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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 폴라리스 Mar 10. 2017

시골에 살다

월간 <폴라리스> Vol.182  '행복하게, 슬로 육아'

숨 가쁜 도시에서의 삶을 뒤로한 채 시골로 간 부부가 있다. 문만 열면 펼쳐지는 자연 속에서, 아이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아이답게 살게 하고 싶은 바람을 현실로 이룬 문선영·홍성현 씨 가족을 만났다.


글 박헤나  에디터 박은아  포토그래퍼 이선권


세 식구의 시골살이

상쾌한 아침 공기를 온몸으로 만끽하며 마당을 산책하는 아빠와 아들. 겨울엔 밤새 쌓인 눈을 치우느라, 봄에는 파릇파릇한 새싹들이 잘 자라도록 잡초를 뽑느라, 여름이면 마당 한구석의 텃밭을 가꾸느라, 가을이면 낙엽을 치우느라 늘 분주하다. 하지만 그 덕에 부부는 이야기꽃을 피우고 한바탕 아이와 몸으로 놀아줄 여유를 갖는다. 올해 다섯 살이 된 진우는 자전거로 마당을 한 바퀴 도는 것으로 아침을 시작한다. 텔레비전 만화 영화나 로봇 장난감보다 재미있는 게 지천에 널려 있으니 한시도 심심할 틈이 없다. 
가족의 집은 경기도 양평, 그중에서도 용문산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다. 물 맑기로 유명한 용문계곡이 있어, 여름이면 휴가를 즐기러 가는 차들이 집 앞까지 꼬리를 물고 늘어서는 곳이다.  
15년 차 민화 작가인 선영 씨와 남편 성현 씨가 이곳에 터를 잡은 지 어언 3년째. 그사이 다섯 살이 된 진우는 어느새 시골 아이가 다 됐고, 최근 둘째가 태어나며(인터뷰 당시 출산을 며칠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새 식구도 생겼다. 선영 씨는 시골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은 바람이 가족을 이곳으로 이끌었다며 얘기를 시작했다.
“완도에서 다시 배를 타고 들어가는 보길도라는 섬에서 나고 자란 탓에 시골 생활이 늘 그리웠어요. 그때는 미처 몰랐는데 되돌아보니 어른이 된 뒤 제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에너지는 모두 유년의 추억에서 나온 것이더라고요. 남편은 서울 출신이지만 워낙 식물을 가꾸고 돌보는 걸 좋아하는 데다 부지런한 성격이라 시골살이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었어요. 아이들은 꼭 시골에서 유년기를 보내며 천천히 아이답게 크기를 바라는 마음에 시골살이를 택했죠.”
도시 아파트에서의 삶은 늘 갑갑하고 분주했다. 선영 씨는 작품 활동과 강의를 하며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이었고, 남편 성현 씨는 자영업을 하느라 바빠 가족이 온전히 함께할 시간이 부족했다. 부부는 무언가 잘못돼 가고 있다고 느꼈다. 도시의 환경에서 벗어나 삶을 바꿔 나가기로 결심했고, 그 첫 번째 시도가 아파트에서 벗어나 땅을 밟고 사는 것이었다. 부부는 아이가 세 살쯤 되자 귀촌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제주도와 남해를 비롯한 전국 곳곳을 여행했다. 그러다 양평에 사시는 성현 씨 부모님의 건강이 좋지 않아진 것을 계기로 성현 씨네 삼 형제와 그 가족들이 모두 의기투합해 양평으로 내려오기로 결정했다. 
“양평으로 내려오기로 한 데는 저와 형님의 영향도 컸어요. 신혼 초부터 한 동네에 살며 형님이 저에게 민화를 배우면서 동서지간의 우애가 돈독했거든요. 여자들이 먼저 ‘가자’고 나서니, 남편들은 따라올 수밖에요. 저와 형님은 양평에 ‘까치와 호랑이’라는 민화 공방을 내기로 했고, 남편들이 직접 공간을 리모델링하며 든든한 지원군이 돼 줬죠.”
양평으로 내려오기로 결정하고 실행에 옮기기까지 소요된 시간은 서너 달. 가장 중요한 일은 아이와 함께 살 집을 구하는 것이었다.  
“막상 시골에 내려와 살려 해도 경제적 문제가 발목을 잡을 수밖에 없었어요. 처음엔 시골집을 리모델링하고자 책도 찾아보고 집도 알아봤지만 마땅한 집을 찾기 힘들었죠. 게다가 리모델링 역시 전문가에게 맡겨야 하니 비용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더라고요. 결국 집을 짓기로 결정했죠. 그런데 땅이 마음에 들면 상하수도나 전기를 끌어와야 했고, 토목 공사 등 생각지 못한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이런저런 시행착오 끝에 이곳에 먼저 내려와 정착한 사람들에게 조언을 듣고 땅을 마련한 뒤 목수인 두 형의 도움을 받아 집을 짓게 됐어요.”
자연이 좋아서 덜컥 시골에 내려왔지만, 적응하기가 마냥 쉽지만도 않았다. 땅거미가 내려앉기 바쁘게 찾아오는 어두컴컴한 적막이 처음엔 무척 어색했다. 현란한 네온사인이 밤새 켜진 도시의 밤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가까이에 대형 마트가 있어 언제든 장을 볼 수 있는 서울과 달리, 오일장이 서야 식재료를 살 수 있고, 생활용품을 사려면 큰맘 먹고 날을 잡아 마트에 가야 하는 일도 처음에는 불편함으로 다가왔다. 친구나 친정 식구들을 만나는 일도 예전보다 쉽지 않았다.
“오랫동안 도시의 삶에 익숙해있다 보니 불편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 불편함마저 모두 시골 생활의 장점이 됐어요. 캄캄한 밤이면 하늘에 쏟아질 듯 많은 별을 볼 수 있고, 남편이나 아이와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좋아요. 외출이 쉽지 않으니 가족 중심의 삶을 살 수밖에 없죠. 대형 마트 대신 동네 작은 가게나 오일장에서 장을 보니 식재료가 쌓일 일도 없어요. 요즘은 어쩌다 친구를 만나러 도시에 나가면 매연과 혼잡한 교통 상황, 기름진 음식 냄새로 인해 가슴이 답답해요. 이제 시골 사람 다 된 거죠.”



