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폴라리스> Vol.169 '반가워, 사회성'
바야흐로 아빠 육아의 시대가 왔다. 세상에서 가장 바쁜 사람 중 한 명인 페이스북의 최고경영자(CEO), 마크 저커버그까지도 딸의 출산 시기에 맞춰 육아휴직을 냈다. 육아에 푹 빠진 대한민국 대표 아빠, 정우열 전문의를 만나 지금까지 육아에서 빠져 있던 아빠들이 육아에 푹 빠져야만 하는 이유를 들어봤다.
에디터 윤경민 포토그래퍼 유재철, 강봉형 소품 협찬 밀크하우스
최근 아빠 육아의 효과가 부각되면서 아빠들의 육아 참여가 늘어나고 있는데 아빠 육아에는 어떤 효과들이 있나요?
아빠가 육아에 참여했을 때 아이들에게 일어나는 효과는 어마어마합니다. 기본적으로 사회성 발달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데 아이큐와 정서 지능도 높아지고, 신체적으로도 훨씬 건강해져요. 또 긍정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고, 언어 발달에도 효과적이죠. 그 이외에도 자존감, 자신감, 안정감 등 좋은 것은 모두 다 발달한다고 보면 됩니다(웃음).
아빠 육아가 아이의 사회성을 키운다는 과학적인 근거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국립아동발달연구소에서 33년 동안 1만7000명의 아이들을 추적 연구했는데 사회성이 좋고 성공한 어른은 어렸을 때부터 아빠들이 육아에 많이 관여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미국 코네티컷대학교 로날드 로너 박사팀에서도 35년 동안 1만 명을 추적 연구했더니 어렸을 때부터 아빠와 많이 놀고 대화를 나눴던 아이들이 훨씬 긍정적이라는 결과도 나왔고요. 긍정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회성과 큰 연관이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했던 연구도 있는데 육아정책연구소가 5년간 2000가구를 추적 조사한 결과, 아빠가 지속적으로 양육을 하는 가정의 아이들이 사회성이 좋다는 결과를 얻었죠.
아빠 육아의 효과가 이처럼 뛰어난 이유는, 아빠가 엄마보다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인가요?
그동안 간과해온 아빠의 역할을 재조명하는 과정에서 과하게 포장돼 오해 아닌 오해가 생긴 부분이 있는데 아빠 육아의 효과는 절대 아빠가 엄마보다 뛰어나서 생기는 것들이 아니에요. 또 아빠 혼자서 이뤄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아빠효과의 전제 조건은 엄마의 육아 참여입니다. 아빠효과는 엄마와 더불어 아빠까지 육아에 참여할 때 발생하는 효과를 말하는 거죠.
엄마의 참여가 없는 아빠 혼자만의 육아는 효과가 없는 건가요?
아빠효과는 엄마와 아빠 두 사람이 골고루 아이에게 영향을 줬을 때 이뤄지는 것이에요. 한쪽으로 치우친 육아에는 언제나 부족한 영역이 생깁니다.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까요. 그래서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엄마와 아빠가 함께하는 육아가 아이에게 더 좋은 영향을 줄 수밖에 없죠. 특히 사회성은 단순히 사교성이 아닌 언어, 인지, 신체 등 아이들의 발달이 모두 포함된 총체적인 개념으로 모든 영역이 영향을 주고 받아요. 그래서 어느 한 영역이라도 부족한 부분 없이 고루 발달해야 해요. 그래서 아이의 사회성을 위해서는 더욱이 엄마와 아빠의 균형 잡힌 육아가 필요합니다.
아빠가 더 잘할 수 있는 역할이 따로 있나요?
육아에 아빠의 영역이 있다는 연구가 시작된 지는 서양에서도 얼마 되지 않았어요. 1970~1980년대에 조금씩 이뤄지다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늘어났죠. 초반에는 아빠와 엄마의 역할을 성 역할에 초점을 맞춰서 구별했었는데 최근에는 엄마와 아빠의 영역을 따로 구분하지 않아요. 보통 여자는 감성적이고 남자는 논리적이라고 하는데 이는 남자와 여자의 차이라기보다는 사람마다 다른 부분이거든요. 아빠가 더 섬세하고 엄마가 더 이성적인 가정도 있죠. 따라서 ‘아빠는 이러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라고 정해진 것은 없어요. 엄마와 아빠가 각자 잘할 수 있는 부분을 아이와 함께해주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죠.
