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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 폴라리스 Jan 23. 2017

꿈 많은 아빠와 엄마,‘깡촌’으로 내려가다

월간<폴라리스>Vol.168 '아이의 마음'中

많은 부모들이 아이를 키우는 일은 포기의 연속이라고 한다. 사소하게는 커피 한 잔의 여유와 친구와의 만남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오랫동안 지켜왔던 꿈이기도 하다. 하지만 포기나 희생이라는 단어에는 언제나 부작용이 생기기 마련이다. 아이들과 함께 꿈을 이뤄나가는 방법은 없을까. 부모와 아이, 모두의 행복을 찾아 시골로 떠난 가족을 만나기 위해 전남 고흥으로 향했다.


에디터 윤경민  포토그래퍼 강봉형  



남과 여, 가족을 꾸리다

                                                                                                                                                      

최종규 씨와 전은경 씨는 우리말 운동을 하는 인터넷 카페에서 활동하며 처음 인연을 시작했다. 온라인 모임이 대개 그렇듯 이들 또한 서로의 존재만 어렴풋이 알 뿐 얼굴을 보던 사이는 아니었다. 그러던 중 2007년 종규 씨가 인천에 작은 개인 도서관인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를 열면서 두 사람의 만남은 자연스레 이뤄졌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던 낯선 여자, 은경 씨는 도서관 일을 거들어주겠다면서 종규 씨를 찾아왔다. 닮은 구석이 많았던 두 사람은 이미 오래전에 약속이라도 한 듯 자연스럽게 함께 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부부가 됐고, 딸(사름벼리, 9세)과 아들(산들보라, 6세)을 차례로 낳으며 두 아이의 부모가 됐다. 부부가 되어 한 집에 사는 일도 처음이었지만 부모가 되는 것은 정말 생경한 일이었다. 어떤 부모가 될 것인지, 어떤 가족을 꾸릴 것인지, 이전에는 한 번도 깊게 고민했던 적이 없었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생경함이 어렵거나 힘들진 않았다. 부모가 되기 전 살아왔던 방식대로, 두 사람은 자신의 속도에 맞게 천천히 하나씩 부모의 길을 생각하고 배워갔다.
“아이들과 어떻게 살 지 꼭 처음부터 다 알아야 하지는 않아요. 알 수도 없고요. 세상의 모든 일은 다 겪으며 배워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처음 겪는 일, 생각지 못했던 일이라고 두려워하지 않아요. 부모가 되는 것도, 가족을 만들어가는 것도 마찬가지였어요. 처음이기에 미숙할 수 있지만 그 경험들을 토대로 더 즐거운 삶으로 나아가면 되니까요.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할지 생각을 해야 해요. 하물며 돈도 얼마를 모으겠다는 다짐이 있어야 한 푼이라도 모을 수가 있잖아요. 저희는 부모의 길, 가족의 길을 어려워하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함께하고 싶은 일들을 해왔어요.”


                                                                                                                                                      

결혼이나 아이의 탄생으로 두 사람의 꿈이나 계획이 변한 것은 없었다. 아이가 태어난 후에도 종규 씨는 이전처럼 도서관을 운영했고, 매일 골목 곳곳을 걸으며 사진을 찍고 글을 썼다. 단지 항상 혼자였던 길 위를 아이들이 동행할 뿐이었다. 오히려 아이들로 인해 두 사람의 꿈과 미래는 더욱 확고해지고 선명해졌다.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에도 항상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사람이 돼야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했었어요. 저희는 사람이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스스로 먹고 입고 자는 것이 가능한 자급자족의 삶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직업, 돈 등에 얽매이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을 때 진짜 꿈을 꾸고 키워갈 수 있죠. 저희는 돈이 많아야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많다고 생각하지도, 아이들이 의사, 검사, 변호사 같은 어떤 직업인이 되는 것도 바라지 않아요. 그저 자급자족을 하는 부모의 삶을 함께 살아가면서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그 삶을 터득하고 배웠으면 하죠. 그래야 아이들도 진심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일과 꿈을 생각할 수 있고 그 꿈을 사랑스럽게 다스릴 수 있을 테니까요. 그 길을 아이들과 함께 가고 싶었어요. 아이들이 저희의 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젠간 새로운 길을 찾아갈 테고요.”