달라진 환경이 선물한 달라진 일상

일부러 고려하진 않았지만, 터를 잡고 보니 좋은 점이 한 가지 더 있었다. 집 근처 조현초등학교가 ‘대안학교 같은 공립학교’로 인기를 얻고 있는 혁신초등학교였던 것. 근방에 젊은 부부들이 많이 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논과 밭, 냇물로 둘러싸인 시골 학교에서 아이들은 경쟁 위주의 공부에서 한 발짝 벗어나, 다양한 생태 교육과 문화예술 교육을 받고 있다. 봄에는 벼농사를 짓고 텃밭에 씨를 뿌리며, 여름에는 텃밭 농작물을, 가을에는 벼를 수확해 밥을 지어 먹는다. 경험을 통해 교과서가 가르쳐줄 수 없는 것들을 배우고 생존 능력을 기른다. 가야금이나 우쿨렐레 같은 악기는 물론, 승마와 도예를 배우기도 한다. 다른 학교에 비해 두 배 이상의 체험학습을 하지만, 학부모가 부담하는 비용은 따로 없다.
“이곳 아이들은 생기가 넘쳐요. 처음 양평에 정착한 뒤 가장 놀란 것은 낯선 사람에게도 반갑게 인사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었어요. 넉살이 좋다고 할까요? ‘안녕하세요. 여기 이사 오셨어요? 언제 오셨어요?’하며 친근하게 먼저 다가오더라고요. 평소 제 아이도 시골 학교에 보내고 싶었는데 그러한 바람이 더 확고해졌죠.”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고들 한다. 이웃이나 친구를 치열한 삶의 경쟁자로 바라보면 무엇 하나 예뻐 보이지 않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곳 아이들은 사람을 소중한 동반자로 여기며 기꺼이 마음을 열 준비가 돼 있었다. 부모들도 마찬가지. 아이를 공부 위주로 키우기보다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곳에 내려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척척 마음이 맞았다. 
“사실 도시에서는 아이에게 사교육을 시키지 않는 게 쉽지 않아요. 남들은 다 하는 걸 하지 않으면 별난 사람 취급을 받거든요. 게다가 영어유치원이며 사립학교를 찾아다니는 부모들도 있는데, 아이에게 공부를 시키지 않겠다고 하면 혀를 차며 뒤돌아 서서 흉을 보기도 하죠. 그런데 여기서는 모두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별난 사람 취급을 받을 일도, 뒤에서 손가락질 당할 일도 없어요. 오히려 아이에게 친환경 먹거리를 먹이려 노력하는 이웃, 자연주의 출산과 육아를 지향하는 부모들을 보며 한 수 배우죠.”
시골살이는 아이뿐 아니라 선영 씨를 비롯한 어른들의 삶도 많이 바꿔 놓았다.
“삶이 여유로워졌다고 할까요? 아등바등하며 살던 도시에서의 삶은 늘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같았어요. 여기서는 포기해야 할 것은 포기하고 집중해야 할 것에 집중하는 삶을 살다 보니, 단조롭지만 작은 일 하나에도 감사하게 되고 만족도가 높아요. 무엇보다 양평에 내려와 큰형님과 공방 겸 카페를 열 때 ‘까치와 호랑이’가 지역의 문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랐어요. 커피를 마시러 오는 마을 사람들이 수다를 떨고 서로 교류하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문화적 욕구를 채워줄 수 있다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자연스럽게 민화를 배우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어 한 반이 만들어졌고, 형님은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민화를 가르치게 됐어요.”
아이를 자연 속에서 자라게 하고 싶어 시골로 내려온 것이 계기가 돼 가족들도 삶에 새로운 장을 열게 된 셈이다. 

몸에 밴 것이 가장 좋은 교과서라고 생각해요. 
경험이 가장 좋은 교육이죠. 
아이의 몸에 밴 자연에서의 삶이
아이의 인생에 가장 좋은 교과서가 될 거예요.


