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폴라리스> Vol.182 '행복하게, 슬로 육아'
글 김나영 에디터 한순호
올해 막둥이인 셋째까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5학년, 1학년을 키우게 된 나를 두고 친구들은 “애들 다 키워서 부럽다”고 하지만 어쩐지 나는 다 커버린 아이들이 서운하기도, 아쉽기도 하다. 어릴 때는 엄마 껌딱지로 화장실도 못 가게 “엄마, 엄마” 찾아대던 녀석들이 이제는 제각각 휴대전화를 손에 들고 엄마를 찾는 일이 없다. 요즘 아이들은 학교 친구들도, 동네 친구들도 모두 손바닥 안의 네모 반듯한 휴대전화로 만난다. 잘 꾸며진 아바타로 가상의 온라인 세상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직접 얼굴을 보며 대화를 하는 대신 빠르게 엄지손가락을 놀려 채팅을 한다. 방과 후에도 학원을 가야 하고, 학습지를 푸느라 바빠 현실 속 친구들을 온라인상에서 만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내가 어릴 적에는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노는 것에 참 열심이었다. 쉬는 시간 10분 동안에도 부리나케 운동장으로 뛰어나가 ‘고무줄 놀이’를 하기도 했고, 교실 뒤편에 모여 ‘공기놀이’를 하기도 했으며, “푸른 하늘 은하수~”를 부르며 손바닥과 손바닥을 마주치는 ‘쎄쎄쎄’ 놀이를 하기도 했다. 학교가 끝난 후에는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해가 질 때까지 노는 게 일이었다. 동네 공터에 막대기와 돌멩이 하나만 있어도 많은 놀이를 할 수 있었다. 1, 2, 3, 4를 그려 ‘돌 줍고 땅 짚기’도 했고, 손가락으로 돌멩이를 튕겨 ‘땅 따먹기 놀이’도 했으며, 술래와의 손가락 고리를 끊고 탈출하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도 흥미진진했다.
그렇게 매일매일 해 질 녘까지 동네를 뛰어놀던 우리는 자연스럽게 많은 것을 배웠다. 정해진 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기, 땅바닥에 그어진 선을 밟으면 탈락 등 서로 약속한 규칙을 지켰고, 서로가 서로의 심판이 됐고, 선을 밟았느니 넘었느니 등 숱한 토론을 하며 합의를 봤고, 일부의 반칙을 잡아내며 정의(?)를 실현하기도 했다. 놀이의 규칙을 쉽게 설명해주는 리더가 있었고, 놀이에 약한 친구를 깍두기로 정해 함께 어울리는 배려심도 있었다. 게임 랭킹, 기록 갱신을 위해 휴대전화 화면을 ‘터치’하는 요즘 아이들은 나를 ‘얼음’에서 해방시켜주던 친구의 ‘터치’가 훨씬 더 짜릿하다는 것을 알까. 빠르게 문자판을 누르는 엄지손가락보다 내일 다시 만날 약속을 하며 서로 맞붙였던 엄지손가락 도장이 훨씬 더 애틋하다는 것을 알까. 무심히 휴대전화 화면을 넘기는 집게손가락이 수갑보다 더 튼튼한 술래와의 고리였음을, 그 집게손가락 고리를 끊어내던 용감한 친구와의 탈출이 얼마나 통쾌한지를 알까.
둘째 아이가 이번 주 토요일에 친구와 도서관에 다녀와도 되겠냐며 허락을 구한다. 반가운 일이다. 흔쾌히 허락하며 “친구와 함께하는 소중한 시간에, 휴대전화는 꺼두는 편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아이가 “그 무슨 오글 멘트냐?”며 진저리를 친다. 조금은 불편하고, 번거로웠지만 디지털 기기의 ‘접속’보다 더욱 힘 있는 ‘접촉’이라는 아날로그 시대의 감성을 어떻게 아이에게 전할 수 있을까. 우리 아이들이 컴퓨터가 판단해주는 명백한 시스템의 게임 규칙이 아닌, 서로가 끊임없이 토론하고 만들어가는 게임 규칙으로 함께 놀면 좋겠다. 자동으로 랭킹이 매겨지는 휴대전화 게임의 최고 득점보다 약한 친구를 깍두기로 정해주는 배려 있는 게임을 즐겼으면 좋겠다. 도서관에서 돌아오는 길, 친구와 새끼손가락을 걸고 다음 주에 또 오자는 약속을 한다면 정말정말 좋겠다.
야순님(김나영)
세 딸을 키우며 블로그(blog.naver.com/sysche)를 운영하는 엄마다. 15년째 일상 블로그를 운영하며 적어 내려간 육아 에세이 <보통의 육아> <보통의 엄마>의 저자로 전국을 돌며 자녀 교육 강연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