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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 폴라리스 Mar 15. 2017

갇혀버린 동물들

월간 <폴라리스> Vol.175 '자연아, 고마워'

동화책과 TV를 통해서 보던 동물을 직접 만나는 것은 큰 기쁨이지만, 이 동물들의 슬픈 사연을 알게 된다면 철창 너머에 앉아 있는 동물들을 보는 것이 절대 ‘교육’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동물을 마음껏 만지고, 가까이에서 바라보고자 하는 마음은 사랑이 아닌 호기심이다. 동물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존중하며, 우리가 지켜주어야 할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올바른 동물 교육의 시작 아닐까. 

글 성소영  에디터 윤경민  포토그래퍼 강봉형



외면하고 싶은 전시 동물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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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고 생각해보자. ‘갇힌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강화유리로 둘러싸인 좁은 공간에서 수십, 수백 명의 시선을 받으며 하루를 보내는 삶은 상상만으로도 비극이다. 하지만 전시되는 동물의 삶이 비참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위험이 도사리는 야생에서보다 훨씬 안전하고, 안락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이러한 통념은 쉽게 깨진다. 
동물원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동물의 특성을 반영하지 않은 획일화되고 좁은 사육 공간이다. 코끼리는 야생에서 생활하는 공간보다 1000배 이상, 북극곰은 100만 배 이상 작은 우리에서 갇혀 생활한다. 열대우림 지역에서 서식하는 악어가 영하를 웃도는 추운 겨울을 지내고, 풀이 우거진 숲에서 사는 원숭이가 앙상한 나뭇가지 몇 개로 꾸며진 철창 안에서 생을 보내기도 한다. 
이러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은 무의미한 행동을 반복하는 이상 행동, 즉 ‘스테레오타이피(Stereotypy)’ 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유리벽 앞에서 끊임없이 점프를 하는 프레리도그, 수족관에서 반복적으로 원을 그리며 헤엄치는 돌고래, 벽에 머리를 박는 재규어 등은 스테레오타이피의 전형이다. 지능이 높은 원숭이, 침팬지, 앵무새 등의 동물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미친 듯이 털을 뽑는다. 
서식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열악한 공간은 때때로 생명을 위협하기도 한다. 흙이 아닌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을 걷는 코끼리들은 관절과 발에 생긴 염증으로 고생한다. 사람의 손에 사육된 코끼리들이 발에 생긴 염증으로 죽는 것은 예삿일이다. 발의 염증은 야생 코끼리에게 전혀 나타나지 않는 질병이라는 사실이 전시와 쇼에 이용되는 코끼리의 끔찍한 삶을 대변한다. 음료 CF에 등장하는 설원 위 새하얀 북극곰에 매료돼 동물원을 찾았다가 거무튀튀한 북극곰을 보고 실망했던 경험이 있는가. 북극곰이 특유의 백색 털을 잃은 것은 인간의 욕심에서 비롯됐다. 서식 환경과 너무 다른 덥고 습한 기후로 인해 겉 털 사이에 녹조류가 자란 것이기 때문이다. 



