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폴라리스> Vol.171 '책아, 놀자'
부모들은 으레 아이가 책과 친해지기를 바란다. 하지만 많은 부모들에게 책은 만날 때마다 서먹하고, 친해지고 싶지만 어쩐지 부담스러운 존재다. 일단 친해지고 나면 가장 재미있고 인생의 고민까지 덜어주는 전천후 친구, 책과 친해지는 법을 알아봤다.
에디터 박은아 포토그래퍼 강봉형 , 이지예 장소 협조 왓츠피데 북촌점
많은 부모들이 아이가 책을 읽기를 바라는데요. 그러려면 우선 부모부터 책을 읽어야 하지 않을까요?
맞습니다. 부모가 책을 읽지 않으면서 아이에게만 강요하면 결국 아이는 책을 읽지 않아요. 아이들은 당위가 아닌 습관으로 사는 존재잖아요.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보다는 부모가 책 읽는 모습을 행동으로 보여주면 책에 흥미를 느끼고 자연스럽게 습관화하죠. 아빠가 킬킬거리면서 어떤 책을 재미있게 본다고 생각해보세요. 아이 입장에서 얼마나 궁금하고 읽고 싶겠어요.
‘우리나라 성인들의 독서량이 낮다’는 뉴스를 매년 접하고 있는데 정말 우리나라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 편인가요?
네, 안 읽어요(웃음). 독서량 조사 결과만 놓고 보면 외국과 큰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그건 16세 이상을 대상으로 조사를 하기 때문이에요.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이 학업 때문에 책을 많이 읽으니까 평균이 높아지는 거지, 어른들은 정말 안 읽어요. 어릴 때부터 책을 학습의 도구로만 여기니까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 같아요. 학창 시절에는 하나의 평가 수단으로 쓸모가 있어서 책을 읽기는 하지만, 의무적으로 읽으니까 재미를 느낄 겨를이 없죠. 당연히 학교를 졸업하면 재미없는 책을 굳이 읽으려 하지 않는 거고요. 하지만 책은 결코 재미없지 않아요. 인생을 살다 보면 권태롭고 지루해지는 순간들이 많잖아요. 그럴 때 책만 한 친구는 없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까요?
우선은 자신에게 재미있는 책을 찾아야죠. 괜히 남들이 좋다는 책, 읽어야 한다는 필독서에 얽매일 필요는 없어요. ‘서울대 교수들의 필독서 100권’ 이런 식의 추천 리스트가 많은데, 사실 서울대 교수님도 그 100권 다 안 읽었어요. 제가 직접 물어봐서 알아요(웃음). 그러니 그런 추천도서나 필독서에 대한 부담을 갖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자기 마음에 드는 책, 눈길을 끄는 책부터 읽으세요. 여행을 좋아한다면 여행 책을, 그림을 그리고 싶다면 그림 그리는 법을 알려주는 책을 골라서 볼 수도 있고요. 그 책을 무리하지 말고, 매일 조금씩만 꾸준하게 읽는 거예요. 읽다가 재미없으면 덮고 다른 재미있는 책을 찾아서 읽으면 돼요. 사람마다 자신에게 맞는 책이 있거든요. 사람을 만날 때도 나와 잘 맞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여러 사람을 만나봐야 하잖아요? 책도 마찬가지예요. 천천히 나와 맞는 책을 찾아간다고 생각하셨으면 해요.
자신이 재미를 느끼는 책, 관심 있는 분야의 책만 계속 읽어도 괜찮나요?
독서 습관이 어느 정도 만들어질 때까지는 그러셔도 돼요. 하지만 어느 정도 책 읽기에 숙련되고 나면, 나는 별로 관심이 없지만 남들이 좋다고 하는 책에도 눈을 돌려볼 필요가 있어요. 책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간접경험을 할 수 있다는 거잖아요. 세상의 모든 일을 직접경험할 수 없기 때문에 책을 읽는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책만 읽는다는 건 곧 익숙한 경험만 되풀이한다는 거거든요. 자신이 모르는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아는 것만 계속 확인하려는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내가 보는 세상이 전부고 모든 것을 안다고 착각하는 어른이 돼요. 그런 어른만큼 아이들을 힘들게 하는 존재도 없잖아요(웃음).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독서를 하는 경우도 많은데요. 이러한 독서법도 괜찮은가요?