아이들과 함께 시작한 자급자족의 삶


                                            

스스로 먹을 밥을 짓고 잠잘 집을 마련하기 위해선 땅이 필요했다. 살아갈 터전이 도시인가와 시골인가는 중요하지 않았지만 가족이 자급자족의 삶을 살기엔 도시는 여러모로 불편하고 버거운 곳이었다. 
“가족이 먹을 양식을 수확하는 정도의 땅이면 됐지만 도시의 땅값을 생각하면 저희 형편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더라고요. 그리고 생각해보니 아이들이 있는 저희 가족에게는 도시보다는 시골이 훨씬 좋겠고요. 도시는 너무 시끄럽고 늘 공기도 매캐하고 자동차도 너무 많아서 아이들에게 위험하죠. 어디를 가도 아이들이 마음 놓고 뛰어다니거나 소리를 지를 수 있는 곳이 없어요. 안 되는 것 투성인 주제에 비싸기만 한 곳이 도시라는 걸 깨달았죠. 그리고 아이 엄마가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과 하려는 일들을 굳이 도시에서 해야 하냐며 시골로 내려가자고 여러 번 얘기를 했었어요. 무슨 일을 하든 그 자리가 대수롭거나 중요한 것이 아니니 시골로 가자는 말이 틀리거나 잘못된 말이 아니었죠.”
도시를 떠나 새로운 보금자리를 꾸리는 만큼 이왕이면 가족이 오랫동안 뿌리내려 살아갈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 싶었다. 이런저런 개발로 숲이 훼손되거나 동네의 모습이 변하지 않을, 시간의 흐름에서 살짝 비껴간 곳이면 했다. 그래서 가족은 5톤의 책을 짊어지고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갔다. 아직은 사람의 손이 타지 않은, 더 이상 사람의 손이 타지 않길 바라는 고흥 동백마을에 자리를 마련했다. 그렇게 2011년 정착한 집은 가족의 모습을 꼭 닮았다. 여닫을 때마다 끼이익 소리를 내는 파란 철문도, 여름엔 햇볕을, 겨울엔 바람을 막아주는 큰 후박나무도, 여기저기 구멍이 많아 고양이들도 함께 살아가는 오래된 집도 모두 이전부터 이들 가족과 하나인 듯 잘 어울렸다. 이곳에서 가족은 하루 24시간을 함께 보낸다. 그래서 가족은 누구보다 서로의 마음을 잘 안다. 굳이 여러 말을 하지 않아도 아이는 부모의 마음을, 부모는 아이의 마음을 헤아린다. 
“내내 같이 있는 게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시는데 몸이 피곤하면 아이들끼리 놀게 두고 잠을 자거나 휴식을 취하면 돼요. 꼭 24시간 동안 무언가를 같이할 필요는 없어요. 저희 가족을 보고 많이 신기해 하시는데, 최근에서야 부모와 자식이 떨어져 지냈지 예전에는 모든 부모들이 내내 아이들과 함께 지냈어요. 저희 세대만 해도 어머니나 아버지 어느 한쪽이라도 아이들과 함께 지냈고, 그 위로 올라가면 두 부모가, 더 거슬러 올라가면 할머니, 할아버지, 친척들까지도 하루 종일 함께 지내던 시절이 있었죠. 그때는 학교라는 곳도 없었어요. 집에서 모든 것을 가르치고 배울 수 있었으니까요. 저희는 집 안에 저희만 있기 때문에 노력하지 않으면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쳐줄 수가 없어요. 그래서 더 부지런히 공부를 하게 돼요.”
벼리와 보라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의 도움 없이 온전히 부부의 힘으로만 키워왔다. 이미 초등학교를 다녀야 할 나이가 지난 벼리는 여전히 집에서 가족과 함께 지낸다. 아직 교육이랄 것도 없다. 어린 아이들에게는 공부보다 마음껏 뛰어노는 것이 더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것을 부부는 잘 안다. 아홉 살 벼리에게 가르쳐준 공부라고는 한글이 전부다. 그마저도 벼리가 책을 읽고 싶어하고 책을 궁금해 하기에 자연스럽게 시작한 일이었다. 벼리에게 글을 알려주기 위해 종규 씨는 직접 벼리를 위한 한글 교본을 만들었다. 한글을 익힌 후 쳐다볼 까닭이 없는 글자들로 벼리에게 한글을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별, 노래, 숲, 나무, 꿈 등 벼리가 알았으면 하는 세상을 동시로 혹은 이야기로 엮어 한글을 가르쳤다. 부모가 정성껏 만든 교재로 직접 아이들을 가르치니 그 어떤 교육보다 믿음직스럽고 만족스럽다.
아이들 교육은 굳이 계획하거나 힘을 들이지 않아도 집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졌지만 처음 계획했던 먹거리의 자급자족은 아직이다. 굳이 농사를 짓지 않아도 고들빼기, 민들레, 냉이, 취나물 등 마당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가 풍성하기도 하고, 가족의 식량을 마련할 땅을 아직 준비하지 못한 까닭도 있다. 글을 쓰고 책을 내 받는 인세로는 가정을 꾸리고 도서관을 운영하기도 빠듯하다. 그래서 종규 씨는 더 부지런히 글을 쓰고 책을 짓는다. 하루라도 빨리 고흥에서 자급자족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지난여름이 끝날 무렵 아이들이 하도 ‘옥수수, 옥수수’ 노래를 불러서 남들은 다 수확을 끝낼 때 마당 한쪽에 아이들과 처음으로 옥수수를 심어봤다. 알이 제대로 여물지 않아 맛보긴 힘들었지만 대신 올해 심을 씨앗은 얻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올여름에는 직접 키운 옥수수를 먹을 수 있게 될 터이다. 이렇게 가족은 꿈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간다.


