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시
내게는 두 애인이 있노라,
하나는 위안이요, 다른 하나는 절망이라,
그들은 두 천사처럼 항상 나를 유혹하도다.
선의 천사는 수려한 남자요
악의 천사는 살갗이 검은 여자라.
여자인 악의 천사가 내 곁에서 선의 천사를 유혹하여
내 성자를 악마로 타락시키려,
그의 순수를 추악한 육체로 매혹한다.
내 천사님이 과연 악마로 변신했는지
추측은 해도 명백히 말할 수는 없노라.
그러나 둘이서 내 곁을 떠나 서로 짝패가 되었으니
한 천사가 다른 천사의 지옥에 빠졌으리라.
하지만 확실히는 몰라서 의심 속에 살 수밖에.
악마가 천사를 추방할 때까지는.
이 시는 <오셀로>에 나오는데, <소네트>에도 거의 비슷한 형태로 포함돼 있다. <오셀로>는 인간의 질투에 관한 이야기고, <소네트>도 뒤얽히는 사랑을 그리는 시 연작이다. 그러니까 이 시는 '맥락'이 있다. 악의 천사와 선의 천사로 비유되는 남녀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맥락 없이도 이 시는 사람의 마음을 잘 표현해 주는 것 같다. 이거 내 마음인 걸, 싶게.
마음이 두 갈래로 갈라질 때, 왼쪽과 오른쪽 귓가에서 두 목소리가 속삭일 때가 있다. 한쪽에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좋은 쪽으로 생각하라고 속삭인다. 다른 쪽에서는 정반대의 목소리로 말한다. 그 목소리는 사태의 부정적인 면을 드러내고, 마음을 비좁고 어두운 길로 이끈다.
선의 천사는 언제나 위태롭다. 검은 여자가 너무나 매혹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위험은 천사의 내면에 있다고 하는 편이 더 맞을 것 같다. 검은 여자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싶지만 넘어가고도 싶은 두 마음이 선의 천사와 악의 천사의 모습을 하고 내 곁에 있다.
마음은 언제나 '의심'한다. 둘이 '짝패'가 되었을까? 의심하는 마음은 괴롭다. 흥미로운 건, 천사가 악마로 변신해서 지옥에 빠진다 해도 악마가 천사를 추방할 거라고 시인이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악마는 유혹이 목적이니까. 그가 선의 천사를 유혹하는 건 사랑해서가 아니다. 악마는 사랑을 모르기 때문이다.
악의 천사인 검은 여자의 이름은 절망. 부디 악마의 속삭임에 귀를 막기를. 세이렌의 노래를 듣지 않으려고 오뒷세우스가 돛대에 몸을 묶듯이, 어딘가에 마음을 묶어두기를. 수려한 선의 천사가 악의 천사와 어울려 끝내 지옥으로 끌려들어가지 않도록 말이다.
* 이 시가 <오셀로>의 어느 번역본에 포함돼 있는지 찾지 못했다. <소네트>(신정옥 옮김, 전예원, 2011)에 실린 시는 다음과 같다.
내게 애인이 둘 있으니, 위안과 절망이오며,
두 요정인 듯 언제나 나에게 소곤거리노라.
더 나은 천사는 수려한 남자요,
더 나쁜 요정은 빛이 검은 여자라.
나를 비로 지옥으로 밀어 넣으려고 이 마녀는
더 나은 천사를 나로부터 떠나게 꼬시고,
나의 성자를 악마로 타락시키며,
그의 순수함을 그녀의 추악한 오만으로 치근거리니.
내 천사가 악마로 변하는지
의심은 할 수 있으니, 바로 말할 수는 없느니라.
그러나 둘은 나를 떠나 정답게 지내니,
짐작하건대 한 쪽 천사가 다른 쪽 지옥에 빠졌으리라.
하지만 이를 알 수는 없으나, 의심하며 살리라,
나의 나쁜 천사가 나의 착한 천사를 불길로 쫓아내기까지.
* 요즘 관점에서 보자면, 셰익스피어는 성차별적이고 인종차별적이란 비난을 받아 마땅할 텐데, 16세기 사람이니까 그런가보다 너그러이 생각하셨으면 좋겠다.
* 신정옥 번역자의 설명에 따르면, 소네트는 '작은 노래'라는 뜻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