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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프링버드 Apr 04. 2024

그대의 여름은 시들지 않으리

<노매드랜드>와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8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8  


내 그댈 여름날에 비하리?

그대는 더 아름답고 더 온화하다네.

거친 바람은 5월의 사랑스러운 꽃봉오릴 흔들고,

빌려온 여름날은 너무도 짧아라.

때로 하늘의 눈 태울 듯 빛나고,

종종 그의 금빛 안색 흐려지는데.

자연의 아름다움은 때로 쇠퇴하지.

우연히 혹은 항구한 자연의 변화로.

그러나 그대의 영원한 여름은 시들지 않으리,

그대가 지닌 그 아름다움 사라지지 않으리.

죽음은 제 그늘 속으로 그대 들어간다 자랑 못하리.

그대 이윽고 영원한 시가 된다면.

     인간들이 숨을 쉬고 눈이 볼 수 있는 한.

     이 시도 살아남아, 그대에게 생명을 불어넣으리.




https://www.youtube.com/watch?v=8DMZGwRlPKA




기억되는 한 살아있는 거다.


영화 <노매드랜드>의 주인공은 아버지가 한 말을 떠올린다. 기억되는 한 살아있는 것이라고. 영화는 2011년 석고보드를 생산하는 회사 'US석고'의 공장 폐쇄와 그의 여파로 인한 주거지 소멸로 유랑생활을 하게 된 여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룬다. 배경은 경제불황이지만 이야기는 한 사람의 여로에 맞춰져 있다. 이 사람을 통해서 영화는 보여준다.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과 애도, 위안과 기억, 연대와 연민, 자유와 해방을.


영화는 또한 묻는다. 우리는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삶의 형태는 유일한 선택인가. 삶은 얼마나 영속적인가. 자연의 품은 얼마나 너른가.


노년으로 이제 막 진입한 편은 'US석고'에서 일했던 남편을 암으로 잃고, 회사 폐쇄로 자신의 정든 삶의 터전까지 잃는다. 노년은 지혜롭게 안정되게 삶에 안주할 것만 같은 시기지만 실은 그렇지 못하다. 상실과 추락과 혼돈과 절망이 파도처럼 덮치는 시기일 수도 있다. 그녀는 마음도 몸도 방황한다. 밴을 개조해서 일터를 찾아 한시적 노동자의 삶을 살 수밖에 없게 된 그녀에게 지인들은 자기 집에 와서 살라고 권한다. 하지만 그보다는 유목민의 삶을 선택한 펀. 자기 집이 있었던 펀에게 낯선 냄새가 밴 남의 집은 home이 아니기 때문이었을까.

여주인공 펀은 홈리스homeless냐고 묻는 친구의 딸에게 홈리스가 아니라 하우스리스houseless라고 답한다. 하우스와 홈의 차이를 우리는 진정으로 알고 있는지? 종종 집을 못 찾아 헤매는 꿈을 꾸는 나는 실은 홈리스였던 게 아닐까? 이 대목을 보며 자문했다.


그녀는 유랑생활을 하며 비로소 정착민들의 삶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정착민과 유랑민의 삶은 거의, 전혀, 접점이 없어 보인다. 유랑하는 자는 외롭다. 그러나 유랑하는 사람 사이에서도 관계는 형성된다. 유랑하는 무리들은 유랑하며, 때로 모이고, 때로 흩어진다. 그들은 헤어질 때도 '안녕'이라고 인사하지 않는다. 그 대신 '다음에 또 봐'라며 손을 흔든다. 실제로 일터에서나 혹은 길에서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종국에는 우리 모두 만나게 되어있다. 삶이 끝나는 그 시점에는.  


남편과 삶의 터전을 잃는다는 것은 평범한 주부였던 펀에게 온 세계가 몰락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나를 지탱해 주던 모든 바탕이 무너져버리는 경험. 영화 초반부터 거의 종반까지 그녀의 얼굴에 어린 절망한 자의 표정은 잊을 수 없다. 그럼에도 그 얼굴에 미소는 어린다.


