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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프링버드 Apr 18. 2024

시를 먹는다

화니와 알렉산더의 시 두 편



인생의 마지막 모금


노인이 말했다

하루는 도미라고     


노인의 손자가 뜻을 물었다

하루는 도미이고     


우리는 하루의 살 한 점만 먹거나

뼈의 살을 깨끗이 발라 먹거나

심지어 뼈까지 탕에 넣고 끓여 먹거나     


그건 우리에게 달렸다고

노인은 도미찜의 살을 손자의 흰밥 위에

얹으며 답했다     


할머니의 인생이 도미라면

잘 잡수신 것 같으세요?     


매운탕 끓여서 국물까지 비웠지     


노인은 활짝 웃었다     


손녀는 다짐했다

인생의 살을 깨끗이 발라먹고

인생의 뼈로 국을 끓여

마지막 한 모금까지 들이켜겠다고     


-화니와 알렉산더




브런치작가 화니와 알렉산더의 시를 읽고 도미가 먹고 싶어졌다.

부러 시장에 들러 도미를 샀다.

생선가게 아저씨는 도미의

비늘을 벗기고 소금을 뿌려 비닐에 넣은 다음

신문지에 싸주셨다.

생선을 신문지에 싸서 받다니

이십 년 전 시간을 이곳에서 만나다니.


뜨거운 김 오르게 물을 끓이고

도미에 생강과 대파 곁들여

부드러운 깊은 맛 도미찜을 해야지.

고운 살 한 점 발라 식구에게 먹여야지.

하루를 수고로이 산 식구에게.

하루를 성실히 살았을 식구에게.


잡곡밥 대신 하얀 쌀밥을 지어서

흰밥에 생선 살을 얹어줘야지.

매운탕을 끓여서 국물까지 비울 그때까지

기운 내라고, 애쓴다고

한 점 생선살을 뜨신 밥 위에 얹어줘야지.


시를 먹는다.

밥이 된 시를.

소박하게 차린 밥상에 맛있는 시를 올리고

감사히 시를 먹고

우리는 살이 찌리라.


시인의 더 뜨거운 시가 우리를 또 먹인다.

배부르게 먹고

뜨끈하게 먹고

몸도 마음도 살이 찌라고.




곰국     


어제 당신이 내게 준

다정한 말들과

오늘 당신이 내게 준

온유한 말들을

솥에 넣는다     


냉철한 솥을

위로의 약불 위에 올리니

솥의 얼굴도 따스해진다     


푹 고아서

하루 종일 푹 고아서     


부드럽고 뽀얗고 뜨끈한

언어의 국물을

내일 당신에게 전해주려고 한다     


- 화니와 알렉산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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