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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 폴라리스 Feb 27. 2017

쉬어가세요, 인생은 길거든요

월간 <폴라리스> Vol.182  '행복하게, 슬로 육아'

                                                                                                                          

정말 빠른게 정답일까, 쉬지 않고 달리기만 하면 정작 중요한 것들을 놓치게 된다.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기 전에 잠시 쉬어 주변을 둘러보고, 나를 위로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바쁘고 빠르기만한 세상 속에서 부모와 아이가 여유롭게 일상을 꾸려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에디터 윤경민 포토그래퍼 강봉형 

안녕하세요.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26살 딸 솔이와 22살 아들 현이의 엄마, 김영숙입니다. 발도르프 교육, 심리치유로서의 인형극 등을 배웠고, 미국에서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아이들과 부모들을 만나왔었어요. 한국의 부모들과는 2016년 출간한 <천천히 키워야 크게 자란다>라는 책을 통해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지금은 라이프웨이스 코리아(Lifeways Korea) 연구소를 운영하며 엄마들이 함께 모여 스스로의 인생주기를 돌아보는 바이오그라픽 작업과 일상생활을 소중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생활예술가인 엄마’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고 있어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반복하는 기본적인 일과를
규칙적으로 하면 일상생활이 단순해져요.
최소한 이 일을 할 때만큼은 특별히 고민하거나
힘을 쓰지 않아도 되거든요. 불필요한 생각,
움직임이 줄어드니 시간은 자연스럽게 생기죠.


국내에서는 사교육 없이도 두 아이를 아이비리그에 보낸 어머니로 유명하세요. 많은 부모들이 ‘아이를 자유롭게, 천천히 키우고 싶은데 과연 이게 옳은 걸까? 나중에 후회가 없을까?’라는 고민을 하거든요. 아이의 미래에 혹시 문제가 생기진 않을까 불안한 거죠. 그분들에게 선생님의 이야기와 조언은 큰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아이들이 일류 대학에 들어간 덕분에 자식 농사 잘했다는 칭찬을 종종 듣습니다. 하지만 예전에는 다른 아이들보다 느린 저희 애들을 보며 ‘대학은 가겠냐’ ‘취업을 하겠냐’ 같은 걱정을 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두 아이 모두 초등학교 3학년이 돼서야 글자를 읽고 썼거든요. 사실 저희 부부는 애초 둘째가 읽고 쓰는 것을 천천히 배우길 원해 초등학교 입학을 1년 늦추고 유치원 생활을 더 시켰어요. 아이들이 어릴 적이나 다 큰 지금이나 ‘공부해라’ ‘숙제해라’ 잔소리 한적이 없어요. 오히려 무리하게 공부를 한다거나 책을 읽으면 걱정하고 말렸어요. 어릴 때는 마음껏 뛰어 놀고, 잘 먹고 잘 자서 건강한 몸과 마음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정말 공부를 해야 하는 시기에, 하고 싶은 일을 해나갈 때 몰입할 수 있는 힘이 되어줄 테니까요. 아이들이 공부를 잘했다거나, 명문대학에 입학한 건 저희 부부에게는 중요하지 않아요. 아이들을 키울 때부터 그저 아이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제 몫을 스스로 해나가며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이 되길 소망했어요. 그리고 저희 아이들은 현재 그런 어른으로 성장해가고 있고요. 제가 자랑하고 싶은 것은 저희 아이들이 스스로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미래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에요. 어떤 공부를 하고 싶은지, 무엇을 잘하고 어떤 점이 서툰지, 어떻게 삶을 꾸려나가고 싶은지 분명히 알고 있죠. 그리고 자신이 스스로 미래를 선택하고, 선택한 일을 정말 즐겁게 해나가고 있어요.

