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파도가 조약돌 깔린 해변으로 몰아치듯이,
우리의 순간도 종말을 향해 달음질치노니,
앞서 가는 사람과 자리를 바꾸며,
계속 애써서 앞서 가려고 다투노라.
인간이 일단 빛의 바다에 태어나서,
성숙하게 자라면, 번영의 관을 쓰게 되노니,
고약한 일식이 영광을 침식하며,
이제 시간이 자신이 준 선물을 파괴하노라.
시간은 청춘을 빛낸 꽃을 무색하게 하고,
아름다운 이마의 주름살을 파니,
자연의 희귀한 진실을 먹이로 삼노라.
그 시간의 낫이 베어내면 남을 것이 없으니.
그러나 나의 시는 바라건대, 시간의 잔인한 손을
물리치고, 그대의 가치를 찬미하리라.
- 신정옥 옮김
60
파도가 자갈밭 해안 향해 달려가듯
우리의 순간들 끝을 향해 서두른다.
각자는 앞서 간 것과 자리 바꾸며
계속되는 수고 가운데 앞을 다툰다.
한때 빛의 바다 가운데있던 갓난아이는
성인을 향해 기어가고, 성인이 되고 나면
허리 굽은 황혼이 그의 영광과 맞서 싸운다.
시간은 주었던 선물 파괴하고
청춘의 이마에 자리했던 번영 파괴하며
미인의 이마에 평행선들 파놓고
자연의 진귀한 보물들 먹어 치운다.
그이 낫에 베이지 않을 자 없나니.
그러나 나의 시 그대의 미덕 찬영하리
미래의 시간에 맞서, 그 잔인한 손에 맞서.
- 박우수 옮김
60
Like as the waves make towards the pebbled shore,
So do our minutes hasten to their end,
Each changing place with that which goes before,
In sequent toil all forwards do contend.
Nativity, once in the main of light,
Crawls to maturity, wherewith being crowned,
Crooked eclipses 'gainst his glory fight,
And time that gave doth now his gift confound.
Time doth transfix the flourish set on youth,
And delves the parallels in beauty's brow,
Feeds on the rarities of nature's truth,
And nothing stands but for his scythe to mow.
and yet to times in hope my verse shall stands,
Praising thy worth, despite his cruel hand.
셰익스피어는 소네트 여러 곳에서 시간의 잔인함을 읊습니다. 젊음의 아름다움이 빛을 잃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그것을 시에 담아 영원히 살리려 합니다. 시간에 의해 아름다움이 허물어지는 것을 우리 인간은 그저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뿐, 막을 수 없습니다.
박우수 시인이 '허리 굽은 황혼'으로 옮긴 구절은 'crooked clipses'인데요. eclipse의 사전적 의미는 '월식/일식' 그리고 '빛을 잃음' 입니다. 두가지 의미는 황혼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습니다. 번역자는 '허리 굽은 황혼'으로 의미를 살짝 틀었는데, 원문과 별개로, 상당히 인상적인 표현이 됐습니다.
두 번역자 모두 '빛의 바다'로 옮기고 있는 부분도 원문에는 '바다'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습니다. 하지만 파도가 나왔으니 우리는 자연스레 바다를 떠올리게 됩니다.
빛의 한가운데서 탄생한 인간(갓난아기)이 성숙으로 기어간다는 표현도 재미있습니다. 영어는 우리말과 달리 추상명사를 즐겨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갓난아기가 기어서 성인이 된다'라고 표현할 것을 '탄생이 성숙으로 기어간다'고 표현하는 걸 보면요. 아무튼 해맑게 태어난 인간은 원기왕성한 성인으로 자라고 결국 허리 굽은 노인이 됩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이치입니다.
파도가 앞을 다투며 구르는 이 해안은 자갈밭입니다. 자갈과 파도는 서로를 부비고 밀쳐내며 자글거립니다. 마치, 시간의 무상함을 기억하라, 기억하라... 말하듯. 혹은, 자연이 보내는 다른 전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셰익스피어는 단순히 사랑을 얘기하려고 이 시를 쓰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눈앞의 연인을 보며 대자연의 진리를 떠올리고 인간 생의 짧음을 한탄합니다. 그리고 곧 허물어질 아름다움을 시에 담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과연 시인도 그의 연인도 그의 시대도 모두 사라졌으나 시는 살아남아 우리로 하여금 시인의 젊고 아름다운 연인을 상상하게 합니다. 시인의 사랑도 영원히 젊습니다. 그때처럼 지금도 연인들은 여전히 사랑을 하고, 그때처럼 지금도 인간은 예외 없이 노인이 되고, 그때처럼 지금도 파도는 자갈밭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자리를 바꾸며 해안으로 밀려들고 있습니다.
아이비 앤 제이가 셰익스피어의 소네트60을 노래합니다. ‘자갈밭 해안으로 밀려오는 파도’를 후렴구로 반복해서일까요? 노래가 우리 마음의 해변으로 구르고 부서지며 끝도 없이 안기고 또 안기는 것만 같네요.
https://www.youtube.com/watch?v=eemXJ20539s
자갈밭 해안으로 밀려오는 파도처럼
우리의 순간들도 끝을 향해 달리고
앞서거니 뒷서거니 자리를 바꾸며
쉴 새 없이 힘들게 앞을 다투네.
자갈밭 해안으로 밀려오는 파도처럼
앞서거니 뒷서거니 자리를 바꾸네.
자갈밭 해안으로 밀려오는 파도처럼
쉴 새 없이 힘들게 앞을 다투네.
자갈밭 해안으로 밀려오는 파도처럼
앞서거니 뒷서거니 자리를 바꾸네.
자갈밭 해안으로 밀려오는 파도처럼
앞서거니 뒷서거니 자리를 바꾸네.
빛의 중심에서 비롯된 탄생은
성숙으로 기어가 대관식을 치르지만
고약한 일식들이 영광의 빛 흐리고
시간은 자신이 준 선물을 망가뜨리네.
자갈밭 해안으로 밀려오는 파도처럼
앞서거니 뒷서거니 자리를 바꾸네.
시간은 청춘의 팡파르를 멈춰세우고
아름다움의 이마에 가로줄을 파며
자연의 진실 담은 드문 존재들을 먹어치우니
누구도 그의 낫에 베이지 않을 수 없네.
하지만 바라건데 나의 시는 잔인한 시간의
손에 맞서서 그대의 가치를 찬미하려네.
자갈밭 해안으로 밀려오는 파도처럼
앞서거니 뒷서거니 자리를 바꾸네.
* 대문 그림은 클로드 모네의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