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문의 시
그대는 몸부림을 쳤다
어둡고도 어두운, 진정으로 어두운 무언가를
길고도 깊은, 진정으로 깊은 무언가를 말하려고
그대는 몸부림을 쳤다
말할 수 없는, 심오한 무언가를 외치려고
쓸 수 없는 것을 써보이려고
보일 수 없는 것을 내보이려고
그대는 검은 우유를 들이켜고 또 들이켰다
진한 슈바르츠 밀히
마시고 마시다가 그예 취해버렸다
그대는 심오한, 어두운 무언가를 보았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그대에게는 보였다
어떤 진실, 절대적 진실과 아름다움
그대는 심저에 영원히 낫지 않을 상처를 입었고
죽음의 외로움과 그 아름다움에 그토록 슬펐던 것이다
그대는 알아볼 수 없는 단어를 적었고
별 뜻 없는 몇몇 노래를 불렀고
무의미한 시를, 시들을 저었다
그대는 슈바르츠 밀히, 검은 우유를 들이켜고 또 들이켰다
그대는 토드스푸크, <죽음의 둔주곡>을 시로 쓰고 또 썼다
그대는 센 강에 투신했다
죽음의 깊이
절대적 진실
절대적 미에
가닿기 위해
그대는 자신에게 진실했으며
어쩌면 이글거리는 태양처럼
진실로 자신에게 가혹했으며
어쩌면 아프리카 사막의
다이아몬드만큼이나 견고했노라
박이문의 이 시를 읽고 파울 첼란의 시 <죽음의 둔주곡>을 찾아보았다. 이 시를 옮긴 함기석 시인은 제목을 <죽음의 푸가> 로 번역했다.
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그것을 저녁에 마신다
우리는 정오와 아침에 그것을 마신다 우리는 그것을 밤에 마신다
우리는 마시고 또 마신다
우리는 공중에 무덤 하나를 판다 그곳에선 좁지 않게 누울 수 있다.
한 남자가 집안에 살고 있다 그는 뱀과 더불어 논다 그는 편지를 쓴다
그는 날이 어두워지면 독일로 편지를 쓴다 너의 금빛 머리털 마르가레테
그는 그렇게 쓰고 집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는 별들이 반짝인다 그는 자기의 사냥개를 휘파람으로 블러 모은다
그는 자기의 유태인을 휘파람으로 불러낸다 지상에 무덤 하나를 파게 한다
그는 우리에게 명령한다 자 무도곡을 연주하라
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너를 밤에 마신다
우리는 너를 아침과 정오에 마신다 우리는 너를 저녁에 마신다
우리는 마시고 또 마신다
한 남자가 집안에 살고 있다 그는 뱀과 더불어 논다 그는 편지를 쓴다
그는 날이 어두워지면 독일로 편지를 쓴다 너의 금빛 머리털 마르가레테
너의 잿빛 머리털 술라미트 우리는 무덤을 공중 하나를 판다 그곳에선 좁지 않게 누울 수 있다
그는 고함을 지른다 더 달콤하게 죽음을 연주하라 죽음은 독일에서 온 거장
그는 고함을 지른다 더 음울하게 바이올린을 켜라 그러면 너희는 연기처럼 공중으로 올라간다
그러면 너희는 구름 속에 무덤 하나를 갖게 된다 그곳에선 좁지 않게 누울 수 있다
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너를 밤에 마신다
우리는 정오와 아침에 그것을 마신다 우리는 그것을 밤에 마신다
우리는 마시고 또 마신다
한 남자가 집안에 살고 있다 너의 금빛 머리털 마르가레테
너의 잿빛 머리털 술라미트 그는 뱀과 더불어 논다
그는 고함을 지른다 너희들 한 무리는 띵 속을 더 깊이 파고 너희들 다른 무리는 노래를 부르며 연주하라
그는 허리의 권총을 잡는다 그는 권총을 흔든다 그의 눈은 푸르다 너희들 한 무리는 삽질하고 너희들 다른 무리는 무도곡을 계속해서 연주하라
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너를 밤에 마신다
우리는 너를 정오에 마신다 죽음은 독일에서 온 거장
우리는 너를 저녁과 아침에 마신다 우리는 마시고 또 마신다
죽음은 독일에서 온 거장 그의 눈은 푸르다
그는 납총탄으로 너를 맞춘다 그는 너를 정확하게 맞춘다
한 남자가 집안에 살고 있다 너의 금빛 머리털 마르가레테
그는 자기의 사냥개를 우리에게 몰아온다 그는 우리에게 공중의 무덤을 선사한다
그는 뱀과 더불어 놀며 꿈을 꾼다 죽음은 독일에서 온 거장
너의 금빛 머리털 마르가레테
너의 잿빛 머리털 술라미트
파울 첼란(Paul Celan, 1920~1970)은 루마니아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 21세 때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독일군에 의해 강제수용소로 끌려갔다고 한다. 수용소에서 부모가 죽고 그도 가스실에서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전쟁이 끝나고 첼란은 루마니아와 오스트리아를 거쳐 프랑스 파리에 정착했는데, 7권의 독일어 시집을 남기고 센 강에 투신했다.