동물을 만지면 생명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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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의 슬픈 삶은 동물원 외에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백화점, 공연장 및 유원지 등에서는 곤충과 동물을 직접 만지게 하는 체험전이 활발하게 열린다. ‘동물을 만지고 먹이를 줄 수 있다’는 슬로건의 홍보 효과는 대단하다. 이러한 동물체험전은 주말이면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빈다. 
뜰채를 가지고 물고기를 잡는 체험관의 어항 속 붕어들은 아이들의 손을 피해 이리저리 헤엄쳐 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뜰채에 짓눌려 지느러미가 찢어지거나 폐사해 물 위로 둥둥 떠오르기도 부지기수. 특히 토끼, 페럿, 햄스터처럼 겉모습이 귀여운 작은 동물들은 만지기 체험 행사에 무분별하게 노출된다.
이런 행사를 주최하는 업체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동물의 스트레스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아이들이 동물을 직접 만져보는 활동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다고. 하지만 원치 않는 스킨십으로는 세상의 어떤 생명체와도 가까워질 수 없다. 동물보호운동가 전경옥 씨는 자신의 저서 <동물의 행복할 권리>를 통해 이야기한다. “호기심 충족을 ‘사랑’이라 왜곡하지 말라”고 말이다. 
침팬지, 오랑우탄, 돌고래, 코끼리 등 지능이 높은 동물들은 쇼에도 동원된다. 쇼 동물의 삶은 전시 동물보다 훨씬 더 비참하다. 동남아 여행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코끼리쇼는 야생 코끼리를 포획해 훈련시켜 이뤄낸 결과물이다. 새끼 때 불법으로 포획한 코끼리는 목과 다리, 앞다리를 밧줄로 묶은 후 물과 먹이를 제한해 길들인다. 돌고래는 쇠꼬챙이로 찔러 상처를 내고, 원숭이는 채찍질을 당하거나 전기충격을 받기도 한다. 
국내에서도 쇼 동물에 대한 학대가 종종 보도된다. 박람회에서 원숭이 쇼를 진행해 시민단체의 질타를 받은 한 업체의 공연에서는 원숭이가 스트레스로 털을 뽑고, 사육사를 향해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는 모습이 기사화된 바 있다. 지난 2014년에는 서울대공원에서 동물 학대 및 불법포획 논란으로 2012년 폐지됐던 돌고래쇼를 ‘돌고래 생태설명회’라는 명칭으로 재개해 동물보호단체의 질타를 받았다. 이에 서울대공원 측은 과거 동물원쇼가 돌고래를 인위적으로 훈련시켜 만든 쇼라면, 생태설명회는 자연적인 모습을 재연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시민단체 및 동물보호단체의 노력으로 현재는 쇼 동물 학대가 점점 없어지고 있는 추세지만 법의 감시망을 벗어난 사설 업체, 소규모 동물원 등은 여전히 많다. 덧붙여 신체적 학대가 가해지지 않더라도, 동물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파괴하고 네발 동물에게 물구나무를 서게 하거나 윗몸일으키기를 시키는 등 인위적인 행동을 하게 하고, 이를 통해 수익을 얻는 것은 명백한 학대다.
야생에서는 결코 하지 않을 동물들의 행동을 보며 즐거워하는 것은, 이미 우리가 왜곡된 시선으로 동물을 바라본다는 증거다. 이러한 체험과 쇼를 접한 아이들은 동물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고, 인간은 동물보다 우위에 있다는 그릇된 인식을 배울 수 있기에 위험하다. 



변화를 위한 움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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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선진국들과 달리 국내에는 전시 및 쇼 동물에 대한 적절한 규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너무 저렴한 입장료도 학대를 부추긴다. 그런데 국내에도 차츰 동물 복지에 관한 의미 있는 발걸음들이 시작되고 있다. 
지난 5월,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1909년 창경원이 개장된 이후, 100여 년간 동물원을 규제할 법이 전무해 동물들이 법의 사각지대에서 고통 받아 왔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굉장한 변화다. 업계의 반발로 ‘사육동물 환경에 대한 가이드 마련’과 ‘동물복지위원회에게 운영에 관한 자문을 받는다’는 내용이 최종 삭제됐지만, 전시·공연 동물을 보호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처음으로 마련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또 서울시에서는 최초로 ‘관람·체험·공연 동물 복지 지침’을 마련해 7월 8일부터 서울시가 운영하는 동물원 4곳(서울대공원, 어린이대공원, 서울숲공원, 북서울꿈의숲)에서 적용하기 시작했다. 이제 체험을 목적으로 동물의 본래 모습과 다른 부자연스러운 행동을 시키거나 결박, 구속해서는 안 된다. 동물을 훈련할 때 채찍, 족쇄, 전기충격기 등 위협적 도구와 폭력적 방법을 사용하는 것도 금지된다. 충분한 크기의 우리와 몸을 숨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 함은 물론이다. 
동물원들의 자발적인 움직임도 주목할 만하다. 서울대공원에서는 지난 4월부터 입장료를 3000원에서 5000원(어린이 1000원2000원)으로 인상했다. 이로 인한 수익은 오로지 동물 복지에 집중할 예정. 제3아프리카관, 호주관, 홍학사 등 오래된 우리의 안전과 환경을 개선하는 데 쓰인다. 동물들을 위한 생태 환경도 조성할 계획이다. 전주시는 전주동물원을 ‘보는 동물원’에서 ‘즐기는 동물원’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콘크리트 시설물을 모두 없애고 각 동물들의 서식지 환경을 재현하는 등의 노력으로 ‘슬픈 동물원’이란 오명을 벗겠다는 방침이다. 광주시 우치동물원 또한 43억 원을 투입해 동물사 리모델링을 시작했다. 

