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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프링버드 Dec 01. 2023

"참 맛있소."


브런치에서 어떤 분의 깻잎 김치 글을 읽고 문득 떠오르는 풍경이 있었다. 아니, 자주 떠올리던 풍경이라고 하는 게 맞다.


"아, 참, 맛있소."

시아버님은 식탁에 앉으시면 거의 항상 이 말씀을 하셨다. 물론 당신의 아내에게 하는 감사의 인사였다.

친정에서는 (과장해서)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이어서, 당시 갓 결혼한 새 며느리의 귀에는 이 인사말이 너무나 신선하고 무엇보다 놀라웠다. 아, 이런 감사 인사가 가능하구나, 감탄했더랬다.

당연히 수저를 내려놓으시면서도 아버님은 말씀하시곤 했다.

"잘 먹었소."


어느 날은 두 분이서 이런 대화를 하셨다. 아직도 어제 들은 듯이 생생한 대화.

- 아, 참, 대구탕 시원하오. 맛있어.

- 우리 젊었을 적에는 왜 이 대구를 눈 속에 파묻지 않았어요.

- 그랬지.

- 대구가 크니까 그걸 두고 한참 먹었지.

- 그랬지. 아, 맛있소.


두 분의 대화를 들으면서 머릿속에서 선명하게 그림이 그려졌다.

추운 겨울, 하얀 눈, 쌀쌀한 바람, 젊은 어머니가 맨손으로 눈을 파헤치고 대구를 꺼내는 모습이.

손은 빨개지고 생선은 꽝꽝 얼었겠지. 그걸 꺼내 부엌으로 가져가 펄펄 끓는 고추장 국물에 푹 담그는 모습이.

파를 크게 썰어 넣고, 고춧가루를 탁탁 뿌리고, 간장으로 간을 맞추고, 솥에서는 하얀 김이 펄펄 오르는 모습이.

그걸 국그릇에 담아 역시 뜨거운 흰밥 옆에 딱 놓아두면 젊은 아버님이 "아, 참, 맛있소." 하는 모습이.


어머님이 만드셨던 몇 가지 국이며 반찬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이를테면 가지나물. 프라이팬에 기름을 듬뿍 두르고 구워내 빨간 고추장 양념을 얹었던 그 맛.

이를테면 소고기두부버섯국. 역시 고추장 국물에 넣고 펄펄 끓여낸 그 뜨겁고 매운맛.

이를테면 꼬막무침. 입안에서 팡 터지던 꼬막즙의 그 고소하던 맛.


이 반찬 얘길 하면 남편은 특별한 감흥이 없다. 참 맛있지 않았냐고 물어도, 별반 반응이 없다. 내 입에만 그렇게 그게 맛있었던 건지... 그 대신 남편은 콩나물국, 홍합국, 게장 얘길 한다. 어머님은 그런 음식들도 자주 해주셨긴 했다.


오늘 아침 상에 빨간 양념을 얹은 가지나물을 올렸다. 남편은 아버님보단 어머님을 닮은 편이라 "아, 참, 맛있소, " 같은 말은 꿈에도 할 생각을 못하지만, 어머님의 요리를 입에 넣는 아들을 보는 흐뭇함 같은 게 있다. 내가 나이가 들긴 든 것 같다. 예전 같으면 잔소리를 꽤나 했을 텐데 말이다. 칭찬 좀 해라, 칭찬 좀, 하면서.


두 분은 진작에 돌아가셨다. 하지만 그분들의 대화, 목소리, 표정, 그때의 바로 그 순간, 식탁의 풍경은 현재형이다. 사람의 기억은 믿을 게 못돼서 뒤죽박죽 과거를 아예 통째로 지워버리기도 하고, 이상하게 뒤틀어놓기도 하고, 변색시키기도 하지만, 좋은 면도 꽤나 있다.

오늘같이, 과거의 다정하고 따뜻했던 풍경을 지금 바로 이 순간으로 가져와 잠시 그때를 현재로 체험하게 해주기도 하니까. 돌아가신 두 분과 한 상에 앉아있게 해주니까 말이다.

아이참, 살아계실 때 좀 곰살맞게 굴걸, 하는 후회와 함께 말이다 .

나는 아주 아주 새침데기 며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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