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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프링버드 Feb 03. 2021

정신은 언어의 집에 깃든다

<세쿼이아> 프레데릭 마레 글 / 그림


지금껏 세쿼이아는 나무 이름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그 나무 이름이 실은 체로키 인디언들의 영웅 세쿼이아를 기리기 위한 것이었다. 다른 문화에 이렇게 무지하다... 특히 소수민족의 문화에...


세쿼이아는 체로키 인디언의 문자 체계를 만든 사람이다. 그는 백인과 교류하는 과정에서 문자에 대한 필요성을 느꼈다. 훌륭한 사냥꾼이었던 그에게 백인이 찾아와 짐승 가죽을 사겠다고 하며 계약서를 작성했는데 글을 몰라서 이름을 적지 못했던 것이다. 세쿼이아는 이 일로 글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길을 떠났다. 그러다 버려진 어떤 도시에서 우연히 인쇄소를 발견했고 그곳에서 활자들을 보게 됐다. 그는 이것들을 고향으로 가져와 12년간 연구를 했고 마침내 85개 자모를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그림책에 따르면, 그는 어렸을 때부터 다리를 절어서 세쿼이아, 체로키 말로 '돼지 발'이라는 별명으로 놀림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니 나무 세쿼이아는 돼지 발 나무인 셈이다.) 그림책의 전반부 내용도 그렇고 출판사의 홍보 글도 그렇고 이 책은 세쿼이아의 성장담 또는 위인전의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한 민족 또는 한 문화에서 차지하는 언어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만든 책이었다.  


우리에게 우리 고유의 언어/말을 빼면 어떻게 될까? 뱃속에서부터 들었던 어머니의 말소리, 공기만큼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그 소리에는 의미와 감정과 사고와 추억이 담겨있어서 말이 사라지면 우리의 정신도 흔들리지 않을까? 물론 우리는 한국어 화자에서 영어 화자가 될 수도 있고, 한국어에서 영어로 우리의 문화는 번역될 수 있지만, 한국어 화자인 우리와 영어 화자인 우리가 과연 동일한 정신세계를 살고 있을지는 의문이고 한국 문화가 온전히 영어로 전사될 수 있을지도 역시 의문이다. 번역은 번역일 뿐, 절대 옮겨질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 언어만이 갖는 고유한 소리의 질감과 운율은 어쩔 것이며, 단어와 단어 사이의 호흡은 어떻게 옮길 것인가? 이를테면, 할머니가 제주도 방언으로 들려주시는 옛이야기를 딸이 영어로 들려줄 때 그것은 더는 동일한 옛이야기가 되지 못할 것 같다. 단어가 갖는 미묘한 의미장은 다른 언어의 의미장과 일치하지 않는다. 언어마다 화자들은 다른 방식으로 다르게 사고하기 때문이다. 에스키모인들은 눈을 우리보다 훨씬 세분해서 이름을 붙였으며, 무지개의 색도 모든 문화에서 일곱 가지로 통용되지는 않는다.  


언어는 마치 피와 살처럼 우리를 이룬다. 하지만 언어 혹은 말은 눈에 보이지 않아서 우리는 종종 언어를 홀대한다. 번역을 하다 보면 automatically를 생각 없이 '자동적으로'라고 옮길 때가 있다. 그야말로 '자동적'으로 말이다. 하지만 문맥에 따라 이 단어는 '알아서', '척척', '저절로' 등으로도 옮길 수 있다. 우리말의 풍부한 말맛은 한번 잃으면 영영 잃는다. 


<세쿼이아>를 읽으며 체로키 인디언들이 문자로 그들의 말을 붙잡아놓을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체로키 언어는 결국 사라질 것만 같다. 그 말을 하는 화자가 없으면 언어는 멸종하니까. 미국의 폭력적 역사 속에서 인디언들의 문화가 사라졌듯이, 영어라는 문화 강대국의 언어 속에서 인디언들의 말도 사라질 것 같은 안타까움은 근거가 없지 않다. 


그림책으로나마 인디언의 문화와 언어를 기록해두는 것은 그래서 더 귀하게 느껴진다. 그림책의 아름다운 그림이 어쩐지 무척 외롭고 슬프게 보이는 것은 내 마음이 그렇게 보기 때문일까?


   



* 마침 <세쿼이아>를 찾아볼 즈음에 제레미 더쳐(Jeremy Dutcher)라는 특별한 가수를 알게 되었다. 캐나다인이고 인디언계 테너이자 작곡가, 음악학자, 연주자, 활동가이다. 그는 월라스토키이크(제대로 읽었는지 의문이다. Wolastoqiyik) 인디언의 노래와 이야기를 수집하고 이들의 언어로 노래를 부른다. 2016년 통계에 따르면, 월라스토키이크 인디언은 총 7,635명이 현존하는데 자신들의 언어를 말할 줄 아는 사람은 백 명이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제가 이 작업을 하는 이유는 월라스토키이크 화자가 백 명 남짓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 언어를 사용하고 그래서 다음 세대에 이것을 전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의 언어를 잃는다면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들만의 (월라스토키이크 인디언 고유의) 관점과 경험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DevWnHTNCw

Jeremy Dutcher, 'Pomok naka Poktoinskwes'


https://www.youtube.com/watch?v=7wtB-XN3pqI

Jeremy Dutcher, 'Honour Song'


https://www.youtube.com/watch?v=6pDRpDjrBZE

Jeremy Dutcher. 'Mehcin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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