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프링버드 Jan 29. 2021

세상의 모든 서툰 아버지들에게

<까치밥나무 열매가 익을 때>, 요안나 콘세이요 글/그림



표지가 시선을 붙든다. 눈을 떼기 힘들다. 섬세한 필선, 푸른빛, 평화로운 표정. 행복한 미소. 고양이조차 가만히 눈을 감고 있다.  


크지 않은 책이다. 폭은 한뻠, 길이는 한 뼘 반쯤. 자그마한 이 책에 무엇을 담았을까. 열어보니, 음,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무슨 얘기인지 잘 모르겠다.  거의가 부드러운 연필화이고 가끔 색연필로 그린 그림도 있다. 어떤 그림은 얇은 습자지에 그려 테이프로 붙인 모습이다. 그림에는 역시 연필로 짧은 글을 적어놓았다.


앙리가 즐겨 산책하는 장소들

언덕과 들판

여름의 끝


앙리라는 이름의 남자가 주인공인 모양이다. 앙리는 혼자 살고 '시간이 많은' 사람이다. 아침을 먹고 들판으로 나가 날이 저물 때까지 천천히 거닌다. 드문 드문 기억을 떠올린다.


그림의 시점은 앙리를 바라보는 누군가의 시선이다. 그이는 앙리를 바라보기도 하고 앙리의 시선을 좇기도 한다. 때로는 과거로, 때로는 현재로. 풍경과 식물과 사진과 구름으로.


세심하게 그림들을 들여다보면서 글을 계속 읽어나가 보는데,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건지 아직도 아리송하다. 틀림없이 앙리의 얘기인 것 같기는 한데. 그리고 마지막 장에 이르렀을 때:


나의 아버지에게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딸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잘 몰랐던

모든 아버지에게


아, 그렇구나. 비로소 알 것 같았다. 이 책은 독자를 위한 책이 아니었다. 일종의 독백이었다. 굳이 설명하려 하지 않은 기억의 단편들이었다. 딸과 아버지만 아는.  


이 그림책은 어린이를 위해 만든 책도, 어른이 보라고 만든 책도 아니다. 이 그림책은 오롯이 작가가 아버지께 바치는 책이다. 아마도 이미 이 세상을 떠났을 아버지께 바치는 사랑의 헌사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세상의 모든 딸들에게 특별한 존재인 것 같다. 세상에 나와 가장 처음 만나는 남성 어른. 굳이 프로이트의 이론이 아니어도 딸들은 아버지와의 관계를 기준으로 세상의 관계들을 정의한다. 한때 곰곰이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나쁜 아버지를 둔 딸이 불행할까, 아니면 아버지가 없는 딸이 불행할까. 알 수는 없지만, 굳이 알고 싶지도 않았다. 이것은 가치 없는 질문이다. 우리의 부모님도 우리 자신과 마찬가지로 인생을 처음 살아보기에 누구나 서툴렀고, 우리는 다만 이해하려고 애쓸 뿐이다.


그림책 표지를 젖히면 나오는 여러 장의 그림 중에서 아버지와 딸인 듯 보이는 그림이 있다. 거기에 작가는 아버지의 얼굴을 그리지 않았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참 멀었나 보다 짐작한다. 하지만 표지에서, 그리고 본문 속에서 그 딸은 아버지에게 평화와 안식을 선물하고 있다. 정성껏, 연민에서 우러나는 따뜻한 애정을 담아.






* 작가는 아빠가 아니라 '아버지에게'라고 적었다. (프랑스어로 père) 아버지라는 그 말이 촛불처럼, 향처럼, 마음을 경건하게 만든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떤 기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