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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 폴라리스 Mar 15. 2017

자유로 가는 교육, 발도르프

월간 <폴라리스> Vol.182  '행복하게, 슬로 육아'

발도르프 교육은 1994년 유네스코 제44차 세계교육장관회의에서 21세기 개혁 교육의 모델로 선정된 세계적으로 주목 받는 교육법이다. 아날로그 교육, 슬로 교육, 자연주의 교육을 앞세운 발도르프 학교에 구글, 애플 등 첨단 디지털 기업 간부들이 아이를 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발도르프 교육은 무엇이고, 가정에서 할 수 있는 발도르프식 생활과 교육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봤다. 

에디터 한순호  포토그래퍼 강봉형  모델 김승하·유채연  의상 협찬 모이몰른, H&M




아이들은 개성과 재능을 갖고 태어난다 

발도르프 교육은 20세기 초 인지학자이자 교육혁명가였던 슈타이너에 의해 시작된 대안 교육이다. 발도르프 교육이 태동한 1919년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로, 유럽은 정치·경제·문화·사회 전반적으로 혼란을 겪고 있었다. 또한 산업화·현대화의 가속화로 덩달아 규격화된 주입식 교육 제도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자신의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자녀를 위한 학교 설립을 모색하던 에밀 몰트는 잘못된 교육 때문에 전쟁이라는 재앙이 일어났다고 생각했다. 그는 슈타이너에게 장차 세상에 평화를 가져올 어른으로 커갈 수 있는 교육을 하는 학교를 세워달라고 부탁했고, 그해 가을 독일의 슈투트가르트에서 첫 번째 발도르프 학교가 문을 열었다. 현재는 전 세계에 1000여 곳의 학교와 약 1500개의 발도르프 유치원이 있다. 
발도르프 교육의 기본적인 관점은 ‘아이들은 저마다 독특한 개성과 재능을 타고난다’는 것이다. 어른이 원하는 방향대로 억지로 성장시키려 하지 말고, 믿고 기다려주면 제각기 특유의 기질과 관심에 따라 자기만의 고유한 길을 걸어간다고 믿는다. 때문에 발도르프 교육에서는 아이들이 알아야 할 내용을 억지로 주입하지 않는다. 오히려 텔레비전, 스마트폰과 같은 매체들로 인해 과도한 자극을 받지 않도록 보호한다. ‘아이들에게 뭘 채워줄까’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너는 어떤 아이니?’란 질문을 던지는 것, 아이의 고유성을 관찰하고 주의 깊게 이해하는 것이 발도르프 교육의 시작이다.

발달단계에 맞춘 신체, 감성, 사고 통합 교육  
발도르프 교육에서는 인간 발달단계를 영유아기(0~7세), 아동기(7~14세), 청소년기(14~21세)로 나눈다. 영유아 시기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몸의 성장. 슈타이너가 걷고, 말하고, 생각하는 것을 익히는 0~3세 시기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 영유아기는 전 생애를 통틀어 ‘받아들이는’ 활동이 가장 강한 시기이기 때문에 온화하고 자극이 적은 ‘보호막’ 같은 환경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때의 아이들은 몸을 움직여 주변을 적극적으로 탐색하고, 주위를 모방해 무엇인가 하려는 의지가 강하므로 부모를 비롯한 주변 어른들의 삶의 태도와 일상생활도 중요하다. 발도르프 교육에서 매일 하는 집안일을 가장 좋은 교육으로 여기는 이유도, 발도르프 어린이집의 환경이 일반 가정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발도르프 교육의 또 다른 특징은 신체, 감성, 사고가 통합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교육을 중시한다는 점이다. 특히 영유아기에는 추상적인 이해가 필요한 읽기와 쓰기, 산수 등은 가르치지 않는다. 대신 아이들의 발달 과정에 맞춰 감각과 감성을 일깨워주는 예술, 수공예 활동, 연극, 합창, 축제 등을 통해 일상생활에서 습득해야 하는 가치와 양식을 자연스럽게 배워 나가도록 한다. 이런 조화로운 통합 교육은 아동기, 청소년기 교육에서도 일관되게 적용된다. 발도르프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우열을 나누지 않으며, 인지적·도덕적·실용적 재능의 발달을 중요하게 여기고, 노작교육이나 예술 교육 등이 교육 내용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발도르프 교육이라고 해서 꼭 발도르프 어린이집이나 학교에 보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아이 내면에는 스스로의 삶을 행복하게 가꿔나갈 힘이 있으므로 아이가 자신의 속도에 맞게, 행복하게 자라도록 지지해주고, 부모 또한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아가면 된다. 가정에서 발도르프 교육의 가치와 방식을 적용하고, 활용할 수 있는 방법들을 알아보자. 


