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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 폴라리스 Jan 19. 2017

엄마, 아빠가 뒤따라가는 자존감여행

월간<폴라리스>Vol.180 '안녕,자존감'中

아이들과의 여행에서 주도자는 늘 부모다. 어디에 가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에 대한 계획들이 부모 머릿속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한 번쯤은 아이들이 가고 싶은 곳, 보고 싶은 곳을 직접 정하고 부모는 그저 뒤따르는 여행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즐거운 추억을 넘어 아이의 자존감을 성장시키는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글 박헤나  에디터 윤경민  포토그래퍼 유재철  

                                                                                                                                                     

함께 이야기하며 여행을 계획하다


“엄마, 한국이 밤이면 미국은 아침이죠?” “응.” “엄마, 한국이 아침이면 미국은 밤이에요?” “그렇지.” “그런데 엄마, 왜 그런 거예요?”
얼마 전 다섯 살 난 쌍둥이와 함께 미국 여행을 다녀왔다. 쌍둥이 중 첫째인 서준이는 우리가 사는 한국과 외삼촌이 사는 미국이 14시간이나 시간 차이가 난다는 사실이 신기한지 묻고 또 물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궁금증을 해소해주기 위해 나는 지구본까지 꺼냈다. 
“잘 봐. 지구에서 한국과 미국은 서로 반대편에 있지? 지구는 하루에 한 번 뱅글뱅글 돌기 때문에 미국이 태양 쪽에 있을 때 한국은 태양 반대편에 있고, 한국이 태양 쪽에 있을 때 미국은 태양 반대편에 있는 거야. 그래서 낮과 밤이 서로 다른 거지.”
다섯 살 아이에게 설명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지구의 자전과 공전 이야기를 하는데, 문득 요즘 들어 아이가 어린이집 도서관에서 반복해서 빌려오는 <태양의 가족>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최근 아이의 관심은 온통 지구와 태양이 속한 우주에 가 있었다.
“서준아, 우주에 대해 들어본 적 있어?”
“네, 있어요. 엄마! 어린이집에서 얼마 전에 옥토끼우주센터에 다녀왔잖아요. 거기서 우주복을 입기도 했고 우주 엘리베이터를 타기도 했어요. 공룡 친구들도 만났고요. 난 공룡이 갑자기 움직여서 엉엉 울었어요. 그런데 또 가고 싶어요.”
옥토끼우주센터는 강화도에 있는 항공우주과학 테마파크로 태양계와 우주, 로켓을 눈으로 직접 보고 체험하며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다. 지난해 11월경 어린이집 체험 학습 차 방문해 짧은 시간 둘러보고 온 탓에 미련이 많이 남는 듯했다. 
“엄마, 나 또 우주 엘리베이터 타고, 우주 기차도 타고, 우주인들도 만나고 싶어요.” 
그렇게 아이와 이야기하다가 불쑥 정해진 강화도 여행. 나는 아이들에게 옥토끼우주센터가 있는 강화도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강화도에서 가볼 수 있는 곳들의 사진을 출력해 바닥에 펼쳐 놓고 각자 가고 싶은 곳을 하나씩 더 골라 보게 했다. 
“엄마, 우리 네 살 때 아빠랑 돼지박물관에 갔었잖아요. 그곳에서 아기 돼지랑 염소, 강아지들을 만났는데 그곳에 또 가고 싶어요.”
둘째 아이가 가고 싶은 곳은 강원도 원주에 있는 돼지박물관. 하지만 강화도와 원주를 왕복하려면 하루로는 부족했다. 
“엄마가 알아보니 강화도에도 아기동물원이 있던데 그곳은 어떨까?”
아이는 가고 싶은 곳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여행의 추억 속으로 잠시 빠져드는 듯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으로 두 아이는 넓은 갯벌이 펼쳐진 바다 사진을 골랐다. 
“엄마, 우리 바닷가에 갔는데 바람이 너무 많이 불고 추워서 바닷가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 코코아 마셨었죠? 그 코코아 무척 따뜻했어요. 또 마시고 싶어요.”
올해 초 아빠의 출장에 동행해 강릉 경포대에 다녀왔다. 4월이었지만 바람이 몹시 불어 넘실대는 파도를 멀찍이서 바라만 보다가 꽁꽁 언 몸을 해변 커피숍에 들어가 코코아를 마시며 녹였던 추억을 아이는 기억해낸 것이다.
아이들과의 나들이를 계획할 때면 항상 새로운 것, 아이들이 이전에 경험해보지 않았던 장소로만 시야를 돌렸었다. 익숙한 장소에 혹시나 지루해할까 봐, 아이들에게는 더 다양한 경험을 시켜주는 게 좋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과 고민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작 아이들이 원했던 것은 즐거웠기에 헤어짐이 아쉬웠던 공간이나 추억을 다시금 경험해보는 것이었다.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았다면 미처 몰랐을 마음이다. 그렇게 오로지 두 아이의 선택에 따라 옥토끼우주센터와 강화체험 아기동물원, 동막해변으로 이어지는 하루 일정의 강화도 여행 코스가 완성됐다.


