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예술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 역청과 구리를 이용한 작품

by 스프링버드


역청과 구리를 이용한 작품


이제 그들은 쉬고 있다

티 없는 빛 아래

한결같이 외따로이


점심이 끝나면

편평한 지붕 여기저기

열리어 뿌려질


정확히 둘씩

쌓아놓은 돌가루

자루처럼

구리는 길이 8

피트 졸대

세로로 두들기어

중앙에서 정확히

꺾기고 그다음

테두리 작업을 기다린다


한 사람이 아직 밥을 씹으며

구리 졸대 하나를 집어 들어

눈으로 훑는다


이 시의 핵심은 제목이 다 말한 것 같다. 정성 들인 노동이 곧 '작품'이라고 말이다.

시인은 제목으로 "이제부터 독자 여러분은 훌륭한 작품을 만드는 현장을 보게 될 겁니다." 하고 굵고 짧게 알린다. 마치 팀파니로 쾅, 치며 시작되는 교향곡처럼.

"그런데 이 작품에는 역청과 구리가 쓰입니다." 하는 부가 설명을 곁들여서.


작업은 화가나 작가의 작업실이 아닌, 지붕에서 이뤄지고 있다.

시간은 아마도 열두 시에서 한시쯤.

인부들은 점심밥을 먹고 이제 오후 작업을 시작하려 한다.

가늘고 긴 구리 졸대로 지붕의 테두리를 두르는 일인 모양이다.

준비는 얼마나 깔끔하고 완벽한지! 햇빛조차 티 한점 없이 깨끗하다.

인부 한 사람이 밥도 다 먹기 전, 눈으로 구리 졸대가 똑바른지를 살펴본다. 진정 장인이고, 전문가답다.

시인은 이게 예술이지 예술이 별거냐고 독자에게 묻는다.

영어 제목의 'Fine Work'를 '훌륭한(혹은 정교한) 작업'으로 옮길지 한참 고민했다.

하지만 '작품'이라는 말 속에는 '정교하고 전문적인 기술'이, '시간과 노력이 쌓인 기술'이, '정성'이 함의돼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노동/노동자를 경시하는 경향이 있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하지만 노동이라고 무조건 신성시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는 않는다.

내 생각에, 노동이든, 혹은 예술활동이나 지적인 전문분야 같은 사회적으로 더 존중받는 일이든, 그 가치를 결정하는 건 그 일에 얼마나 정성이 들어갔는가에 있는 것 같다. 당연한 얘기지만...

시인은 이 당연한 사실이 무시되고 있는 현실에 대고 이걸 다시 소리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이탈리아의 작가로, 제2차 세계대전 때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프리모 레비는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에 썼다:

나는 종종 내 동료들에게서 (가끔은 나 자신에게서도) 흥미로운 현상 하나를 발견했다. '잘된 일'에 대한 열망이 매우 뿌리 깊다는 사실이다.


이어서 그는 수용소 시절에 한 조로 일했던 벽돌공 얘기를 한다:

그는 독일과 독일인들, 그들의 음식, 그들의 말, 그들의 전쟁을 혐오했지만, 폭탄에 대비한 방호벽을 쌓아 올리는 일이 맡겨졌을 때, 벽돌을 정확히 교차시키고 석회를 충분히 발라가며 곧고 단단한 벽을 세웠다. 명령을 존중해서가 아니었다. 전문적인 일에 대한 존엄성 때문이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들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업의 귀천을 따진다. 우선 나부터도 말이다. 하지만 '일'의 가치는 '정성'에 있음을 아는 극소수의 사람들이 있어서 나에게 부끄러움을 가르친다.


"농부가 밭을 일구듯 나는 캔버스를 일군다"라고 했던 고흐는 동생 테호에게 쓴 편지에서 시인의 이 시를 산문으로 변주해 놓았다.


농부는 밭에서 일하는 면옷 차림일 때가
주일날 정장을 하고 교회에 갈 때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져.


고흐는 화가이기도 했지만 문학가였다. 아니, 정확히는,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Fine Work with Pitch and Copper

Now they are resting

in the fleckless light

separately in unison

like the sacks

of sifted stone stacked

regularly by twos


about the flat roof

ready after lunch

to be opened and strewn

The copper in eight

foot strips has been

beaten lengthwise

down the center at right

angles and lies ready

to edgy the coping

One still chewing

picked up a copper strip

and runs his eye along it




* 표지 그림은 장 프랑수아 밀레의 <톱질하는 벌목인부들>입니다.

* 민음사에서 출판된 영한대역 시집 <꽃의 연약함이 공간을 관통한다>, 2021년판에서 발췌한 시입니다. 정은귀 번역자의 번역이 아닌 제 언어로 다시 번역했습니다. 오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너그러이 양해해 주세요^^

* 시집에서는 '콜타르 찌꺼기와 구리로 하는 세밀한 작업'으로 번역된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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