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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 폴라리스 Mar 21. 2017

옛 소리에서 찾은 육아의 지혜

월간 <폴라리스> Vol.182  '행복하게, 슬로 육아'

‘도리도리 짝짜꿍’ ‘자장자장 우리 아가’ 등의 소리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제 아이들은 엄마, 아빠의 목소리보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동요와 자장가를 들으며 놀고 잠든다. <젊은 부모를 위한 백만 년의 육아 슬기>를 펴낸 문재현 소장을 만나, 조상들의 아기 어르는 소리와 자장가를 통해 본 육아의 오래된 지혜에 대해 들어봤다.

글 성소영  에디터 박은아  포토그래퍼 강봉형  모델 김도연·김승하  의상협찬 모이몰른, 유니클로



아내가 첫째 아이를 임신하고 난 뒤, 아기 어르는 소리와 자장가 연구를 시작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전통 육아 중에서도 특히 아기 어르는 소리와 자장가에 주목한 이유가 있나요? 
제 어린 시절만 해도 아기가 태어나면 그 아기는 마을 전체의 아기였어요. 이웃 어른들은 아기를 보면 도리도리, 짝짜꿍, 곤지곤지 등을 하며 아이와 눈을 맞추고 놀아줬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임신을 하고 보니, 지금은 그러한 공동체의 도움이 사라진 시대가 됐더라고요. 아내는 도시 출신이었기에 이런 경험이 없었고, 저도 ‘어떻게 해야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막냇동생이 태어났을 당시, 온 가족이 모여 ‘도리도리 짝짜꿍’을 했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검증을 받아온 옛 육아법이라면 이런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슬기가 담겨 있을 거라고 생각해 연구를 시작하게 됐어요. 

젊은 부모들은 ‘아기 어르는 소리’라는 말 자체가 생소하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아기 어르는 소리란 무엇인가요? 
‘어르다’는 단어는 몸을 움직이거나 무엇을 보여주고, 들려주어서 어린아이를 기쁘게 해준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 자체에 사랑이 담겨 있는 것 같아요. 결국 ‘아기 어르는 소리’는 ‘아기를 사랑하는 소리’ ‘아이와 공감하고 소통하는 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젊은 부모라고 할지라도 ‘도리도리’ ‘곤지곤지’ ‘까꿍’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예요. 이렇게 아이와 눈을 맞추고 소통하는 소리를 ‘아기 어르는 소리’라고 합니다. 약 30여 종류가 있어요.

아기 어르는 소리와 자장가의 우수성은 무엇인가요? 
가장 좋은 육아 방법은 부모가 얼굴을 마주보고 상호작용해주는 것입니다. 아이의 표정과 느낌, 행동 등에 주변 사람이 공감해주고 반응해주면 그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아이의 인지능력, 사회성 등이 모두 발달돼요. 아기 어르는 소리에는 아이와 즐겁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 방법이 아이의 발달단계마다 마련돼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아이가 기기 시작할 땐 어른들이 “야야 잘도 긴다”라고 호응을 해주고, 일어서기 시작하면 “섬마섬마(어린아이가 스스로 서는 법을 익힐 때 어른이 붙들었던 손을 떼면서 내는 소리)”라고 노래를 해주는 거죠. 이렇게 소리를 내주면 아이는 놀랍도록 큰 힘을 발휘해요. 사실 아이의 성장은 부모에게는 큰 기쁨이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모든 발달단계가 태어나 처음 맞는 도전이자 스스로 극복해야 할 시련입니다. 이때 부모가 어르는 소리를 해주면 아이는 그 순간을 즐거운 놀이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자장가도 마찬가지죠. 잠드는 순간까지 엄마, 아빠와 소통할 수 있기에 아이는 무한한 안정을 느끼게 됩니다.  

아기 어르는 소리와 자장가 연구는 어떻게 진행하셨나요? 책 <젊은 부모를 위한 백만 년의 육아 슬기>에서 직접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찾아 다녔다는 내용을 봤어요. 
첫째 아이가 태어난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제가 사는 청주, 나아가 미원, 음성, 충주 등 인근 지역의 어르신들을 찾아다니며 묻고 그 소리를 배웠어요. 노랫말, 장단뿐 아니라 표정과 호흡, 분위기 등도 최대한 그대로 배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배워온 소리는 아이에게 직접 실험을 해보곤 했죠. 2002년에 둘째 아이가 태어난 뒤에도 계속 답사를 다니며 연구하고 실험하기를 반복했어요. 책에 실린 아기 어르는 소리와 자장가는 기본적으로 충청 지역, 좀 더 넓힌다면 대한민국 중부권의 소리를 기준으로 한 것입니다. 

