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약함이 지닌 강한 힘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 장미

by 스프링버드

장미


장미는 한물 갔지

그러나 꽃잎은 저마다 끝에서

날을 만들지, 양면으로

굽이진

선율의 기둥들을 결속시키며 ― 그 날은

자름 없이 자르고

만나며― 없음을 ― 새롭게 바꾸지

자신을 금속 혹은 도자기로


그리고는? ― 끝나


그러나 그것이 끝날 때

출발은 시작되지

그래서 장미들의 개입은

기하학이 되는 거야 ―


장식도자기에서 중요한 건

더 날카롭고, 더 깔끔하고, 더 많은 꽃대 ―

깨진 접시는

장미로 빛이 나지


어딘가에서는 그 감각이

만들어내 구리 장미들을

강철 장미들을 ―


장미는 사랑의 무게를 견뎠어

그러나 사랑은 끝에 있지 ― 장미의 끝에

사랑은 기다려 꽃잎

그것의 날에서


사각거리고, 힘들여서

자연스러움을 쟁취해 낸 ― 연약하고

담대하고,

촉촉하고, 반쯤 일어선

차갑고, 정교하고, 감동적인 그것의


저길 봐


저 자리 꽃잎의

날과 ___의 사이


꽃잎의 날에서 선 하나가 시작되네

강철의 생명체가

은하수를

무한히 섬세하고, 무한히

단단한 몸으로 뚫고 들어가네

건드리지도 않고 ― 솟구쳐오르네

그 위로 ― 매달리지도

밀치지도 않으며 ―


꽃의 연약함이

상처도 없이

우주를 뚫고 들어가네.



시인은 장미를 한물 갔다 말한다. 사랑은 한물 갔다고.

하지만 장미의 꽃잎 하나하나가 정교하고 아름답게 마무리된 그 가장자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꽃잎의 꽃날을 보면,

꽃이 얼마나 애썼나가 보인다.

기어코 자연스러움을 이루어낸 장미는 그래서 강철처럼 무한히 섬세하고 강하다.


연인은 장미로 사랑을 표현하니, 장미는 사랑을 전달하는 부담을 지고 있다 해도 좋겠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이란 부담을 의도치않게 상대에게 지우는 셈이다. 장미로써.

하지만 연인은 사랑이란 짐을 지고 있지 않아도 된다.

사랑은 꽃잎의 가장자리, 꽃날 끝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더 큰 공간으로, 우주로, 은하수 저 위로 솟구쳐 올라가니까.

연약하디 연약한 꽃은 무한한 우주 공간으로, 강철처럼 단단한 힘으로, 상처도 입지 않고, 뚫고 올라가니까.

시인은 이 시의 딱 한 곳에서 마침표를 찍었다. 바로 마지막 행에서.

그 마침표가 내 생각에는 첫 행 "장미는 한물 갔지"에 대해 "아니!"라고 단호하게 부정하는 것처럼 해석된다.

장미가 상징하는 사랑은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라고 시인은 말하는 것 같다.

사랑은 세속에, 시간과 공간에 구속되지 않는다고 말이다.


꽃잎의 꽃날 끝에서 선이 시작되는 자리를 시인은 꽃날과 ___의 사이라고 하는데, ___로 옮긴 이 부분은 원문에서 정관사 the다. ‘the + 명사’. 영어 문법에서 배워 알고 있는 이 문형을 시인은 의미심장하게 무시해버렸다:

저 자리 꽃잎의 / 날과 ___의 사이에

The place between the petal’s / edge and the


'정관사 + 명사' 구조에서 명사를 생략함으로써 시인은 뭘 말하고 싶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유일한 ‘무엇’일 텐데, 내용상 우주 같지만 어쩌면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신, 어쩌면 신비, 어쩌면 없음, 또 어쩌면 ...

시인은 우리에게 수수께끼를 던졌다. 그걸 풀려면 우리도 시인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시인은 이 시를 머릿속에서 굴리고 굴리고 굴려서 이 세상에 내놓았고,

이 시를 이렇게 저렇게 우리말로 굴리고 굴리고 또 굴리며 나도 지난 이삼일을 시인이 되어 살았다.



The Rose


The rose is obsolete

but each petal ends in

an edge, the double facet

cementing the grooved

columns of air ― The edge

cuts without cutting

meets ― nothing ― renews

itself in metal or porcelain ―


whither? It ends ―


But if it ends

the start is begun

so that to engage roses

becomes a geometry ―


Sharper, neater, more cutting

figured in majolica ―

the broken plate

glazed with a rose


Somewhere the sense

makes copper roses

steel roses ―


The rose carried weight of love

but love is at an end ― of roses

It is at the edge of the

petal that love waits


Crisp, worked to defeat

laboredness ― fragile

plucked, moist, half-raised

cold, precise, touching


What


The place between the petal’s

edge and the


From the petal’s edge a line starts

that being of steel

infinitely fine, infinitely

rigid penetrates

the Milky Way

without contact ― lifting

from it ― neither hanging

nor pushing ―


The fragility of the flower

unbruised

penetrates space.



* 이 시의 마지막 연은 민음사에서 출판된 시인의 시집 제목으로 쓰였는데, 정은귀 번역자는 이 부분을 '꽃의 연약함이 공간을 관통한다‘로 번역했음을 알려드립니다.

* 커버 그림은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 <장미가 있는 과수원> 입니다.

* 민음사에서 출판된 영한대역 시집 <꽃의 연약함이 공간을 관통한다>, 2021년판에서 발췌한 시입니다. 정은귀 번역자의 번역이 아닌 제 언어로 다시 번역했습니다. 오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너그러이 양해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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