아이들을 천천히 키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욕심을 부려 아이들을 바꾸려 애쓰지 않고, 거리를 두고 지켜보는 거예요. 모든 아이들은 저마다 독특한 개성과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요. 어른의 통제와 간섭만 없다면, 언젠가 각자의 잠재력을 발휘해 자기만의 고유한 길을 걸어가죠. 발도르프뿐만 아니라 피아제, 몬테소리 등 모든 교육 이론이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니 재촉하지 말고 아이들을 믿고 기다리면 돼요. 또 아이들은 발달 단계에 따라 육체와 정신이 성장한 만큼 세상을 받아들이고 이해해요. 따라서 발달 단계에 따라 아이들에게 필요한 자극과 환경도 다릅니다. 특히, 아직 신체적·정신적으로 준비되지 않은 7세 이전에 아이들에게 과도하게 추상적인 정보를 가르치고 과한 자극을 주는 것은 옳지 않아요. 그런데 부모들이 욕심을 부려 아이의 발달 단계를 무시하고 배움을 서두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때문에 아이들은 균형 잡힌 성장을 할 수 없고, 몸과 마음이 메말라가요. 부모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은 아이들의 발달 과정을 공부하는 것뿐이에요. 그 과정을 이해해야 ‘천천히 키워야 한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고, 이를 깨달으면 무리하지 않아도 부모가 자연스럽게 아이들을 ‘천천히’ 키울 수 있게 되거든요. 진짜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학습이 아니라 잘 자고, 잘 먹고, 잘 노는 일임을 알게 되니까요.

선생님은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일이 처음부터 쉬웠는지 궁금해요. 부모가 아이 교육에 매달리지 않고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저도 처음부터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성격이 급해서 기다리고 지켜보는 일이 참 어려웠죠.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많이 달라진 거예요. 나조차도 내 마음대로 컨트롤할 수 없는데, 남편이나 아이를 제 의지로 바꾸려고 하는 게 불가능한 일이더라고요. 그래서 저희 부부는 아이에게 향한 지나친 관심을 각자의 내면으로 돌리려고 노력했어요. 아이를 이해하기 이전에 먼저 자신에 대해 이해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고, 각자 하고 싶은 일에 몰입하며 각자의 삶에 충실하기로 했죠. 아이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로 교육하거나 강요하는 대신 부모가 직접 그러한 삶을 살면서 아이들 옆에서 직접 보여주는 교육 방식을 택했어요. 아이들에게 일찍 자라고 하면서 부모는 늦게 자고, 아이들에게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하면서 부모는 정작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모른다면 과연 아이들이 부모의 말을 믿고 마음에 새길까요? 그러니 어렵더라도 부모들이 나를 위해 시간을 투자하고, 내 삶을 가꾸는 일에 힘써야 해요.

살림을 하고, 아이를 챙기다 보면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여기에 사회생활까지 더해지면 엄마나 아빠나 모두 시간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만드는 특별한 방법이 있나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반복하는 기본적인 일과를 규칙적으로 하면 일상생활이 단순해져요. 기상과 취침 시간, 아침과 점심, 저녁을 먹는 시간, 운동하는 시간 등 매일 해야 하는 일들을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장소에서 하는 거예요. 이를 규칙적으로 실천하면 일상에 리듬이 생기고 삶이 훨씬 편안해지죠. 최소한 이 일을 할 때만큼은 특별히 고민하거나 힘을 쓰지 않아도 되거든요. 불필요한 생각, 움직임이 줄어드니 시간은 자연스럽게 생겨요. 일상에 많은 부분이 예측 불가능하잖아요. 그 일들을 해결하고 처리하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되고 삶은 복잡해지죠. 그러니 기본적인 일과만큼이라도 단순화해보세요. 소박하게 시작하면 돼요. 매일 정해진 시간에 일어난다거나, 매일 같은 시간에 밥을 먹는 거죠. 또 매일 같은 시간에 화분에 물 준다거나, 하루에 딱 10분만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산책을 하는 것도 좋아요. 이렇게 하나씩, 천천히 일상생활을 정돈하고 단순화하면 삶 자체가 느긋하고 여유롭게 변해요.

아이들과도 이렇게 규칙적인 생활이 가능한가요? 아이들과 지낼 때 어떻게 하루를 보냈는지 궁금합니다. 
반복적이고 규칙적인 생활은 어린아이들에게 특히 중요해요. 예측 가능한 일상은 아이들을 안정적으로 만들어주고, 집에서의 일상이 단순한 아이들은 비축해둔 에너지로 밖에서 더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새로운 일에 용감하게 도전하거든요. 저희 아이들은 보통 오전 7시에 일어나고 오후 8시에 잠자리에 들었어요. 저는 아이들을 재우고 난 후 한 시간 정도 제가 읽고 싶은 책을 읽었고요.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아이들이 유치원에 가면 개인적인 업무를 봤어요. 오후 12시 30분에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와 같이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잤습니다. 저도 잠깐 같이 자기도 했고요. 일과 중에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게 가사 노동인데 청소, 요리하기, 빨래 개기, 텃밭 가꾸기 등 대부분의 집안일도 아이들과 함께 했어요. 그리고 아이들이 집이나 바깥에서 자유롭게 놀 때에는 저도 옆에서 인형을 만들거나 바느질, 뜨개질을 하며 저만을 위한 시간을 보냈고요. 이후 시간은 대부분 주방에서 보냈어요. 함께 음식을 만들고 천천히 식사를 한 후 같이 주방을 정리하는데, 보통 4시간 정도 걸리는 거 같아요. 지금도 저희 가족은 주방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죠. 잠들기 전에 아이들에게 시나 이야기를 들려주며 하루를 마무리했고요. 정말 너무 단순하고 간단해요. 아이들이 독립해 따로 살고 있는 지금도 저희 부부의 일과는 비슷해요.