답사 과정 중에서 특별히 인상 깊었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어느 가을이었어요. 버스를 타고 나오는 길에 한 할머니와 아이를 봤습니다. 할머니가 돌이 안 돼 보이는 아이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우더니 손을 위아래로 흔들면서 “질라래비 훨훨 질라래비 훨훨”이라고 노래를 부르더라고요. 그러자 아이가 활짝 웃더니 다시 한 번 하자고 손을 내밀었어요. 할머니와 아이가 소리를 매개로 몰입해서 노는 모습을 보니, 마치 그곳의 자연과 마을풍경이 함께 노는 듯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아기 어르는 소리’를 생각하면 지금도 그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아이들에게는 그런 세상이 필요해요. 
내가 힘들여 욕망을 표현하지 않아도, 이미 주변에 
즐거운 세상이 펼쳐져 있어서 마음껏 참여하고, 
환대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이요.




구전된다는 특성 때문에 단어는 지역마다 각기 다르게 나타나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는 동일한 아기 어르는 소리가 전국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무척 신기합니다. 우리나라에 이런 육아법이 발달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육아법을 연구하는 외국인들을 만나면 “한국은 좋겠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자신의 나라에서는 이제야 아이와 소통하는 육아법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는데 한국은 포대기, 아기 어르는 소리 등 옛 육아법이 모두 소통의 본질로 꽉 차 있어 부럽다고요. 외국에는 사물을 중심으로 아이와 상호작용하는 곳이 많아요. 어떤 물건을 보여주면서 “이건 뭐야?”라고 묻거나 이야기해주는 거죠. 우리나라에서 아기 어르는 소리가 발달한 것은 우리 민족이 워낙 노래와 놀이를 좋아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우리 전통 사회에는 노동, 종교 의례, 놀이 어디든 노래와 춤이 있었어요. 우리 조상들은 치열하고 힘든 육아도 결국 놀이로 승화시켰던 게 아닐까요? 

아기 어르는 소리, 자장가는 생후 몇 개월 정도까지 하는 게 적당한가요? 

상황과 소리마다 다릅니다. 아기 어르는 소리의 경우 딱 그 시기에만 해줄 수 있는 것들이 더러 있거든요. 예를 들어 ‘섬마섬마’나 ‘야야 잘도 긴다’는 아이가 기고, 서기 시작하는 8~10개월만 할 수 있고, ‘걸음마 걸음마 우리 아기 걸음마’도 아이가 잘 걷게 되면 할 필요가 없어져요. 반면 발달단계와는 상관없는 ‘엄마 손이 약손’이나 아이를 좌우로 흔들어주는 놀이인 ‘둥기둥기’ 등은 아이가 좀 자란 후에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자장가도 아이가 원한다면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까지 불러줘도 좋습니다. 

“잠자리에서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보다 자장가를 불러주는 게 훨씬 좋다”고 하셨어요.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책을 읽어주다 보면 아무래도 부모의 시선이 책에 머물게 되죠. 하지만 자장가는 아이를 바라보며 할 수 있는 활동이고, 자연히 아이의 오감을 만족시킵니다. 자장가를 불러줄 때는 아이를 업거나, 토닥거리는 행동이 자연스럽게 따라오기 때문이에요. 아이들은 부모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편안히 잠을 잡니다. 자장가를 들으면 부모의 따뜻한 시선과 촉감, 목소리가 꿈결까지 함께하기에 모든 감각이 만족스러운 상태로 잠들 수 있어요. 

상황에 맞게 부모가 마음대로 음을 붙여 자장가를 불러줘도 괜찮은가요? 꼭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옛 자장가를 들려줘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자장가든 부모의 목소리와 따뜻한 마음으로 불러준다면 좋습니다. 다만 우리의 가락, 문화를 담고 있는 자장가를 불러주면 아이에게 문화적 정체성까지 심어줄 수 있기에 더 좋지요. 또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이러한 소리에는 확실한 효과가 있어요. 오랜 역사와 문화 속에서 우리 조상들의 의식, 무의식 속 합의를 통해 가장 좋은 것들만 남아 있기 때문이죠. 한 번 시도해보면, 전통적인 자장가를 불렀을 때 아이의 반응이 얼마나 긍정적인지 확인할 수 있을 거예요. 

아기 어르는 소리와 자장가를 부르고 싶어도 낯설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한 경우가 많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젊은 부모들이 육아에서 이러한 소리를 실천해볼 수 있을까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의 부모에게 물어보는 거예요. 도리도리, 곤지곤지, 짝짜꿍 같은 소리를 모르는 어른들은 없을 테니까요. 아이가 걸음마를 할 때는 뭐라고 해줘야 하는지, 아이와 어떻게 놀아줘야 하는지 등을 물어보고 따라 하면 내 아이와의 관계는 물론이고, 부모님와의 관계도 좋아질 수 있습니다. 함께 아기 어르는 소리를 해보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른들은 삶의 활기를 되찾고, 젊은 부모들은 자연스레 육아에 대한 지혜와 노하우를 배울 수 있을 겁니다. 