<죽음의 푸가>에서 시인이 토해내는 체험담은 여러 책을 통해 익히 알고 있지만, 사실상 '안다'고 말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읽어서 아는 상황과 체험하는 상황은 절대 같을 수 없으니까.
그대는 몸부림을 쳤다
말할 수 없는, 심오한 무언가를 외치려고
쓸 수 없는 것을 써보이려고
보일 수 없는 것을 내보이려고
첼란은 '심오하고 어두운 무언가'를 보았는데 그것으로 인해 마음 깊은 곳에 '영원히 낫지 않을 상처'를 입었다. 박이문 시인은 이 말 뒤에 의미심장한 행을 잇는다.
죽음의 외로움과 그 아름다움에 그토록 슬펐던 것이다
죽음이 아름답다고.
대체로 그럴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가끔은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삶이 검은 그림자를 드리울 때, 찬란한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깊숙이 넘어갔을 때, 짙은 밤하늘에 별빛이 반짝이듯 죽음도 문득 빛을 발한다.
미국의 한 철학자는 '죽음이 내뿜는 이상하고 매력적인 에너지'가 있고 그것이 두렵다고 책에 썼다. 정확히 말하면, 그가 느낀 두려움은 죽음의 에너지가 아니라 그것이 '매력적'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에너지에 아무래도 내가 굴복할 것만 같아서 말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님프 세이렌은 바위섬에서 신비로운 노래를 부르고, 그 노래에 홀려서 선원들은 바위섬으로 배를 몰거나 바닷물 속으로 뛰어든다. 신화 속 세이렌이 선원을 홀리듯이 죽음은 우리를 홀리는 힘이 있는지 모른다.
우리는 생명과 죽음을 나누는 높고 좁은 담장 위를 위태로이 걷고 있는 것일까. 산다는 게 뭔지 잘 모르겠고, 종종 외면하고 싶다. 그래서 박이문이 말했듯, 죽음도 삶 못지 않게 아름답게 느껴지는 때가 있다. 그런데 그 아름다움은 치명적이다.
모두에게 삶은 언제나 어딘가 편치 않다
- 박이문의 시 <인천공항에서> 중에서
파울 첼란의 시세계와 일생에 대해서 아주 피상적으로만 알고서 다시 박이문의 시를 읽는다.
그런데 박이문의 시에서 유독 끌렸던 싯구는 첼란을 알기 전이나 안 뒤에나 다르지 않다. 첼란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떤 시를 썼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건?
내 생각에, 삶과 죽음을 직면하는 한 사람의 자세 혹은 고갱이인 것 같다.
시인은 그것이 어떤 모습인지, 어떤 모습일 수 있는지를 말한다. 실제로 첼란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상관 없을지 모른다.. 첼란을 통해서 시인이 보고자 했던 것, 그것이 실은 핵심이지 않을까.
시인은 첼란을 바라보지만 시인의 시선은 첼란을 통과해 더 멀리로 날아간다. 영영 실현시킬 수 없는 이상적인 빛을 향해서, 시인 자신이 지향하는 그 먼곳, 불가능의 지점으로.
그대는 자신에게 진실했으며
어쩌면 이글거리는 태양처럼
진실로 자신에게 가혹했으며
어쩌면 아프리카 사막의
다이아몬드만큼이나 견고했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