고흥에서 삽시다

고흥 동백마을은 장을 한 번 보려면 버스를 타고 20분을 달려 읍내로 나가야 하는 이른바 ‘깡촌’이다. 벼리, 보라 또래의 아이들은커녕 아이들이 아저씨, 아줌마라 부를 중년층도 찾아보기 어려운 아주 작은 마을이다. 사람이 사는 집보다 비어 있는 집이 더 많은 이 외진 곳에 가끔 손님들이 찾아온다. 종규 씨가 운영하는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를 방문하는 사람들이다. 2007년 인천 배다리에서 처음 문을 열었던 도서관은 산업도로 건설로부터 역사문화마을인 배다리를 지키기 위해 종규 씨가 선택한 문화 운동의 일환이었다. 당시 충주에서 우리말 연구가인 이오덕 선생의 원고를 정리하고 있었던 그는 일을 마무리한 후 산골에 있던 자신의 책을 모두 짊어지고 고향인 인천으로 돌아와 도서관을 열었었다. 고흥으로 이사를 한 후에도 매년 임대료를 지불하며 여전히 도서관을 운영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마을로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마을을 살리기 위해. 낡아서 멋스럽고 오래되어 진한 향기를 내는 마을, 시간이 쌓여 추억이 새겨진 옛것들을 지켜내는 것도 종규 씨에게는 중요한 일이다.
“머리에 띠를 두르고 하는 운동으로는 사라지는 것들을 붙잡을 수가 없어요. 마을을 지키려면 그 마을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죠. 사람들이 모두 도시로 떠나고 남은 시골 마을엔 이제 문화가 없어요. 그러다 보니 그나마 있는 사람들도 떠나게 되고, 더 이상 사람들이 시골을 찾으려고 하지 않죠. 문화 공간이 거의 없는 시골에 문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요즘은 시골이나 농촌에서 살고 싶어하는 분들이 적지 않은데 그럴만한 환경이 조성되지 않은 곳이 많잖아요. 젊은 사람들이 이곳에 터를 잡고 살고 싶도록 저희 가족과 도서관이 작은 도움이 되어 드리고 싶어요.”


서울에서 꼬박 5시간 정도를 달려야 도착할 수 있다 보니 도시에 있을 때보다 도서관을 찾아오는 사람의 수는 확연히 줄었다. 그래도 더디지만 사람들의 발길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오히려 찾아오는 사람들의 마음은 전보다 더 크고 깊다. 
“사진책을 보고 싶어서 오시는 분들도 있고, 시골에 있는 도서관 자체에 관심을 두고 오시는 분들도 있어요. 또 저희 가족을 만나보고 싶다고 오시는 분들도, 제가 쓰는 어린이 책 이야기를 직접 들으러 오시는 분들도 있죠. 정말 마음이 있는 분들은 먼 길이라도 찾아오세요. 또 힘들게 오신 만큼 더 제대로 즐기시다가 가시죠. 처음엔 잘 몰랐는데 저희 도서관은 도시보다는 여기 고흥이 훨씬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책은 ‘숲에서 자라던 나무를 베어서 빚은 이야기꾸러미’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시골에서 흐르는 숲내음과 숲바람을 쐬며 읽을 때 책을 더 잘 느낄 수 있거든요.”
집 근처 폐교를 빌려 만든 도서관에는 교실 4칸이 빽빽할 정도로 책이 가득하다. 매년 임대료를 내고 사용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독립된 도서관을 만드는 게 목표다. 
“멀리서 오시는 분들이 며칠씩 머물며 지낼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그 부분이 아직 마련되지 않아서 죄송하죠. 폐교를 빌려서 운영하는 거라 따로 수리를 하거나 공간을 만들 수가 없거든요. 주변에 빈집을 얻으려고도 했는데, 대부분 팔지 않아서 어려움이 있어요. 그래서 지금은 근처에 숙소를 따로 마련하고 오가며 도서관을 이용하도록 해요.”
숲으로 둘러싸인 도서관, 숲으로 둘러싸인 집을 꿈꾸며 종규 씨는 오늘도 아이들과 함께 글을 쓰고 이야기를 짓는다. 네 식구가 오순도순 지내는 공간을 넘어 많은 이웃들이 함께 나누고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숲을 꿈꾼다.
“숲에서의 삶은 훨씬 여유롭고 느긋하죠. 다른 것에 마음이 쓰이지 않으니 옆에 있는 가족의 소중함을 더 느낄 수 있어요. 무엇이 중요한지를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고, 진짜 꿈을 찾을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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