넉넉하고 건강한 자연의 아이로

시골로 내려온 뒤 가장 좋아했고 가장 많이 바뀐 사람은 역시 진우다. 서울에서는 기껏해야 놀이터에 나가 놀거나 키즈 카페에 가는 게 놀이의 전부였다. 엄마, 아빠가 일을 하느라 바쁠 때는 그마저도 힘들어서 늘 집 안에서 놀곤 했다. 황사와 미세먼지, 건조한 실내 공기로 인해 감기를 달고 살았던 탓에 감기 기운이 조금만 보여도 바깥에서 놀기 힘들었다. 
“이곳에 온 후로 진우는 집 안에 있는 시간보다 자연 속에 노는 시간이 훨씬 많아요. 아침에 눈을 뜨면 무조건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가죠. 자전거 타는 걸 무척 좋아하고 반려견 ‘해리’와 공 물어오기 놀이도 해요. 지천에 널린 나뭇가지를 들고 넓은 마당을 스케치북 삼아 그림을 그리고 흙 놀이를 해요. 집에서 걸어서 30분 거리인 용문사까지 아빠와 산책을 갈 때도 많죠. 아이 걸음으론 1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인데, 꽃이나 나무 이름을 묻고 오디 등 열매를 따 먹기도 해요. 곤충이나 새를 보며 이름을 묻는 일은 늘 있는 일이고요. 그렇게 진우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과 친구가 돼 가고 있어요.”
아이는 함께 양평에 내려온 사촌 형, 누나와 함께 여름이면 공방 앞 개울에서 헤엄을 치고, 겨울이면 꽁꽁 언 얼음 위에서 썰매를 타며 논다. 도시에서라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어린이집에 다녀오고 나면, 늘 숲과 들에서 뛰어노니 온 동네가 생태체험학습장인 셈이다. 
“벌거벗은 나무에 언제 새싹이 돋아요?” “눈사람은 왜 녹아 사라지죠?” 요즘 진우가 하는 질문들이다. 자연은 그렇게 무수히 많은 궁금증과 호기심을 아이에게 선사한다. 그 궁금증을 풀어주는 것도 자연이다. 사계절을 경험하며 봄, 여름, 가을, 겨울에 자연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오감으로 체험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이가 곤충을 무척 좋아하는데 자연에서 직접 본 곤충들을 나중에 책에서 보면 신기해하더라고요. 살아서 꼬물꼬물 움직이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니, 사실 책보다 몇 배의 것을 알고 있는 셈이죠. 저는 몸에 밴 것이 가장 좋은 교과서라고 생각해요. 경험이 가장 좋은 교육이죠. 책상머리에 앉아 무작정 외운다고 내 것이 되나요? 아이의 몸에 밴 자연에서의 삶이, 아이의 인생에 가장 좋은 교과서가 될 거예요.”  
몸이 건강해진 것도 이곳에서 얻은 선물이다. 따로 체육을 가르치지 않아도 형과 누나를 벗 삼아 뛰어다니니 온몸의 근육이 발달한다. 그래서인지 한겨울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바깥놀이를 하지만, 감기에 잘 걸리지 않는다. 전보다 훨씬 건강해졌음은 물론이고, 어쩌다 감기 기운을 보일 때도 약을 먹지 않고 자연 치유되는 모습을 보곤 한다. 올해 여덟 살이 된 쌍둥이 사촌들도 마찬가지다. 천식과 폐렴을 달고 살며 입원을 일삼았던 아이들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건강해졌다.
마트보다는 시골 오일장에서 장을 보다 보니 식생활이 180도 바뀐 것도 건강에 한몫했다. 
“도시처럼 피자나 치킨 같은 배달 음식을 시켜 먹을 일이 없어요. 배달조차 해주지 않으니까요. 아이에게 인스턴트를 먹일 일도 없죠. 인스턴트를 먹일 생각이었다면 굳이 이곳에 내려오지 않았을 거예요. 봄이면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 아이 손을 잡고 쑥을 캐러 다녀요. 방앗간에서 곱게 빻은 후 냉동시켜 놓고 쑥개떡을 해 먹죠. 여름이면 텃밭에서 치커리며 상추, 고추, 깻잎 등 채소를 직접 재배해 먹고, 산이며 들에서  나는 나물들로 장아찌를 담가 먹기도 해요. 그러다 보니 진우도 생선과 나물 위주의 식생활이 몸에 뱄어요.”
벌레를 무서워하기보다 스스럼없이 만져 보는 진우. 봄이면 엄마 손을 잡고 쑥을 뜯으러 다니고, 아빠와 나무 냄새가 깊게 밴 산을 오르고, 여름이면 사촌들과 함께 들판과 개울에서 방아깨비며 메뚜기, 다슬기를 잡으며 마음을 살찌워갈 것이다. 자연을 누비며 채워진 경험을 자산 삼아 남이 바라는 삶이 아닌 자신이 행복한 삶을 사는 것. 그것이 부부가 바라는 아이들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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