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리,
오시다 히로시의 <첫 번째 질문>이란 시는 제목처럼 질문들로만 이루어져 있어. 수채화로 아름답게 시를 그려낸 이 그림책을 펼치고 너에게 시인의 질문을 한다.
오늘 하늘을 보았나요?
네
하늘은 멀었나요, 가까웠나요?
멀었어요.
구름은 어떤 모양이던가요?
몽글몽글했어요.
바람은 어떤 냄새였나요?
몰라요.
좋은 하루란 어떤 하루인가요?
모르겠어요.
오늘 "고마워!"라고 말한 적이 있나요?
아니요.
창문 너머, 길 저편에 무엇이 보이나요?
차, 도로...
빗방울을 가득 머금은 거미줄을 본 적이 있나요?
아니요.
떡갈나무 아래나 느티나무 아래서 문득 걸음을 멈춘 적이 있나요?
아니요.
길가에 선 나무의 이름을 아세요?
모르겠어요.
나무를 친구라고 생각한 적이 있나요?
아니요.
마지막으로 강을 본 것은 언제인가요?
없어요.
모래밭에, 풀밭에 앉아 본 것은 언제인가요?
없어요.
"아름다워!"라고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모르겠어요.
좋아하는 꽃 일곱 가지를 꼽을 수 있나요?
(넌 일곱 가지를 막힘없이 얘기했는데 내가 잊었어. 하나는 기억나는데 그건 바로 '방울꽃'. 이 예쁜 꽃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을까, 궁금하면서도 반가웠어. 그리고 그림책 <미스 럼피우스>에 나오는 꽃, 루핀을 우리 같이 기억했지.)
나에게 '우리'는 누구인가요?
모르겠어요.
동이 트기 전, 새소리를 들은 적이 있나요?
아니요.
천천히 저물어 가는 서쪽 하늘에 기도한 적이 있나요?
아니요.
몇 살 때의 자신을 좋아하나요?
모르겠어요.
잘 나이 들어갈 수 있을까요?
모르겠어요.
세상이라는 말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풍경은 어떤 건가요?
몰라요.
지금 있는 곳에서 귀를 기울여 보세요.
무슨 소리가 들리나요?
아무 소리도 안 들려요.
침묵에서는 어떤 소리가 나나요?
아무 소리도 안 들려요.
가만히 눈을 감아 보세요.
무엇이 보이나요?
아무것도 안 보여요.
질문과 대답,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어느 쪽인가요?
모르겠어요.
이것만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이 있나요?
없어요.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빵 만드는 사람이요.
인생의 재료는 무엇일까요?
돈, 취직...
나에게 그리고 내가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모르겠어요.
세상은 말을 가볍게 여기지요.
당신은 말을 믿나요?
믿기도 하고 안 믿기도 해요.
샐리, 난 네가 이 질문들을 가끔씩 혼자 해보면 어떨까 싶어. 나 자신도 그래보면 좋을 것 같단 생각이 드는 건, 이 질문들이 바깥으로만 향한 마음을 나에게 데려다주는 것 같아서야. 또 나 자신에게만 갇혀있는 마음을 열어서 다른 사람들과 자연과 세상으로 내보내는 것 같기도 해.
가령 통이 트기 전 새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단 걸 깨닫게 되면 새벽에 새소리를 유심히 들어볼 마음을 내볼 수 있겠지. 해가 질 때 서쪽 하늘을 바라보며 기도하고 싶단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거야. 내가 간절히 바라는 게 뭘까를 곰곰 생각하면서 말이야. '우리'를 생각해 본 적 없다면 내 곁의 사람들에게 새롭게 관심을 가져볼 수도 있겠지.
조용하고 차분하고 또 다정하게, 나 자신과 내 주변의 사람들과 세상을 돌아보게 만드는 이 질문들. 시인은 그것을 '첫' 질문들이라고 했어. 아무도 밟지 않은 첫 눈밭에 발자국을 찍는 것처럼, 자신에게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첫 질문들이 '나'라는 하얀 눈밭에 깨끗한 발자국을 하나씩 찍어. 나와 세상으로 들어가면서 또 나아가는 발자국들을.
넌 많은 걸 모른다고 했어. 하지만 빠르고 확실하고 대답한 게 두 개 있었지. 꽃 이름과 네가 가장 하고 싶은 일. 그 두 가지는 네가 가장 마음을 많이 기울이고 있다는 뜻이겠지? 그걸 알게 돼서 나는 기뻤어. 꼭 빵 만드는 사람이 되렴. 인생의 재료가 돈과 취직이라고 대답하는 자신에게는 걱정하지 말라고 해. 넌 그냥 지금 하루만 성실하게 살아가면 돼. 걱정 대신 지금 할 일만 하렴. 걱정은 사람을 너무 무겁게 만들어. 짐을 내려놓고 가볍게 걸어가.
질문과 대답,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어느 쪽인가요? 시인은 물었어. 난 네가 너무 대답을 찾아 헤매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만, 너 자신에게 많은 질문을 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해. 질문한다는 건 의심한다 말이 아니야. 질문은 다만 질문일 뿐, 의심하는 게 아냐. 그냥 묻는 거야. 호기심을 갖고 그냥 묻는 거지. 질문을 많이 하다 보면 가끔은 좋은 질문을 찾아낼 수 있어. 시인이 한 이 질문들처럼.
좋은 질문이란, 내 마음을 조용히 내 안으로 데려오지. 마음은 너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되어줄 거야. 좋은 친구의 기준이 뭔지 알아? '나쁜 기분'을 만들지 않는 사람, 너 자신을 의심하게 만들지 않는 사람, 네 마음을 짓밟지 않는 사람. 명심하렴, 마음은 좋은 친구란 걸!
또 좋은 질문이란, 나를 내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하늘과 우리와 길 저편을 보게 하고 침묵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하고 바람의 냄새를 맡게 하고 또 문득 떡갈나무 아래에 걸음을 멈추고 풀밭에 앉아보게도 하지. 그리고 생각하게 해. 좋은 하루란 뭘까, 내가 오늘 만난 고맙고 아름다운 건 뭐였을까를. 좋은 질문은 모든 선량한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이끌어.
샐리, 난 네가 옳은 대답을 찾아서 초조하게 헤매지 말기를 바란다. 너무 많은 대답 속에서 가장 맞는 대답을 고르려고 괴로워하지 말았으면 해. 답답할 땐 이 시 <첫 번째 질문>으로 돌아오렴. 아무도 밟지 않은 첫 눈밭으로. '몰라요'의 눈밭으로. 거기에 찍힌 너의 첫 발자국들로. 너의 열여섯 살 여름, 솔직했던 너의 첫 대답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