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계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

by 스프링버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



아니야 그렇지 않아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아무것도

나는 하지 않았어란

아무것

그리고 다음의 이 음절로

이루어졌지

나는

여기에 더한다

일인칭

단수

직설법

보조

동사

have를

만약

행위함이

윤리적

물리적

그리고 종교적

관례들과


무한히

결합

될 수 있다면


모든 걸

나는 다 했단 말도

다를 바 없지


왜냐면

진공의 에너지가

혼란을

일으킬 때


모든 것

그리고 아무것은

동의어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만이

혼란을 완성

시키지



"난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 (그러니까 더 이상 날 귀찮게 하지 마. 날 비난하지 마.)"

"난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 (그러니까 난 결백해. 날 비난하지 마.)"

누구나 이런 구차한 변명을 한 번쯤은 해보지 않았을까? 이 변명을 당겨보면 죄책감이라는 뿌리가 따라 올라온다.


왜 나를/우리를 좀 도와주지 않아?

왜 나를/우리를 외면해?

사장님 나빠요!

...


귀에서 왱왱대는 비난의 말들이 있다.

나는 비난하는 사람이 되기도 했고 비난받는 대상이 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또는 집단의 일원으로.

어떨 때는 무관심이 또 어떨 때는 이기심이 비난거리를 만들어냈던 것 같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내가 비난에 대해 떳떳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양심의 저울로 냉정하게 재보면 한쪽으로 심하게 기운다.


시인은 진공의 힘을 이용하는 진공청소기의 원리를 세상에 빗대어 적용한다. ('진공의 에너지'란 현실과 유리된 에너지를 말한다.)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는 울타리 밖에 있는 약자들을 외면하는 핑계라고.

내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핑계.

관례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는 핑계.

관례는 도덕적이고 물리적이며 종교적으로 흠잡을 데 없는 든든한 울타리여서,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확실하게 지켜주지만 울타리 밖의 사람들에게는 냉혹하다.


시인은 가차 없다.

핑계를 말하는 사람이 다수의 무리가 아닌 바로 '나' 개개인이라는 것(일인칭 단수),

핑계는 직설적인 거절이라는 것(직설법),

아무것도 하지 않음 역시 행위함이라는 것(동사),

그리고 내 것을 나누고 싶지 않다는 욕심(have)이 핑계 밑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독립된 시행들로 표현한다.

...

일인칭

단수

직설법

보조

동사

have

...


시인은 관례라고 했지만 비단 관례뿐일까. 고백하자면, 나 개인적으로도 울타리를 겹겹으로 두르고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다...


시인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는 1883년에 태어나 1963년에 세상을 떠난 사람으로, 미국의 소도시에서 평생을 소아과 의사로 일하며 시를 썼다고 한다. 그 소도시는 결코 부유하지 않았던 모양이고, 그래서 그의 시에는 일관되게 소외된 이, 농부, 가난한 이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시인은 사회의 부조리함과 사람들의 이기심과 단단한 관례의 울타리들을 보고, 울타리가 사람들을 보호하고 배척하는 양날의 칼로 작용하는 상황을 직시했다. 그리고 시로 썼다.


사람을 감정과 이성이 있는 존재, 사랑과 슬픔과 고통을 느끼는 존재로 대하지 않는 냉혹한 상황들을 너무 많이 듣고 보고 때로는 겪기도 했다.

"난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와 "난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가 동의어가 되는 상황을 보고 싶지 않다. 진심으로.

대체로 보호받으며 살아온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 자책하다가 마음을 고쳐 생각했다.

뭐라도 하면 되지.

아무것과 모든 것 사이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은 얼마나 많은가.




To Have Done Nothing


No that is not it

nothing that I have done

nothing

I have done

is made up of

nothing

and the diphthing

ae

together with

the first person

singular

indicative

of the auxiliary

verbe

to have

everything

I have done

is the same

if to do

is capable

of an

infinity of

combinations

involving the

moral

physical

and religious

codes

for everything

and nothing

are synonymous

when


energy in vacuo

has the power

of confusion

which only to

have done nothing

can make

perfect



* 커버 그림은 윌렘 드 쿠닝의 작품입니다.

* 민음사에서 출판된 영한대역 시집 <꽃의 연약함이 공간을 관통한다>, 2021년판에서 발췌한 시입니다. 정은귀 번역자의 번역이 아닌 제 언어로 다시 번역했습니다. 오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너그러이 양해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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