독서 습관이 든 사람은 괜찮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다른 유혹이 너무 많아요. 문자나 전화가 오면 당장 책에서 빠져나가게 되잖아요. 책 읽기에 습관이 붙을 때까지는 종이책으로 읽으시길 권하고 싶어요. 독서 습관이 몸에 밴 다음에는 뭘로 읽어도 상관이 없고요.
저서 <책 먹는 법>을 보면 ‘삶의 물음에 답하는 독서’에 대한 얘기가 나옵니다. 이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어요.
책이 던지는 질문이 아닌 삶이 던지는 질문에 집중하는 독서를 하자는 얘기인데요. 저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취직을 못하고 있던 젊은 시절에 어머니가 많이 편찮으셨어요. 형제가 여럿 있지만 당시 제가 미혼이고 직장을 안 다니다 보니 어머니의 간병을 많이 맡게 됐죠. 그런데 간병 기간이 길어지니 아픈 엄마를 보는 것도 힘들고, ‘다른 친구들은 사회생활을 하는데 나는 여기서 뭘 하는 거지?’라는 공포와 불안감이 들더라고요. 그때 하루에 주어지는 자유로운 시간이 딱 1시간이었어요. 어머니가 주무시는 동안 집 앞 도서관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생각해보니 어머니가 돌아가실지도 모른다는 공포, 나이는 먹어가는데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는 불안감이 결국 ‘시간’이라는 질문으로 귀결되더라고요. 그때부터 서가에서 시간에 대한 책을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돌이켜보면 그때의 독서가 제게 굉장한 도움이 됐어요. 찾아보면 자기 인생의 질문은 누구나 가지고 있어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독서는 책을 잘 읽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질문을 찾는 과정에서 자신이 지금 안고 있는 문제가 뭔지부터 점검해볼 수 있고요.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보편적으로 가진 삶의 물음은 육아에 관련된 것일 텐데요. 이를 위해서 육아 정보 서적을 읽는 것도 도움이 될까요?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있고 마음이 편안한 부모가 아이에게도 일관된 가르침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육아 책의 유행은 계속 바뀌잖아요. 수면 방법 하나를 놓고도 어떤 책은 이렇게 하라고 하고, 어떤 책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죠. 아무리 좋은 육아법이라도 부모에게 맞지 않으면 아이는 그 부자연스러움을 느끼기 마련이에요. 육아 책이 주는 정보를 통해 불안을 해소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 확신을 가지는 거예요. 아이를 키우다 보면, 특히 첫아이를 낳아서 키울 때는 불안감이 클 수밖에 없잖아요. 여성의 경우 ‘모성’에 대한 얘기를 어릴 때부터 많이 듣다 보니, 아이에게 조금만 미운 감정이 들어도 스스로를 탓하죠. 그럴 때는 <어머니의 신화> 같은 여성학 책을 읽어보라고 권해드리고 싶어요. 모성에 대해 여성학적으로 접근한 책들을 읽다 보면 지금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상황에 대한 이유를 찾을 수 있거든요. 기술적·지식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가치관을 세우는 쪽으로 책을 읽으셨으면 합니다.
저서를 통해 진지하고 정성스럽게 읽는 ‘정독(精讀)’의 중요성도 강조하셨는데, 정독을 해야 하는 이유가 뭔가요?
그간의 경험에 비춰 보면, 자신이 책을 못 읽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더라고요. 글자를 읽을 줄 아니까 책도 읽을 줄 안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책을 있는 그대로 읽고 이해하지 못해요. 독서에 어느 정도 취미가 붙은 후에는 내가 제대로 읽고 있는 지를 점검해볼 필요가 있어요. 책을 읽는 중간중간에 잠깐 멈추고 지금까지 읽은 부분을 머릿속으로나 필기로 짧게 정리해보세요. 의외로 알고 있다고 생각한 부분을 이해하지 못했고, 저자의 글을 읽기보다는 결국 자신의 말만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으실 거예요. 이런 오독을 하는 가장 큰 이유가 선입견이에요. ‘너는 이런 생각을 했을 거야’라고 미리 답을 내려놓고 그에 맞춰서 글을 읽는 거죠. 그런 태도는 사람을 대할 때도 적용될 수 있어요. 특히 아이에 대해서 어른들이 선입견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잖아요. 부모 자신이 원하는 답을 말할 때까지 질문하고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읽어주지 않는 거죠.