일상이 너무 규칙적이고 단순하면 오히려 지루하게 느껴지지는 않을까요?
발도르프 유치원에서는 일 년 내내 같은 요일에는 같은 음식을 먹어요. 그런데도 아이들은 전혀 불만이 없죠. 부모들은 다양한 음식을 먹어야 아이들이 좋아하고, 새로운 활동을 해야 아이들이 즐거워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아이들은 태생적으로 반복을 좋아하고,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천천히 세상을 알아가요. 저희 아이들은 10년 동안 일주일 도시락의 메뉴가 항상 똑같았었어요. 월요일은 김밥, 화요일은 잡채, 수요일은 유부초밥, 목요일은 야채 스프 등 언제나 같은 음식이었어요. 들어가는 재료만 계절에 맞는 것들로 바꿔주었죠. 이 얘기를 들으면 다들 놀라는데, 저희가 어릴 때도 그렇게 자랐어요. 겨울 내내 총각김치 하나로 밥 한 공기를 먹었던 기억이 나요. 그렇다고 제가 건강하지 않거나 음식이 질려서 밥을 안 먹지는 않았거든요. 요즘은 너무 풍요로워서 문제죠. 너무 다양한 선택지를 앞에 두고 부모도 아이도 괴로워해요. 저녁에는 뭘 먹을지, 주말에는 무엇을 할지 고민하지 마세요. 몇 시에 잠을 잘지, 오늘은 무엇을 먹을지, 주말에는 어디를 갈 지 미리 정해두고 이를 실천하면 아이와 괜한 실랑이를 하지 않아도 되고, 새로운 것을 찾을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워져요. 그만큼 부모도 아이도 훨씬 여유롭고 평화로운 삶을 즐길 수 있죠.

부모들이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일상이 조금이라도 느긋해질 수 있을까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 돼요.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배우고 싶던 언어를 공부하는 것도 좋아요. 그런데 저는 부모들이 몸으로 하는 활동을 해봤으면 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든 것을 앉아서 머리로만 공부하고 경험해왔어요. 하지만 자신을 이해하고 알아가는 과정은 머리만으로는 불가능해요. 몸으로 직접 느껴야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어떤 활동을 해보고 싶은지 깨달을 수 있어요. 악기연주, 십자수, 춤추기, 여행, 산책, 등산, 뜨개질, 수공예, 수영 등 지금까지 배워보지 않았던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가슴으로, 몸으로 직접 자신을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야 해요. 쉽게 얘기하면 아이에게 가르치고 싶었던 것들을 아이에게 시키는 게 아니라 부모가 해보는 거예요. 저는 아이를 키우면서 ‘라이어’라는 작은 하프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그 전에는 피아노 학원도 한 번을 안 다녔는데 말이에요. 이렇게 실컷 놀고 예술 활동을 즐기다 보면 삶이 즐거워지고, 저절로 여유가 생겨 관용을 베풀게 돼요. 이를 통해 놀이와 예술이 얼마나 가치 있고 위대한지 깨닫게 되니,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고도 부모들이 불안함을 느끼지 않게 됩니다. 저는 모든 부모들이 각자 집에서 즐길 수 있는 간단한 취미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부모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저는 아이들이 잠잘 시간에 책을 읽는다고 하면 불을 끄고 억지로 재웠어요. 일찍 자고 쉬엄쉬엄 살라고요. 인생 참 길잖아요. 그러니 몸 챙기며 천천히 해도 늦지 않는다고요. 조금 더 빠른 거 보다 조금 늦어도 정확하게 또박또박 걸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서둘다가 지쳐 잠든 토끼보다 차분히 경주를 완주한 거북이가 되는 게 낫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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