쉽게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보통 신체놀이는 엄마보다 아빠가 더 적합하다고 하더라고요.
다른 건 몰라도 남자와 여자의 신체적 차이는 확실히 있어요. 따라서 엄마보다 아빠의 힘이 훨씬 세죠. 그래서 아이와 신체놀이를 할 때에는 엄마보다 아빠가 유리해요. 자라온 환경상 아빠가 엄마보다 운동을 많이 했으니 더 잘하기도 하고요. 운동은 사회성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여겨지기도 하는데 신체 활동은 아이의 사회성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좌뇌보다 우뇌가 발달하는 미취학 아동에게 아빠와 하는 격렬한 신체 활동은 매우 중요해요. 우뇌는 전체적인 분위기를 파악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사회성과 크게 연관되어 있는데, 대근육을 사용하는 신체 활동은 우측 대뇌를 자극하는 효과적인 방법이거든요.
나에게 딱 붙어 안겨 있는 그 느낌.
둘만의 교감을 해본 아빠들은
절대 육아에서 손을 뗄 수가 없어요.
아빠의 육아 참여가 저조할 때, 아이의 사회성에는 어떤 부작용이 생기나요?
사회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능력인데,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으려면 먼저 자기의 마음을 알아야 해요. 자신의 생각이 옳고 그른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없는 아이들은 부모의 반응을 통해 이를 판단합니다. 그래서 부모는 논리적으로 잘못을 따지기 전에 먼저 아이의 감정부터 인정해줘야 해요. 그래야 아이가 자기 마음에 대해 확신을 얻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죠. 그런데 대체로 엄마들은 아이의 행동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해주려는 경향이 강해요. 아이의 감정을 인정하기보다는 계속 지적하고 통제하려고 하죠. 반면 아빠들은 참 쿨해요. 웬만하면 다 괜찮다고 하죠. 이는 엄마와 아빠의 차이라기보다는 누가 주양육자이며, 어느 쪽의 책임감이 더 무겁냐에 따라 생기는 차이예요. 그런데 대부분은 엄마가 주양육자이다 보니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아이들의 행동에 아빠들보다 훨씬 예민하죠. 그래서 좀 더 여유롭고 편안하게 아이의 마음을 이해해줄 아빠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주양육자가 아빠일 경우에는 이 역할을 엄마가 수행하기도 하죠.
많은 아빠들이 갑자기 부각된 아빠 역할에 부담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엄마와 아이를 위해서 더 많은 부분을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아빠들이 아빠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을 꺼리고 부담스러워하는 이유는 사실 아빠, 즉 자신에게 좋은 점이 없다고 생각해서예요. 아빠효과의 장점으로 엄마와 아이의 이점만 부각되는 것이 큰 문제죠. 이기적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아빠도 사람이기에 무조건적인 희생만으로는 아빠의 역할을 수행할 수가 없어요. 잠깐은 가능하겠지만 오래가지 않아 탈이 나죠. 육아에 참여할 동기부여가 필요해요. 부모가 건강하게 육아를 이끌어 가려면 부모가 누릴 수 있는 장점이 꼭 있어야 하고, 그것들이 강조돼야 합니다.