우리가 먼저 실천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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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악한 환경만큼이나 동물을 괴롭게 하는 것은 관람객들의 태도다. 우리의 즐거움보다는, 동물의 입장을 조금 더 생각하는 마음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함부로 먹이를 주거나 사육장 안으로 돌멩이, 나뭇가지 등을 던져 동물을 자극하는 행위는 절대 해서는 안 된다. 동물 앞에서 소리를 질러 자는 동물을 깨우려는 아이들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이는 동물들에게 매우 스트레스를 주는 일이다. 
또 동물이 재주를 부리는 공연은 절대 관람하지 말고, 고통스러운 환경에서 지내는 동물을 발견했을 때 동물보호단체에 알리는 등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아이와 함께 동물원, 신문사, 정부기관 등에 동물 복지에 대한 생각을 담아 편지를 써보는 것도 좋은 교육이다. 편지 한 장으로 당장 국내의 동물 복지 환경이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아이가 동물을 보는 마음가짐에는 큰 변화가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동물을 직접 보고 싶다면 동물원이나 체험장 대신 야생동물 보호소를 찾기를 추천한다. 가장 좋은 것은 자연 그대로의 산과 들, 바다로의 여행. 이때는 멀리서 동물을 볼 수 있도록 망원경을 챙기는 것이 좋다. 동물 사랑, 생명에 대한 경외심은 철창 너머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동물들의 슬픈 삶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관람객뿐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자. 




동물원 대신 가볼 만한 곳

구호동물의 보금자리, 도담도담 동물누리 

인천대교(주)에서 지난해 인천대교 기념관에 ‘도담도담 동물누리’를 완성했다. 이곳은 버려지거나 인간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동물들이 편안하게 여생을 살 수 있도록 만들어진 국내 최초의 동물보호 안식처다. 입장료 없이도 언제든 방문할 수 있으니(동절기: 월요일 휴관) 아이가 동물을 보고 싶어 한다면 함께 가볼만하다. 설치된 패널에 적힌 동물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읽어주며, 동물을 보호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알려주기에 좋을 것이다. 
주소 인천시 중구 인천대교고속도로3 인천대교주식회사   문의 032-745-8195

동물전문도서관, 킁킁도서관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에서는 국내 최초로 동물전문도서관인 ‘킁킁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다. 국내외 동물 관련 전문 서적 및 아동 서적 1000여 권을 갖춘 곳으로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을 배울 수 있다. ‘동물과 함께 지내는 도서관’을 표방하는 이곳에는 어린 시절 구조돼 카라에서 지내게 된 고양이 두 마리가 도서관을 지킨다. 도서 대출은 불가능하고 열람만 할 수 있다. 
주소 서울시 마포구 잔다리로 122   운영시간 화~금(13:00~18:00)





참고 도서
최혁준 <고등학생의 국내 동물원 평가 보고서>
로브 레이들로 <동물원 동물은 행복할까>
전경옥 <동물의 행복할 권리> 
로브 레이들로 <동물 쇼의 웃음, 쇼 동물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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