유랑민들의 삶을 도와주는 모임의 지도자는 편에게 얘기한다. 아무 해결책도 제시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그리고 덧붙인다.  


자연 속에서, 사람들과 교감을 나누며 살다 보면, 삶이 달라질 거예요.


유랑하는 삶 속에서도 삶은 이어지고, 사람들과의 관계는 더 진솔하다. 그들 사이에는 과거에 얽혔던 역사가 없고 미래를 위한 약삭빠른 계산도 없기 때문이다. 아무 허식도 걸치지 않은 오롯한 그 사람만 있을 뿐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사람의 진솔함 말이다.


그리고 자연이 있다. 언제든 품을 열어주는 자연이. 너른  바다로, 광활한 사막으로, 무한한 우주로, 맑은 강물로 자연은 사람을 받아들인다.  


우리는 정착민들의 후예여서 정착한 삶 밖에는 모르는 것 같지만 우리 안에는 방랑자의 유전자도 끈질기게 살아있는가 싶다. 어딘가로 훌쩍, 영영, 떠나버리고 싶은 충동이 때로 쿡쿡 내면을 찌른다. 그러나 아무도 붙잡지 않는데도 우리는 정착생활을 감히 버리지 못한다. 부동산으로 한 재산 일구려는 생각은 유목민의 시선으로 볼 때는 너무나 우스꽝스럽기만 한데 말이다.


모든 걸 잃었지만 한 세상이 닫힘으로써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턱을 넘게 된 펀은 오래오래 슬퍼하고 절망하고 애도하며 길을 떠돈다. 그리고 담배와 라이터를 건넸던 떠돌이 청년을 다시 만난 날, 그에게 셰익스피어의 시를 읊어준다. 사랑의 시다. 빌려온 짧은 여름날보다 더 오래오래 살아남는 사랑. 여름이 수없이 오고 가는 것을 반복하는 동안에도 조금도 나이 들지 않고 생생한 사랑. 사랑하는 이는 시가 되어 내 가슴속에서 영원히 아름다울 것이라고 노래하는 사랑의 시를.

펀은 집 없이 차를 집 삼아 유랑하며 자연 속에서, 가끔씩 만나는 떠도는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새로운 집을  찾은 것 같았다. 그리고 바로 저 시, 셰익스피어가 읊은 시가 그 집을 사랑으로 채워준다..


사랑은 영원하다.


펀은 오래오래 길을 떠돌다 언젠가는 정착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떠도는 그 시간도 그녀에게 집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녀에게는 항상 언제나 집이 있다. house가 아닌 home은. 그 집에는 그녀의 사랑하는 남편과 과거의 아름다운 순간들이 항상 현존하리라.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을 회상해 본다. 빛나던 순간. 그 순간 속에서 빛나는 얼굴. 그이가 활짝 웃으며 바라보는 나의 얼굴에서도 빛났을 웃음.  마주 보는 두 얼굴이 발하는 환한 빛으로 여름날의 태양은 흐려졌으리라. 그러한 순간들을 기억한다.


사랑하는 사람, 그이가 죽음의 그늘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해도, 이윽고 사랑하는 이가 가슴속에서 한 편의 시가 된다면, 그이는 살아있을 것이라고 시인은 노래했다. 호흡이 다 하고 눈이 감기는 그날까지 시가 생명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셰익스피어에게 온 마음으로 사랑을 바치며  


그대 이윽고 영원한 시가 된다면.
    인간들이 숨을 쉬고 눈이 볼 수 있는 한.
이 시도 살아남아, 그대에게 생명을 불어넣으리.





*시 출처: <소네트>, 셰익스피어, 신정옥 옮김, 셰익스피어 전집 337, 2011.

*소개된 시는 저의 번역임을 알려드립니다.

*베리티 작가님의 영화소개글이 큰 영감이 되었다는 것도 밀씀드리며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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