보를 얻었고, 주말이면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책 쓰기 강의를 쫓아다녔다. 늦은 시간까지 야근을 하고 집에 돌아와 아이들을 돌보고 재운 뒤 밤 12시가 돼서야 책상 앞에 앉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힘이 솟았다. 하루에 4시간밖에 못 자는데도 불구하고 에너지가 넘쳤다. 그렇게 꿈은 꿈을 이룰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마술 같은 힘을 발휘했다.
사실 그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신혼 시절인 2008년부터다. 작가가 되고 싶은 꿈을 발견한 뒤 지방지에 독자 투고를 시작했는데 그 횟수가 대략 30회 정도 된다.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글을 쓰면서 주민들에게 경찰 업무와 관련된 중요한 정보를 알리기도 했다. 원고를 투고하며 개인적 글쓰기 욕구까지 해소하고 경찰 홍보도 하니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둔 셈이다. 
“첫아이가 태어나고 한동안은 일과 육아를 감당하는 것조차 버겁게 느껴졌어요. 근무 시간에는 일이 너무 많아 늘 신경이 곤두서 있었고, 집에 가면 돌도 안 된 아이를 돌봐야 했기에 여유가 없었고요. 그러다 2010년 지구대 관리반 업무를 담당하면서 지방지 독자 투고를 다시 시작했어요. 아이를 재우고 늦은 밤 욕실에서 샤워를 하는 순간에도 원고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설거지를 하다가, 아이 기저귀를 갈다가도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스마트폰이나 수첩에 기록했죠. 아직도 집 안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수첩엔 그때의 기록이 남아 있어요.”
지금도 메모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메모한다. 운전을 하다가도, 음악을 듣다가도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음성으로라도 메모를 한다. 스마트폰에는 그렇게 남긴 길고 짧은 글들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 김 경사의 소중한 꿈 조각들이다.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 가슴을 뛰게 한다


“읽으면 활력이 되는 힘 있는 책을 쓰는 작가 되기(1년에 1권) / 언제든지 아이들과 꿈을 이야기할 수 있는 엄마 되기 / 내면도 중요하지만 외모에도 투자하기 / 매월 불우 이웃 돕기 / 경찰 이외에도 새로운 꿈이 생긴다면 도전하기 /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는 엄마 되기 / 남편과 가벼운 운동하기 / 언제 어디서든 아이들과 미친 듯이 놀아주기”


김 경사의 지갑 속에 언제나 들어 있는 드림 리스트다. 드림 리스트는 자주 업그레이드된다. 이룬 것이 있으면 빠지고, 새로 하고 싶은 꿈이 생기면 추가된다. ‘독서 지도사 1급 자격증 취득’과 ‘경찰청 학습 리더 도전’ 처럼 이뤄낸 후 지운 것도 있지만, 추가되는 것이 훨씬 많은 게 사실이다. 
“어떤 사람들은 왜 자꾸 딴짓을 하냐고 물을지도 몰라요. 경찰이라는 직업, 아내와 엄마로서의 삶에 모든 에너지를 투자하라고 말할 수도 있죠. 하지만 꿈을 꾸고 이루어가는 것은 딴짓이 아니라 혁명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이 조용한 혁명이 삶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거든요. 무엇보다 뭔가를 성취해 낸 뒤 찾아오는 자신감은 경찰이라는 직업에 충실하고, 아내와 엄마로서 삶에 즐거움을 느끼고 오늘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힘이 되죠.”
힘들고 고단해도 김 경사가 꿈 찾기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함께 꿈을 이야기하고 고민하는 꿈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같은 부서에서 일하는 동료 워킹맘도 그중 한 명이다. 조직 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인정받지 못한다는 절망감이 밀려들 때면 함께 차 한 잔을 마시며 서로의 꿈을 이야기하고, 열정을 되살릴 수 있도록 응원해준다. 날마다 전투 같은 삶을 사는 워킹맘이지만 항상 빳빳하게 다린 제복에 흐트러지지 않고 자기 관리가 철저한 동료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고.
두 명의 동생도 꿈 친구다. ‘드림 워커’라고 이름 붙인 SNS 채팅방에서 삼 남매는 항상 꿈을 이야기하고 서로의 꿈을 지지해준다. 군무원인 여동생도 두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이지만 틈날 때마다 공예를 배우며 공예가로서의 꿈을 실현해 가고 있다. 남동생은 잘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실용음악과에 편입했다. 지금은 실용음악학원을 운영하는데 “누나가 글쓰기를 가르치고, 나는 음악을 가르치는 종합예술학원을 함께 운영하자”며 미래의 꿈을 이야기하곤 한다. 
“책을 냈을 때 경찰청 동료들이 모두 놀라더라고요. 워킹맘이 언제 글을 썼냐고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런 상황이었기에 <꿈을 찾는 엄마만이 꿈꾸는 아이를 키운다>는 책을 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불가능할 것 같던 상황에서 노력이 만들어준 반전이 짜릿하기도 했고, 꿈을 이뤘다는 성취감이 무엇이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줬죠. 그 힘을 원천 삼아 요즘엔 또 다른 책을 써 보리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엄마에게서 배운 열정

