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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프링버드 Sep 28. 2024

셰익스피어: 소네트 66


66


이 모든 것에 지쳐, 안식할 죽음 달라 외치노라.

부자 되어 마땅할 사람, 거지로 태어나고

무가치한 무지렁이, 화려한 옷 걸치고

순결한 믿음, 쉬이 저버림 당하고

황금 영예, 치욕스레 실추되고

처녀의 정조, 거칠게 유린당하고

온전한 정의, 악으로 망가지고

힘은, 절룩거리는 권력에 불구 되고

예술은, 귄위 앞에 침묵하고

어리석음이 - 현자처럼 - 지식 다루고

솔직한 진실은, 어리석음이라 잘못 불리고

포로 된 선이, 악한 대장 시중드네.

   이 모든 것에 지쳐 이런 세상 그만 떠나고 싶구나,

   내 죽어서 내 임 홀로 남겨 두지만 않을 양이면.


- 박우수 옮김 (*번역문에 쉼표를 첨가했습니다.)




66


이 모든 일에 싫증나 편안한 죽음을 바라노라.

유덕한 자가 거지로 태어난 것을 보고,

천한 자가 화려하게 치장하고,

순수한 신의가 불행하게 버려지고,

빛나는 명예가 부끄럽게도 하찮은 자에게 주어지고,

처녀의 정조가 무참히 유린당하고,

극히 정당한 것이 사악하게 모욕당하고,

힘이 부당하게 억압되어 무력하게 되고,

예술이 권력에 의하여 입이 막히고,

머저리가 학자인양 기능을 통제하고,

순수한 진실이 무지하다고 오칭 되고,

선한 포로가 악한 적장에게 시중드는 것들을 보고 나니,

   이 모든 일에 싫증 나서 저승으로 가고자 하노라,

   죽어도 나의 사랑이 홀로 남는 것이 아니라면.


- 신정옥 번역




66


Tir'd with all these, for restful death I cry,

As to behold desert a beggar born,

And needy nothing trimmed in jolliry,

And purest faith unhappily forsworn,

And gilded honor shamefully misplaced,

And maiden virtue rudely strumpeted,

And right perfection wrongfully disgraced,

And strength by limping sway disabled,

And art made tongue-tied by authority,

And folly, doctor-like controlling skill,

And simple truth miscalled simplicity,

And captive good attending captain ill.

   Tir'd with all these, from these would I be gone,

   Save that to die, I leave my love alone.



https://www.youtube.com/watch?v=zabEpuSJ2Xo








2009년 베를린 국립극단 베를리너 앙상블의 셰익스피어 공연 중 소네트66을 감상해 볼까요. 배우들이 독일어로 시를 읊는데. 독일어는 모르지만 'und [ ʊnt ]'는 알겠습니다.  'and'지요. 이 시는 and로  시작되는 행을 열 개나 나열해서 시인의 감정을 극대화시키고 있습니다. 세상에 대한 강한 염오의 감정이지요. 시인은 연인만 아니라면 죽고 싶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옛날을 아름다운 이상향처럼 돌아보기도 하는데, 시인의 시대나 우리의 시대는 결국 비슷한 건지요.   


무대는 아주 흥미롭습니다. 중앙에 나무가 한 그루 있고, 젊은 여자가 뱀과 사과를 손에 들고서 이 모든 일에 싫증나 편안한 죽음을 바라노라 노래합니다. 무대 양쪽에는 늙은 여자와 남자가 의자에 앉아있습니다. 이 외에 다른 무대 장치는 전혀 없습니다. 어둠과 빛이 강하게 대비되는 무대입니다.  


극의 구성은 이렇습니다. 우선 젊은 여자가 전체 시를 노래하고, 다시 늙은 여자와 남자가 시의 3행부터 10행까지를 4행씩 나눠서 부른 다음, 세 사람이 11행부터 14행까지를 함께 부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젊은 여자가 시의 1행 이 모든 일에 싫증나 편안한 죽음을 바라노라를 다시 한번 노래하며 무대는 어두워집니다.


가만히 보니, 극은 성경의 창세기를 인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무대 중앙의 나무, 젊은 여자가 들고 있는 뱀과 사과는 에덴동산을 연상시킵니다. 나무는 생명의 나무겠지요. 창세기에서 하느님은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이브에게 에덴동산 한가운데에 있는 나무 열매는 따먹지 못하게 합니다. "너희가 죽지 않으려거든 먹지도 만지지도 마라." 하지만 간교한 뱀이 이브에게 말하죠. "너희는 결코 죽지 않는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무대의 늙은 여자와 남자는 여왕과 왕처럼 보이지만 꼭 그렇다고 단정하긴 어렵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대부분은 궁정의 비리를 폭로하고 있다고 해요. 그렇다고 해도 무대의 늙은 여자가 셰익스피어가 활동하던 당시의 엘리자베스 여왕 1세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 1세는 잉글랜드의 연극을 꽃피운 긍정적 인물이거든요. 그러나 그 당시 잉글랜드의 사회는 아마도 긍정적으로 볼 수만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무대의 두 남녀는 아마도 그 당시 사회의 기득권자들을 상징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권력을 세습하는 사회는 늙습니다. 구태의연하지요. 셰익스피어는 비판적인 작품들을 써서 여왕 앞에서 공연했던 간 큰 작가였고, 여왕은 그런 공연에 아무 제제도 가하지 않았다고 해요. 너그럽고 열린 사람이었던 모양입니다.


무대의 여자는 두 노인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사과를 베어 먹습니다. 생명의 열매를 먹었으니 여자의 눈은 선과 악을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밝아졌을 겁니다. 그러나 내 눈이 밝아졌다고 해서 내 밖의 세상이 바뀌는 건 아닙니다. 늙은 권력자들은 앵무새처럼 여자의 노래를 반복할 뿐입니다. 여자는 화난 표정으로 점점 더 격렬하게 사과를 깨어뭅니다. 눈은 점점 더 밝아지는데, 그럴수록 세상에 대한 욕지기는 더 강해지고, 마침내 여자(시인)는 절규하죠. 이 모든 일에 싫증나 편안한 죽음을 바라노라.   


배우들의 분장이며 표정, 움직임, 무대 장치와 소품, 조명 등, 극은 강렬하고 음울해서 공격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거부감을 잘 다독거리고 나서 가만히 보면 무척 재밌습니다. 블랙코미디 같아요. 우리가 지금 심각한 얘길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너무 심각해지지는 말라,는 유머가 느껴집니다. 제 억측이지만, 셰익스피어는 이 기괴한 무대를 즐겼을 것 같습니다. 그가 이 시대에 태어났다면 비판적이고 전위적이며 실험적인 작품들을 썼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아름다운 서정시도 같이 쓰면서 말이죠.



https://www.youtube.com/watch?v=N7CmtKwjE5c




* 대문 그림은 엘리자베스 1세의 초상화(니콜라스 힐리어드, 1575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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