자기 인생의 질문은 누구나 가지고 있어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독서는
책을 잘 읽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책이든 사람이든 선입견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중요하겠네요. 하지만 독서 습관이 들지 않은 사람에게는 정독이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아요. 인문학 책과 같은 소위 ‘어려운 책’의 경우 더욱 진입장벽이 높고요.
제가 강사로 참여하고 있는 독서회에서도 인문학 책을 많이 읽어요. 처음에는 부담스러워 하시지만 1년쯤 지나면 가볍게 읽으시더라고요. 운동할 때를 생각해보면, 힘들어도 참는 과정을 통해서 근력이 만들어지잖아요. 내 몸의 복근을 만들 듯이 뇌 근육을 만들기 위해서도 꾸준히 연습해야 해요. 읽겠다고 마음먹은 책이 있다면 좀 어려워도 끝까지 읽어보세요. 모르는 내용이 있으면 그냥 넘어가면서 읽으셔도 돼요. 한글을 깨우치기 시작한 아이가 책을 읽을 때 모든 단어의 뜻을 알고 책을 읽는 게 아닌 것과 마찬가지죠.
혼자 읽는 것이 어려울 경우 독서 모임에 참여하는 것도 방법일 것 같아요.
맞아요. 요즘은 독서회가 많이 생겨나서 집 근처에서 어렵지 않게 독서모임을 찾을 수 있어요. 독서 모임의 형식도 다양한데, 저는 이왕이면 한 권의 책을 읽고 그에 대해 같이 얘기하는 형식을 추천하고 싶어요.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해서 깊이 있게 얘기를 나누고 자기점검을 할 수 있거든요.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독서 모임을 할 때 ‘필요한 지식만 얻겠다’는 생각으로 참여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지 않으려는 분들도 계시더라구요. 하지만 책은 결국 매개체일 뿐이에요. 인생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사람과의 관계잖아요. 그것을 놓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부모의 독서 습관이 아이에게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식사시간을 활용해서 책에 대한 대화를 하는 것을 추천하고 싶어요. 어른들이 읽는 책, 부부가 재미있게 읽은 책에 대해 얘기하셔도 돼요. 아이가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까 걱정하시는데, 좀 소외돼도 괜찮아요. 오히려 아이들은 그걸 독서에 대한 관심으로 승화시킬 수도 있어요. 엄마, 아빠가 자신은 모르는 책 얘기를 재미있게 하면 더 읽고 싶다고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요즘은 부모들이 아이에게 너무 맞추려고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러면 결국 부모는 재미없어지잖아요. 같이 재미있는 거, 솔직한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사실 아이들은 책을 많이 읽을 필요가 없어요. 아이들에게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봄·여름가을·겨울이 어떻게 다른지를 몸으로 느끼는 것이 중요해요. 그런데 요즘은 배우는 삶을 너무 일찍 시작하잖아요. 아이가 읽는 것과 상관없이 그냥 부모 자신을 위해서 재미있게 책을 읽으셨으면 해요.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아이도 책을 가까이 할 거라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책 읽기를 어렵게 느끼는 부모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요?
저는 인생에서 가장 값싼 취미가 독서라고 생각해요. 책이 비싸다고들 하시는데, 비슷한 가격의 영화 한 편은 2시간이면 보지만 책은 훨씬 오래 보잖아요. 헌책방에 다시 내다팔 수도 있고요(웃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하루에 30분만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읽어보세요. 한 달, 두 달 하시다 보면 슬슬 재미를 느끼고 나중에는 남들이 책 좀 그만 보라고 해도 재미있어서 계속 읽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김이경
오랫동안 서해문집의 편집자로 일했다. 지금은 독서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책 읽기의 즐거움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있다. 시립도서관 독서회의 지도강사를 20년 넘게
맡아오고 있으며, <마녀의 독서처방> <아까운 책> <책 먹는 법> <시의 문장들>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