사실 김 경사가 이토록 열정적으로 살아온 바탕에는 ‘엄마’라는 가장 강력한 롤모델이 있었다. 김 경사는 아버지가 의류 공장을 운영할 때만해도 남부럽지 않을 만큼 경제적 여유가 있는 집의 맏딸이었다. 1980년대 자가용을 가진 집이 흔치 않던 시절, 차가 두 대나 있는 집이었다. 하지만 거듭된 사업 실패로 빚더미에 올라앉았고, 엄마는 세 아이를 키우기 위해 무슨 일이든 가리지 않고 해야 했다.
“엄마는 젊었을 때부터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계셨어요. 매사에 적극적이고 활기찼으며 몸에서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죠. 다이어트를 한다며 동네 아줌마들과 매일같이 에어로빅을 다녔고, 서예를 배우고 전시회를 하기도 했어요. 중학교 때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한 뒤, 그때부터 엄마가 일을 시작하셨죠. 두 딸이 결혼한 지금은 조금 여유 있게 일을 즐기고 계세요. 원래 주말엔 가게 문을 닫는데, 문의하는 손님이 많아지자 주말에도 일하며 저보다 더 바쁘게 사시죠. 얼마 전 엄마가 ‘나는 지금이 가장 행복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물론 세 아이를 키우며 가족의 생계를 꾸려나가는 일은 엄마에게도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김 경사가 중학생이었던 시절, 새벽까지 일하고 고된 몸으로 집 안에 들어서던 엄마는 온몸이 지쳐 있었고 얼굴에는 피곤이 서려 있었다. 혹여 자식들이 말썽을 부리거나 말을 듣지 않으면 지나칠 정도로 짜증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모습까지도 지금은 아름다운 엄마의 모습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고. ‘세 아이를 키우며 일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하는 연민과 함께 말이다.  
그가 친정엄마를 열정의 롤모델로 삼았듯이, 요즘 여덟 살짜리 아들 우석이는 엄마처럼 되고 싶다는 말을 종종 한다.
“우석이는 이제 여덟 살인데 엄마를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해요. 한 번은 ‘엄마는 책을 읽거나 글 쓰는 걸 좋아하는데 책을 냈으니 꿈을 이뤘잖아요’라고 말해서 깜짝 놀랐어요. 꿈을 이룬다는 것이 무엇인 줄 안다는 게 놀라웠거든요. 요즘엔 자기도 이야기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고 종종 말해요. 그러고는 종합장에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써서 만화책을 뚝딱 만들어내곤 하죠. ‘엄마, 나도 작가가 될래요. 엄마처럼요!’하면서요.”
부모의 입장에서 이만큼 뿌듯한 일이 또 있을까. 꿈을 이룬 엄마를 자랑스러워하고, 자기도 그렇게 꿈을 이루고 싶다며, 무엇을 하고 싶은지 고민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김 경사는 생각한다. 꿈을 꾸고 이뤄가길 참 잘했다고.
오늘도 김 경사는 드림 리스트에 꿈을 기록한다. 그리고 아이를 키우고 직장 생활을 하는 틈틈이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지금은 글을 쓰는 경찰로 살고 있지만, 언젠가 은퇴한 뒤에는 전업 작가로서 인생 2막을 열 계획이다. 꿈이 있기에 그에게 현재의 시간은 훨씬 더 값지고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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