책과 블로그에 실린 아기 어르는 소리와 자장가를 그대로 들려주는 것은 말리고 싶다고 했던 것도, 이처럼 세대 간 소통을 염두에 두고 한 말씀인가요? 
맞아요. 부모는 자기 문화를 가지고 있어야 해요. 자신의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가 나에게 불러주고 놀아줬던 것을 내 아이에게도 해주는 것이 소통이자 문화의 전승이죠. 책에 있는 소리를 그대로 따서 들려주는 노력은 단순히 ‘좋은 전통 육아 방법’을 따라 하는 것에 불과해요. 그래서 꼭 부모들이 자신의 엄마, 아빠 나아가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가서 물어보고 찾아 배우는 기회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나의 부모와 할 이야기가 생기고, 나도 사랑받으며 자란 사람이었다는 추억이 생겨요. 부모님이 즐거워하는 것은 물론이고요. 

부모가 아기 어르는 소리를 하거나 자장가를 불러줄 때 꼭 명심했으면 하는 점이 있나요? 

엄마와 아빠가 함께해야 한다는 거예요. 아이는 주양육자 한 명과 있을 때보다 자기가 알고 있는 사람들이 모였을 때 가장 즐겁게 놉니다. 둘째 아이가 태어났을 때, 아내는 일을 하고 제가 재택근무를 하며 아이를 키웠는데, 아이가 저랑 둘이 있을 때는 ‘도리도리’도 잘 안하고 흥겹게 놀지를 않더라고요. 그런데 형과 엄마가 돌아오면 신나게 놀곤 했습니다. 그건 아이가 가족을 알고 있다는 뜻이고, 마음이 충만해야 논다는 거예요. 엄마, 아빠가 먼저 ‘곤지곤지’ 등을 하고 있다가 아이를 참여시켜도 좋습니다. 아이들에게는 그런 세상이 필요해요. 내가 힘들여 욕망을 표현하지 않아도, 이미 주변에 즐거운 세상이 펼쳐져 있어서 마음껏 참여하고, 환대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이요. 옛날에는 마을이 그런 환경이었다면, 지금은 부모가 그걸 만들어줘야 해요. 부부가 ‘내가 육아에 참여하지 않으면 모두가 힘들어진다’는 생각을 하고 함께해야 합니다. 

아기 어르는 소리와 자장가를 현대 사회에서 복원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정부적인 차원에서 공동체에 대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엄마 혹은 아빠 혼자 아이를 보는 건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마을에 육아방 같은 것을 만들고 그곳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아이와 놀아주는 시간을 마련했으면 해요. 독일에서는 2009년을 ‘자장가의 해’로 기획하고 방송국에서 오후 8시면 무조건 자장가를 방송했어요. 또 유명 가수들에게 자장가를 부르게 하고, 부모가 이 음원을 아주 저렴한 값에 구입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출판사에서는 자장가 관련 출판을 활발히 진행했고요. 사회가 함께 아이를 기르는 문화적 풍토를 만든 거예요. 우리나라에서도 이처럼 아기 어르는 소리, 자장가를 전국적으로 홍보해 생활 속에서 부모가 습득할 수 있는 형태를 만들었으면 해요. 유럽은 이러한 문화가 끊어진 게 100년이 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마을이 함께 아이를 돌보고, 아기 어르는 소리와 자장가를 들으며 자랐어요. 끊긴 기간이 짧으니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되살릴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부모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무엇이든 좋은 것은 오래 걸립니다. 그 점을 명심하고, 어색하더라도 자꾸 소리를 따라 해보고 노래를 흥얼거려 보길 바랍니다. 아기 어르는 소리와 자장가는 오랜 세월을 통해 검증된 육아법이에요. 아이들이 분명 좋은 반응을 보여줄 것입니다. 어렵더라도 마음을 먹고 한 번 시도해보세요. 아이를 포함한 가족 모두가 행복해질 것입니다. 






문재현 마을공동체교육연구소 소장 

마을공동체교육연구소를 운영하며 학교폭력 예방, 우리 문화를 바탕으로 한 교육 과정 등의 프로그램을 연구하고 진행한다. 두 아이의 아빠가 된 이후, 아이들을 잘 기르기 위한 방법으로 ‘아기 어르는 소리’와 ‘자장가’에 주목해 연구를 시작했고, 이에 관한 글을 담은 <젊은 부모를 위한 백만 년의 육아 슬기>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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