<집에서 하는 발도르프식 교육 >

삶의 리듬 만들기 
발도르프 교육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삶의 리듬이다. 아이들은 반복되는 리듬을 통해 건강한 생명력을 키워 나간다고 믿기 때문이다. 인류는 오랫동안 자연의 변화와 순환을 따라 일정한 리듬을 반복해 생활해 왔다. 아이들도 자연의 리듬을 따라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낮과 밤의 하루 흐름을 배우게 되는데, 특히 7세 이하의 아이들에게는 리듬 생활이 매우 중요하다. 안정적인 리듬 생활을 바탕으로 이후 일어날 일의 불확실성을 걱정하지 않고 안정적인 심리 상태로 주변 세계를 탐구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집 안, 동네 놀이터가 아직 흥미진진한 탐구 영역인 아이들에게 안정적인 환경의 첫 번째가 바로 리듬감 있는 생활인 셈이다. 
생활 리듬 중 중요한 것이 수면 리듬이다. 충분히 잠을 자면 면역력이 강화되는 것은 물론 기억력과 인지 능력 또한 발달하게 된다. 가급적 같은 시간, 같은 장소, 같은 리듬감으로 잠자리에 들면 아이도 편안하게 잠을 청하는 것이 가능하다. 아이가 늦게 퇴근하는 엄마, 아빠와 더 시간을 보내고 싶어 잠들기를 거부한다면 짧게는 10분, 길게는 30~40분의 시간 동안 아이에게만 집중해 교감을 나누는 것이 도움이 된다. 아이가 감정적으로 만족을 느껴서 평화롭게 잠자리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잠잘 때 단순한 리듬과 멜로디의 자장가를 불러주거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수면 리듬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리듬감 있는 노래는 규칙적인 호흡을 이끌어주기 때문에 아이들이 편안하게 잠들 수 있다. 
생활 속 리듬은 시간에만 국한된 개념은 아니다. 아이가 갖고 노는 장난감 및 주변 물건을 가급적 항상 같은 자리에 두도록 하는 것도 리듬을 만드는 요령 중 하나다. 아이들은 정리된 환경에서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주의력이 향상된다. 또 아이들은 아직 내적인 리듬이 형성되지 않은 까닭에 어른보다 외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따라서 부모 스스로 먼저 안정된 리듬 생활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작은 것부터 실천해보자. 즐겁고 기분 좋은 노래를 함께 부르며 아침을 맞이하는 것도 방법이다. 매일 밤 잠들기 전에 하는 10분의 스트레칭도 숙면을 도와 건강한 수면 리듬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매일 하는 집안일로 생활 교육 하기

어린아이일수록 가정은 어린이집, 유치원보다 더 훌륭한 배움터다. 아이들에게는 어떤 교육보다 일상생활 자체가 좋은 교육이기 때문이다. 특히 평범해 보이는 집안일에는 오랜 세월 이어진 인류 문화와 삶의 기본이 녹아 있다. 화분에 물 주기, 빨래 개기, 놀고 난 뒤 장난감 정리하기, 설거지하기, 이부자리 정리하기 등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집안일은 의외로 많다. 어릴 때부터 집안일을 함께 하면서 아이들은 재미는 물론 노동에 대한 가치, 책임감과 헌신의 의미를 배우고 자신감, 성취감, 독립심을 키운다. 
집안일로 하는 생활 교육은 아이의 발달 수준에서 충분히 할 수 있고, 재미있어 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아직 아이가 어리다면 빗자루, 그릇, 수건 등을 자유롭게 만지고 놀 수 있는 기회를 줘 집안일에 흥미를 갖도록 하자. 유리컵 등 깨질 수 있는 물건은 아이에게 아예 주지 않는 부모들도 있는데, 처음부터 조심스럽게 다루는 법을 가르쳐주면 얼마나 신중하게 물건을 다루는지에 놀라게 될 것이다. 단, 날카로운 칼 등 위험한 물건은 치워 공간을 안전하게 만드는 것은 필요하다. 또 가능한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반복적으로 집안일을 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 집안일을 하나의 생활 리듬으로 만들어 가족의 한 사람으로서 마땅히 할 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아직 손이 여물지 않은 아이들이 하는 집안일이 눈에 차지 않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중간에 개입하거나 억지로 효율적인 방법을 가르치려 하지 말자. 만 5세 이후라면 어떤 일이든 독립적으로 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으므로 이를 인정해줘야 한다. 처음에는 손이 더 가는 것이 사실이지만, 아이 혼자서 해낼 수 있는 일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 