                                                                                                                                                      

다시 만난 우주


여행을 앞두고 두 아이는 몇 달 전 다녀온 옥토끼우주센터에서 받아온 워크북을 꺼내 보고 또 꺼내 봤다. 떠나기 전날에는 스케치북에 물감으로 옥토끼우주센터 전경과 두 마리 토끼를 그렸다. 알고 보니 아이가 그린 두 마리 토끼는 이곳의 마스코트인 ‘코스(Cos)’와 ‘모프(Mope)’였다. 달에서 옥토끼가 방아를 찧고 있다는 옛 어른들의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어 탄생한 마스코트였다.
그토록 다시 가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우주센터에 들어서자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엄마, 아빠와 느린 걸음으로 여유 있게 둘러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이들은 행복해했다. 1층에서는 태양계 여행관, 화성탐험관, 항공역사관, 우주개발 역사관, 우주 생활관, 달 탐험존, 로켓발전사관, 우주왕복선, 국제 우주정거장을 만나볼 수 있었다. 태양·지구·화성·목성 등 태양계를 유심히 살펴보며 우주의 신비로움을 두 눈에 담았다. 
“엄마는 여기 처음 왔으니, 너희들이 안내해줄래?”
아이들은 주저하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 우주 개발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그림 앞에 섰다. 그리고 1957년 러시아가 발사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2호에 타고 있던 최초의 동물 ‘라이카’를 가리켰다.
“엄마! 이 개가 우주선을 타고 우주에 갔대요.”
익숙한 공간에서 자신감을 갖고 엄마, 아빠를 이끄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이곳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이어 지구와 가장 유사한 환경을 가진 화성에서 생명체의 흔적을 찾는 일을 하던 화성 탐사선과 탐사 로봇들을 들여다본 뒤 국제우주정거장 ISS, 달 탐험존 등을 관람했다. 옥토끼우주센터에서 아이들이 가장 기대했던 것은 우주 엘리베이터 탑승. 
“우주 엘리베이터는 지표면에서 위성까지 케이블을 연결해 엘리베이터 방식으로 우주에서 사람이나 물건을 운송하고자 만든 거야.”
엄마의 설명에 아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아이에게는 우주에 대한 이야기들이 아직은 어려울 수 있지만, 그저 놀이기구가 아니라는 것만은 얘기해주고 싶었다.
옥토끼우주센터 야외테마공원 또한 아이들이 다녀온 뒤 한창 열을 올리면서 얘기했던 곳이다. 움직이는 공룡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두 돌 무렵 제주도 공룡랜드에서 본 공룡 모형보다 훨씬 많은 종류의 공룡들을 한자리에서 만난 데다가, 인체 감지 센서가 설치돼 있어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공룡이 움직이는 탓에 여행 전부터 첫째는 “공룡은 무서워서 보기 싫어요”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무서움을 극복할 기회를 주고 싶어 다시 공룡의 숲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 입구에서 뜻밖의 생명체와 조우했다. 바로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E.T>의 주인공 E.T.
“엄마, 그런데 왜 E.T는 공룡이 아닌데 공룡의 숲에 있어요?”하며 거듭 묻던 큰아이는, 집으로 돌아온 뒤 며칠 동안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나에게 새 친구가 생겼어요. E.T.”
우주의 광활함, 그 우주 안의 유일한 생명체인 인간, 그리고 어딘가에 존재할지도 모를 외계 생명체에 대한 생각 등 아이는 무수히 많은 느낌표와 물음표를 간직한 채 그곳을 나왔다.


                                                                                                                                                      

아기 동물들과 교감하다


12월의 추운 날씨 탓에 아기 동물들은 모두 따뜻한 실내 동물원 안에 있었다. 토끼, 오리와 새, 염소와 양, 햄스터 등 아기 동물들의 우리에 들어가 직접 먹이를 줄 수 있는 체험형 동물원. 사실 1년 전만 해도 쌍둥이들이 아기 동물들을 무서워했던 탓에 엄두를 낼 수 없었다. 1년 전 방문했던 원주 돼지박물관에서도, 올여름 여주 곤충박물관에서도 엄마, 아빠는 내심 아이들이 아기 동물들과 가까워지고 교감하길 바랐지만 아이들은 “무서워”하며 울음을 터트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한 해 동안 아이들의 키가 자란 만큼 마음의 키도 부쩍 자라 있었다. 성큼성큼 우리 안으로 들어가 기니피그에 둘러싸여 먹이를 주는가 하면, 머리를 쓰다듬기도 했다.
“엄마, 아기 동물도 엄마와 함께 있으니 행복하겠죠?”
마침 우리가 방문하기 3시간 전에 새끼를 낳은 어미 염소와 아기 염소의 우리 앞에서 아이들은 한참 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두 마리의 아기 염소를 낳고 아직 탯줄이 다 빠져나오지 않았지만, 자기 몸을 추스르기보다 아기들을 돌보느라 여념이 없는 엄마 염소의 모습을 보며 아이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엄마, 우리도 쌍둥이인데 아기 염소들도 쌍둥이인가 봐요. 엄마 염소도 엄마처럼 많이 힘들었을 것 같아요.”
염소 우리 맞은편에는 3주 전 새끼를 낳은 어미 개와 새끼 개가 자리하고 있었다. 평일 오전이라 관람객이 많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닿을 때마다 어미 개는 새끼 개를 감추기 바빴다. 밖으로 기어 나온 새끼를 입으로 물어 집 안으로 옮기는 모습을 보며 아이가 물었다.
“엄마, 저것 좀 봐요. 어미 개가 새끼를 물어요. 새끼가 아프겠어요.”
“어미 개는 새끼 개를 보호하기 위해 안쪽으로 옮기는 거야. 사람들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아이들도 느꼈을 것이다. 새끼를 보호하고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기꺼이 내어주는 어미의 사랑을. 그래서인지 두 아이는 어미가 없는 새끼 동물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동물을 무서워하지 않고 다른 생명의 아픔에 공감할 만큼 훌쩍 자란 아이들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봤다.


