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텃밭으로 돌아왔습니다. 저 건너 부지런한 농부 부부가 밭을 일구는 모습이 여간 다정해 보이지 않습니다. 오전 내내 일을 하더니 파라솔 아래서 점심을 먹어요. 무슨 얘길 나눌지 참 궁금합니다. 그 밭에서 우리 집도 보일 텐데, 남편이랑 제가 말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도 모르고 "아, 참, 저 부부는 다정도 하지." 뭐,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요? 모쪼록 풍경은 멀리 두고 보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아무튼 텃밭 2년 차가 한 해 건너뛰고 올해 세 번째 텃밭 농사를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주제는 '되는 대로 심는다!'
거의 3년이 묵은 씨앗들을 대충 되는대로 뿌렸더니 싹이 하루이틀 만에 났어요. 종이 팻말에 이름을 써서 꽂았는데 그날 밤 비가 내려서 다 씻겨버렸네요. 그래서 저 싹이 무슨 식물인지는 몰라요.
내 집도 아니고 2년 빌려서 사는 집 마당에는 풀만 심어야겠지요?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그런데 저의 로망 때문에 나무를 한 그루 샀네요. 살구나무 1년 생입니다. 아직 어려서 성공적으로 활착이 될지는 잘 모르겠어요. 가게 여주인 말씀이, 비료는 절대(!) 주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죽는대요. 일찍 영양분을 주면 뿌리가 뻗질 못한다고 해요. 왼쪽을 잘 보시면, 접목한 데가 있습니다. "흙에 깊이 묻을까요?" 묻는 말에 여주인께서 화들짝 놀라세요. (뭘, 그렇게까지 놀라시는지...) 접목한 부분을 흙으로 덮어선 안 됩니다. 거긴 나무에게 상처니까요. 열매는 3년이 넘어야 열린다고 하셔서 "꽃은 피지요?" 하고 묻자 내년에 필 거래요. 살구꽃이 너무 예쁘다고 서로 맞장구를 쳤습니다. 가게 앞에 내놓은 연분홍색 복숭아꽃도 얼마나 매혹적인지 내 집이라면 당장 복숭아나무도 한 그루 사고 사과나무도 두 그루 사고 배나무도 세 그루 사고, 마당을 꽃나무들로 꽉 채울 텐데. 저 살구나무가 무사히 자라서 꽃을 보게 되면 정말 좋겠습니다.
여전히 예쁜 씨앗. 고수입니다. 3년쯤 돼서 색이 좀 어두워졌네요.
새들이랑 친해져 보려고 상을 차렸습니다. 좁쌀과 귀리, 해바라기 씨앗이에요. 해바라기 씨앗을 며칠 내놓았는데 지붕 위의 참새가 내려다만 보고 먹질 않아서 결국 버렸습니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우연히, 야생동물 연구하시는 분 옆자리에 앉게 되는 일이 생겼어요. 그런데 그분도 새 모이를 주신다지 뭡니까! (속으로는 좋아 죽겠는데 티를 안 내려고 무척 노력했습니다.) 해바라기씨 얘길 하면서 선생님께선 뭘 주시냐니까, 좁쌀, 기장, 수수 같은 좀 작은 곡물을 주신대요. 봄이면 새들이 번식을 하느라 바쁜데 엄마 아빠 새들이 아기 새들한테 먹이를 주고 자기들은 거의 굶기 때문에 먹이를 주라세요. 이렇게 새를 좋아하시는 분 옆에 앉아서 거저로 새 사랑 얘기를 듣다니 복이 덩굴째 굴러들어 온 기분입니다.
텃밭에는 아무거나 심을 예정입니다. 혹시 글을 보시고 원격조종으로 손에 흙 한 톨 안 묻히고 식물을 키워보시고 싶으신 분들, 적극 환영합니다! 제가 대신 심어드릴게요. 쑥쑥 클지, 폭망 할지. 아무거나 되는대로 심는다, 텃밭에서는 어떤 일도 벌어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