진짜 재료, 진짜 놀이로 감각 열어주기 
발도르프 교육에서는 자연 소재로 만든 장난감이나 작품으로 하는 교육을 중요하게 여긴다. 특히 영유아기 아이들은 감각을 통해 세상을 체험하고 알아가기 때문에 다양한 감촉과 냄새, 형태를 지닌 자연물을 사용해 자연을 느끼고, 감각을 열어주기 위해 노력한다.  
발도르프 교육을 위해 특별히 교구 교재를 구입할 필요는 없다. 집 안의 물건, 산책길에 주워 온 나뭇가지, 낙엽, 돌멩이와 말린 꽃잎 등이면 충분하다. 아이들은 무궁무진한 상상력과 탐구력으로 자연물을 가지고 배, 자동차, 모빌, 인형 등 다양한 장난감을 만든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완제품의 장난감들은 그 쓰임새와 형태가 고정돼 있어 아이들이 흥미를 쉽게 잃지만 자연물로 된 장난감은 아이들이 싫증을 내지 않고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가지고 논다. 
자유 놀이도 중요하다. 소꿉놀이, 숨바꼭질, 나무토막 놀이, 그림 그리기 등 아이들이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놀이에 푹 빠질 수 있도록 내버려두자. 아이가 놀 때 관찰하듯 부모가 지켜보기도 하는데 이럴 경우 아이들은 오히려 온전히 놀이에 집중할 수 없다. 아이가 놀이에 집중해 있을 때는 부모 역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등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면 된다. 단, 아이들이 부모와 교감을 나누고 싶어할 때는 집중해서 아이와의 시간을 갖도록 한다. 산책은 부모와 아이가 손쉽게 함께할 수 있는 즐거운 놀이다. 짧은 시간이라도 하루에 한 번씩 가까운 공원이나 동네를 걸으며 계절의 흐름을 느껴보자. 




Tip  집에서 하는 발도르프 놀이


가장 좋은 교육 방법은 역시 놀이다. 발도르프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이 가장 많이 즐기는 놀이 세 가지를 소개한다. 

색과 모양이 번지는 그림 그리기
색이 번지고 섞이며 의외의 색과 모양이 탄생하는 번지기 그림 놀이는 ‘습식 수채화’라고도 불린다. 괴테의 색채론에 근거해 처음 색에 대해 배우는 아이들이 색의 성질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도록 고안된 그림 놀이다. 그림물감을 20~30ml 물에 풀어 투명하고도 색이 선명한 상태로 만들고, 도화지는 미리 물에 5분 정도 적셔둔다. 도화지를 물에서 꺼내 펼쳐놓고 스펀지로 표면 위의 물기를 닦은 다음 그림을 그리면 된다. 젖은 종이에 색을 칠하면 색이 확 번지는데, 그 위에 다른 색을 칠하면 색과 모양이 변한다. 그림을 완성하는 것보다 색의 변화와 조화를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하므로 그리는 과정에서 색과 모양을 마음껏 즐기도록 한다. 

밀랍 점토 만들기
밀랍 점토는 꿀벌들이 벌집을 만들기 위해 분비하는 천연 물질인 밀랍으로 만든 점토다. 상온에서는 딱딱하지만, 조금씩 떼어 주무르다 보면 약간 열이 나며 말랑말랑해져 다양한 모양으로 만들기를 할 수 있다. 손으로 주무르기만 해도 달콤한 향기가 은은하게 풍겨 손끝의 촉감, 열에 대한 감각, 향기에 대한 감각 등 다양한 감각이 고루 발달한다. 무엇을 만들어내는 것 자체보다는 형태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도록 한다. 말랑해질 때까지 시간이 꽤 걸리기 때문에 인내심을 함께 배울 수 있지만 너무 어린 연령이라면 부모가 주물러줘도 좋다. 만들기가 끝난 후에는 작품을 갖고 인형 놀이나 역할 놀이를 해도 좋다. 

양모 공예
양모 공예의 가장 큰 매력은 만들기 쉽고 간단하다는 것이다. 부드럽고 따뜻하며 가벼운 양모는 잘 엉기는 특성이 있는데, 양모 공예는 이런 특성을 한껏 이용한다. ‘양모공 만들기’는 손에 따뜻한 비눗물을 묻히고 양모를 동글동글 굴리기만 하면 된다. 크기와 단단하기를 다양하게 할 수 있으며, 몇 가지 색의 양모를 섞어 여러 개의 빛깔이 담긴 양모공을 만들 수도 있다. 데굴데굴 굴리거나, 끈을 달아 잡기 놀이를 할 수도 있고, 장식용으로 활용해도 좋다. 이 외에도 양모 구슬, 양모 도토리 등을 만들 수 있는데, 양모를 씌울 재료를 물로 깨끗하게 씻은 뒤 손에 비눗물을 묻히고 양모를 둘러 씌어주기만 하면 된다. 아이들은 양모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촉감을 경험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기쁨을 느끼게 된다.  




참고 도서 


김영숙 <천천히 키워야 크게 자란다>, 크레용하우스(JAPAN) 편집부 <우리집은 발도르프 유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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