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리,
샐리는 오늘 어떤 길을 걸었어? 아침에 일어나 바쁘게 밥을 먹고 집을 나와 앞만 보고 학교까지 갔을까, 아니면 휴일이어서 늦잠을 자고 뒹굴 뒹굴 행복하고 느긋한 시간을 보내느라 집밖으로 나와 길을 걸을 일이 없었을까. 여름 햇빛이 내리쬐는 메마른 시멘트 길, 뜨거운 열기가 몸을 태울 듯 올라오는 길을 걷진 않았니? 어쩌면 잡풀이 드문드문 난 그늘진 흙길에서 앞서 걸은 누군가의 발자국이 희미하게 찍힌 걸 봤을지도 모르겠다.
도시의 길은 대체로 삭막해. 아름답지 않아. 시커먼 아스팔트, 깨진 보도블록, 먼지 쌓인 지하도 계단. 학교 운동장은 흙먼지가 풀풀 날려. 나는 생각에 빠져서 아무것도 보지 않고 길을 걷기도 하지만 어떨 땐 지나가는 사람들과 차들, 건물, 간판과 가로수 같은 걸 유심히 보기도 해. (맨홀 뚜껑을 관찰하는 건 특히 재밌지.)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 밤에 집으로 가는데 길이 반짝반짝 빛나는 거야. 마치 밤하늘의 작은 별들을 바닥에 흩뿌려놓은 것 같았어. 길을 포장한 재료 중에 반짝이는 게 있어서 그게 가로등 불빛에 반사됐던 거겠지. 그건 그저 평범한 인도였을 뿐인데, 그날, 그 밤, 그 길에선 별이 빛났어. 그리고 나는 별이 빛나는 길을 걸었지.
이 그림책의 작가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나 봐. 항상 바쁘게 지나다니던 삭막한 길을 어느 날 문득 천천히 걸어보고 싶더래. 그렇게 걷다 보니 길바닥에서 사슴을 보이더라네. "아! 사슴이다." 그건 그저 깨진 보도블록이었을 뿐인데 그 모양이 꼭 사슴 같더래. 그다음에는 길 위에 드리워진 나무 그늘이 눈에 들어왔고, 배며 토마토 같은 과일을 담은 바구니들이 나무 그늘 속에 숨어있더란 말이지.
그때부터 작가는 길에서 많은 걸 발견해 낼 수 있었어. 걸음을 늦추고 유심히 주변을 관찰하면서 말이야. 어느 길에선 여우와 쥐가 마주 보고 있고, 어느 모퉁이에선 거인이 꽃에 물을 주기도 했어. 외계인이 뚜뚜뚜 신호를 보내고, 나눠 먹고 싶은 커다란 핫도그도 봤지. 어느 날은 비가 내렸어. 톡, 톡, 톡, 바닥에 빗방울 점이 찍히고, 악어가 슬금슬금 나오기 시작해. 벚꽃 잎이 모여 만든 꽃 악어가 말이야. 사슴 친구들은 굴속으로 들어가 비를 피하고 있어. 비가 그치자 요술사 아줌마가 나타났네!
작가가 본 건 모두 상상이 빚어낸 착시였을까? 내가 본 밤길의 별들도 순간의 착각이었겠지? 하지만 꼭 그렇게만 말해야 할까 의문이 들어. 평범한 길에서, 때로는 지치고 우울하고 지루한 길에서, 우리 눈은 아름다운 걸 찾으려 하는 것 같아. 그리고 불현듯 발견하는 꽃 악어는 아무나 볼 수 없지. 그건 느닷없는 선물 같은 거야. 아름다움을 찾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깜짝 선물.
그 선물은 내 눈이, 내 마음이 나에게 주는 걸 거야. 어느 날 갑자기 말이야. 길가에 핀 보잘것없는 작은 꽃이 마치 확대경을 들이댄 것처럼 문득 크게 보이는 순간이 바로 그때가 아닐까? 길고양이가 야옹 하고 너에게 다가오는 순간, 바람이 네 머리칼을 흩트리는 순간, 왠지 하늘을 올려다보고 싶은 순간, 맨홀 뚜껑에 새겨진 산과 강과 해가 유난히 예뻐 보이는 순간이 바로 그 '어느 날'이 아닐까?
그럴 때면 잠시 혼자만의 생각을 멈추고, 길에 머무르는 온갖 생명과 물체가 바닥에 펼쳐놓는 장면들에 가만히 눈길을 줘보자. 혹시 무슨 이야기가 들릴지도 몰라. 잠시만, 아주 잠시만 우리의 시간을 길에 나눠줘 보자. 그리고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기다려보는 거지. 상상인지 착각인지 따지지 말고, 만약, 혹시나, 운 좋게, 우리에게 작고 사소한 행복이 선물처럼 내리면 감사히 두 손으로 받자꾸나.
* 인용한 그림은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자료입니다.
* 이윤희 작가가 그림책의 장면 장면을 설명해 줍니다.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며 그림책을 감상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