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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프링버드 Mar 28. 2024

당신은 재담도 많으셨지만

박이문의 시 중에서


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당신은 재담도 많으셨지만

그렇게도 사는 걱정 많으시더니

당신은 지금

말씀 없이 누워계십니다.

삼백 년 살아왔다는

고향 산 언덕 때를 덮으시고

말씀 없이 누워계십니다


이제 그 많던 걱정도 잊은 듯이

당신은 별말씀 없으십니다

팔월 땡볕을 쓰며

당신을 찾아 여기 당신의

무덤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습니다

당신의 막내 또 돌아다니는

아들이 앉아 있습니다


당신과 말하는 대신

당신의 무덤 위 잡초를 뜯으면서

당신을

당신의 걱정을

당신의 생각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무덤 앞에 앉아 있습니다

잡풀만 뜯으면서

살아 있기에

당신의 무덤 여기서

하늘이 곱고

흰 구름이 떠 있고

고향의 하늘 위에






아버지의 무덤을 찾아와 아들은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아버지를 생각한다. 재담도 걱정도 많으시던 아버지.

아버지는 가셨고, 재담과 걱정도 같이 떠났다.  

아들은 아버지를 가만히 그린다. 아버지 입에서 나오던 재담과 아버지가 이고 있던 무거운 걱정.


고향 언덕의 잔디는 삼백 년을 살아왔다는데, 하늘 흰 구름은 여전히 떠 있는데.

아버지는 말씀이 없으시다.

침묵하는 아버지 앞에서, 살아계셨을 때도 으레 그랬을 것만 같이, 아들은 하릴없이 잡풀을 뜯는다.

어쩌면 두 사람은 말로써 동아줄처럼 튼실하게 이어진 사이는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저 뜨거운 핏줄로 이어진 사이였을 뿐.

집을 떠나 멀리멀리 자꾸자꾸 돌아다니는 막내아들은 틀림없이 아버지의 사랑이었을 테지만.


무덤,

삶이 돌연 뒤로 멀리, 감감히, 물러서는 곳,

삶과 죽음을 가르는 심연이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놓여있다.

정직하다면, 용감하다면,

우리도 그 심연을 언젠가는 가뿐히 넘어가리란 걸, 우리는 또렷이 본다.

그 많은 걱정을 지고 가시던 아버지를 그리워한 아들도 결국 떠났다.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시를 쓰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철학하던 박이문 씨도.


무덤,

죽음이 누워있는 자리,

살아있음이 선명한 자리,

떠난 이를 만나러 오는 곳,

떠난 이가 떠났음을 거듭 확인하는 곳,

잡풀을 뜯는 일 밖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곳.

그저 막막하게, 어리둥절하게, 넋을 놓고 있게 되는 곳.

아득히 멀고, 바로 옆에 있는,

쓰다듬고 보듬을,

생의 이면.






우리의 '당신'을 생각해 본다.


당신은 재담도 많으셨지만

당신은 사랑도 많으셨지만

당신은 미움도 많으셨지만

당신은 걱정도 많으셨지만

당신은 포악도 부리셨지만

당신은 탐욕도 많으셨지만


많으셨지만,

많으셨지만,


당신은 말없이 그곳에 누워있네요

이제 그 많은 재담/그 깊은 사랑/그 아픈 미움/그 많은 걱정/그 지독한 포악/그 대단한 탐욕

그 많고 많은 것들을

잊은 듯이

당신은 별 말이 없으시네요


나는 땡볕을 쓰고 앉아

잡풀을 뜯으며

앉아 있어요

살아 있기에


당신의 무덤 여기서

하늘이 곱고

흰 구름이 떠 있는

이곳에서


행복한가요, 당신?

행복하기를 바라요.

부디.





*출처 <울림의 공백>, 박이문, 미다스북스,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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