육아에 참여했을 때 아빠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아이의 사랑이죠. 둘만이 느낄 수 있는 끈끈한 유대감.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아주 특별한 감정이에요. 육아에 참여하는 아빠들이 힘들지만 그래도 육아를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하는 공통적인 이유 또한 아이에게서 느끼는 사랑이에요. 아빠에게 친밀감을 느끼고 유대감이 형성된 아이들은 아빠에게 안길 때부터 차이가 나요. 그걸 아빠들도 느끼죠. 나에게 딱 붙어 안겨 있는 그 느낌. 둘만의 교감을 해본 아빠들은 절대 육아에서 손을 뗄 수가 없어요. 그때부터는 하지 말라고 뜯어말려도 포기하지 않죠. 이 맛을 한 번 본 아빠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시간을 내서 아이와 함께 있으려고 해요. 주양육자로 아이를 돌봤던 아빠는 복직을 해도 그 역할을 계속 이어가려고 노력하죠. 아이가 세상 그 누구보다 아빠를 의지하고, 위하고, 원한다는 그 느낌은 한편으로는 부담이지만 엄청난 기쁨이거든요. 엄마들이 애 보기가 힘들다고 하면서도 주양육자를 고집하는 이유도 이와 같아요.
아빠가 아이와 친밀한 유대관계를 쌓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역시 스킨십이에요. 특히 아이가 어릴수록 효과가 큽니다. 신생아 때 아빠가 아이를 안는 것을 불안해 하는 엄마들이 많은데, 태어나고 3일 동안 아빠와 신체 접촉을 많이 한 아이가 아빠에 대한 유대감을 훨씬 많이 느낀다고 해요. 그래서 초반에 많이 안아주는 게 좋아요. 아이는 생후 6개월이 지나면 낯가림을 하기 시작하는데 그전에 스킨십을 통해 많이 친해져야 돼요. 그 시기를 놓치면 아이가 아빠를 어색해 하고 불편해 하죠. 아빠에게 안긴 아이가 칭얼거리기 시작하면, 마음이 상한 아빠는 아이와 함께하길 주저하고, 엄마도 힘들어 하는 아이와 아빠를 보며 아이를 맡기지 않게 되는 거예요. 그때부터 아빠와 아이의 관계는 삐걱거리고 회복하기 힘들어져요. 그래서 아이가 어릴수록 아빠가 더욱 시간을 많이 투자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아빠가 아이를 좋아하게 되는 것도 초반에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예요. 아이가 아빠에게 익숙해지는 것만큼 아빠가 아이에게 익숙해지는 것도 중요하죠.
아빠가 아이와 친해지기 위해서는 엄마의 역할도 중요한 것 같아요.
그렇죠. 엄마는 아빠를 믿고 그 시간을 지켜봐주고, 아빠가 자기만의 스타일로 아이와 유대감을 쌓도록 기다려줘야 해요. 그렇게 아이와 친밀감이 생긴 아빠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아이를 위해 공부하고, 더 좋은 것을 찾게 되고, 바람직한 것을 전해주고 싶어하죠. 그러니 조금만 참고 아빠들을 믿어주세요(웃음). 그러면 주양육자가 아니더라도 아빠의 육아 참여도는 저절로 커질 테니까요. 그리고 아이들의 사랑을 아빠와 나눠 가지려는 태도도 필요해요. 육아의 기쁨을 아빠와 나눴을 때 가족이 더 행복해지고, 아이가 더 건강해지니까요.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좋은 아빠가 되려면 먼저 아빠 자신을 잃어버리면 안 돼요. 부모라는 책임감과 부담감이 너무 크면 본연의 자신을 무시하게 되는데, 그러면 오히려 부모라는 역할을 짐스럽게 느끼게 되죠. 그러면 그 짐을 준 아이에게 불만이 쌓이고, 나도 모르게 화를 내게 되고 그런 자신에게 실망감을 느끼게 됩니다. 부모들은 힘들고 지친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계속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하는데, 사실 아이들은 다 알고 있어요. 부모의 말이 진심인지, 저 표정이 진짜인지 의심하고 불안해 하죠. 그렇게 부모와 아이 사이에 거리감이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아이의 감정을 인정해주는 것만큼 부모, 자기 자신의 마음을 살피는 것도 중요해요. 부모도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정우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부모들에게 사랑 받는 육아 멘토이자 다섯 살 딸과 네 살 아들의 주양육자인 워킹대디. 한 번 시작한 육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해 매일 울고 웃으며 아이들과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