                                                                                                                                                      

따뜻한 코코아 한 잔과 함께한 겨울 바다


‘바다’라고 하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한여름 튜브를 타고 놀던 해수욕장부터 떠올린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다섯 살이 되도록 한여름 해수욕장에 가 본 적이 없다. 대신 햇살이 부서지듯 파도에 쓸려오던 봄 바다와 한여름 해수욕 인파가 모두 떠나간 후 썰렁함이 깃든 가을 바다, 두터운 외투를 입고 모자를 쓰고 목도리를 칭칭 감고 장갑을 껴도 코끝이 빨개지던 추운 겨울 바다를 기억한다. 그래서인지 넓은 갯벌이 드러난 동막해변에 이르자 아이들은 망설임 없이 모래사장으로 내달려 갯벌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그대로 멈춰 서서 바다 냄새를 맡는 듯싶더니 이내 “모래 놀이할 것 가져왔어요?”하고 서둘러 묻는다. 한겨울 꽁꽁 언 백사장에서 모래 놀이라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다섯 살 아이라면 능히 살을 에는 추위에 움츠려 들기보다 놀이할 생각에 가슴이 뛰고 온몸이 들쑤실 수밖에 없다. 
벙어리장갑을 낀 두 손을 꼭 잡고 가족이 함께 걷는 모래사장. 한 걸음 한 걸음을 엄마, 아빠와 내딛으며 아이들은 또 무슨 생각을 했을까. 
“우리 따뜻한 코코아 한 잔 마실까?” 하자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어른들의 여행에 늘 커피가 함께한다면, 아이들의 여행엔 코코아가 제격이다. 따듯한 코코아 한 잔을 들고 노송이 어우러진 바다를 바라보면서 아이들은 떠올릴 것이다. 매서운 바닷바람에 꽁꽁 언 몸을 한 잔의 코코아로 녹인 강릉 경포대 여행을, 자유의 여신상을 보기 위해 방문한 리버티 섬에서 갈매기들에게 말을 건네며 코코아 한 잔의 여유를 즐긴 미국 뉴욕 여행을, 그리고 이곳에서 한 잔의 코코아가 준 여유를. 인생의 힘겨운 순간 그 달콤함을 떠올리며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다면 그걸로 됐다. 여행은 그렇게 순간의 느낌으로 기억되는 것이니….
코코아를 마시며 큰아이에게 물었다. 
“아까 엄마, 아빠와 손잡고 걷는 동안 무슨 생각했어?”
사춘기쯤 되면 이런 질문에 아이들은 코웃음을 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섯 살에는 무슨 말이든 생각나는 대로 답을 해주니 그저 고마울 뿐이다.
“엄마와 아빠 손이 참 따뜻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러고 보니 조금 전 둘째 아이가 후후 불어 식힌 코코아 한 잔을 마시며 이렇게 말했었다.
“온몸이 따뜻해지는 것 같아요.”
겨울의 매서운 추위를 경험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따뜻함. 겨울 바다의 아름다움과 꽁꽁 언 몸을 녹이는 코코아의 따뜻함을 알았다는 것만으로도 오늘의 강화도 여행은 가치가 있었다. 
새로운 여행지가 늘어날수록 아이들은 ‘강화도’ ‘옥토끼우주센터’ ‘강화체험 아기동물원’ ‘동막해변’ 등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지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봤던 시간, 직접 여행지를 고르고 계획을 세워봤던 경험, 부모를 이끌며 여행을 주도했던 기억은 영원히 남아 아이들의 삶에 소중한 씨앗이 될 것이다. 그 씨앗을 토대로 아이들이 앞으로 자신의 삶을 스스로 계획하고 주도해나가는 어른으로 자라길 바랄 뿐이다. 


info
옥토끼우주센터 
주소 인천시 강화군 불은면 강화동로 403
문의 032-937-6917 / www.oktokki.com

강화체험 아기동물원
주소 인천시 강화군 길상면 선두리 655-7
문의 032-937-8358 / www.babyzoo.kr

동막해변
주소 인천시 강화군 화도면 해안남로 1481
문의 032-937-4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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