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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프링버드 Feb 04. 2021

올라가다 보면, 흘러가다 보면

<3초 다이빙>과 <곰이 강을 따라갔을 때>

도서관에서 책을 한 가방 빌려와 차근차근 읽다 보면 미처 생각지 못했는데 서로 통하는 이야기를 찾을 때가 있다. 이제 소개하려는 두 그림책은 언뜻 보기에 별로 공통점이 없다. 그림체가 확연히 다르고, 등장인물도 배경도 이야기의 전개도 전혀 다르다.






<3초 다이빙>에는 행복한 표정의 남자아이가 등장한다. 기분 좋게 물로 떨어지는 이 아이. 그런데 표지를 넘기면 자신 없는 말부터 나온다: 나는 잘하는 게 없는 것 같아.


이런이런. 달리기도 1등을 해본 적이 없고, 다들 말하길 느리다고 하고, 수학도 못하고, 응원하는 팀은 진단다. 태권도 사범님은 돌려차기 한 방으로 이기라는데... 그런데 다음 대목이 반전이다!: 하지만 난 이기고 싶지 않아. 왜냐하면 누군가는 꼭 져야 하니까.


그래서 이 아이는 왔다, 다이빙을 하러. 아이는 계단을 오르고 올라서 드디어 높은 다이빙대에 선다. 그리고 아래로 몸을 날린다. 떨어지면서 아이는 무슨 생각을 까?





<곰이 강을 따라갔을 때>는 이미 제목에서부터 짐작이 간다. 흠, 곰이 나오겠고, 얘가 강을 따라가겠고, 등등. 이 곰이 사는 곳에는 강이 흐른다. 강은 밤에도 낮에도 흘렀는데 어디로 흘러가는지 몰랐다. 어느 날 문득 곰은 강을 따라가 봤다: 그저 궁금해서 말이야. 

그때부터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벌어진다. 이를테면 이렇게!


곰은 물에 빠질 걸 몰랐고,

곰 머리에 뛰어오른 외로운 개구리는 친구가 무척 많다는 걸 몰랐고,

위험을 알리려던 거북이들은 통나무배 타기가 얼마나 재미있는지를 몰랐고...

그러다가 막판에는 강줄기가 뚝 끊기며 아래로 떨어진다. 폭포다!




두 이야기 모두 기승전결이라는 전형적 구조를 갖췄다. 이야기가 점점 쌓여서 절정에 이른 뒤에 확 풀다. 그리고 둘 다 이 기승전결의 구조를 물리적 형태로, 다시 말해서 '올라가고 흘러가다 떨어지는' 모습으로 보여다. 묘미다.


그런데 진짜 묘미는 이야기 속(!)에 있는 것 같다. <3초 다이빙>에서, 지는 사람이 나와서 이기는 게 싫다는 이 아이는 말한다: 하나, 둘, 셋, 우리 모두 3초면 푸웅덩~ 같이 웃을 수 있는 걸.


<곰이 강을 따라갔을 때>의 곰과 동물들은 폭포 아래 떨어진 뒤에 첨벙첨벙 신나게 논다: 그동안 여러 친구들은 저마다 따로따로 살아왔어. 여기 이렇게 함께 있게 될 줄 몰랐단다. 강을 따라 흘러가 보기 전까진 말이야.


두 그림책은 낙하를 통해서 길이 숨기고 있는 새로운 풍경을 얘기한다. 길은 휘어지고 꺾이며 그다음을 보여주지 않지만, 결국 끝에 이르러서 떨어져 보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우리는 길에 있다. 혹은 강가에. 우리는 가끔씩 멈춰 서기도 하고 오래 주저앉아 있기도 한다. 혹은 아예 나서지 않기도 하고. 어쨌거나 우리 뒤로도 앞으로도 길은 뻗어있고 강은 흐르고 있다. 길과 강은 순전히 비유다. 구체적인 물과 길의 진로가 아니라,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오고 앞으로도 살아갈 시간이자 그 속에서 펼쳐질 어떤 삶에 대한 비유.


지나간 것들은 쇳덩이 같은 손아귀로 내 발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고, 앞으로 올 것들은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몰"라서 모호하고 두렵다. 그래도 <3초 다이빙>의 꼬마는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간다. 내가 그렇지, 느리고, 운도 없고,라고 생각하면서도. <곰이 강을 따라갔을 때>의 곰은 호기심에서-자신의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강에 살짝 발을 담가봤다가 예상치 못하게 빠지자 그냥 그대로 몸을 맡긴다. 닥치면 닥치는 대로.


라가다 보면, 흘러가다 보면, 끝에 이르고 끝은 우리에게 새로운 시야를 선사한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훨씬 자유로운 시야를.




... 열심히 살려고 애쓰는 젊은이들이 유난히 생각나는 아침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pNirSs2N0h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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