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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프링버드 Jan 27. 2021

어떤 기도

<비에도 지지 않고>, 미야자와 겐지 시 / 야마무라 코지 그림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에도

여름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으로 욕심은 없이

결코 화내지 않으며 늘 조용히 웃고

하루에 현미 네 홉과

된장과 채소를 조금 먹고

모든 일에 자기 잇속을 따지지 않고

잘 보고 듣고 알고 그래서 잊지 않고

들판 소나무 숲 그늘 아래 작은 초가집에 살고

동쪽에 아픈 아이 있으면

가서 돌보아 주고

서쪽에 지친 어머니 있으면

가서 볏단 지어 날라 주고

남쪽에 죽어가는 사람 있으면

가서 두려워하지 말라 말하고

북쪽에 싸움이나 소송이 있으면

별거 아니니까 그만두라 말하고

가뭄 들면 눈물 흘리고

냉해 든 여름이면 허둥대며 걷고

모두에게 멍청이라고 불리는

칭찬도 받지 않고 미움도 받지 않는

그러한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



유명한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의 원작자 미야자와 겐지의 시가 그림책이 되었다. 역시 일본 작가인 야마무라 코지가 그림을 그렸다. (현재 이 시로 만든 그림책이 2권 더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코지의 서정적인 그림이 겐지의 시가 갖고 있는 애잔하고 맑은 느낌과 참 어울리는 것 같다.) 


미야자와 겐지는 1896년에 태어나 1933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좀 옛날 사람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역사적으로 상당히 민감한 시기를 살았던 일본인이기도 하다. 그는 농업학교에서 공부했고 농업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쳤으며 농부들에게 농사를 지도했다는데, 이런 배경은 1900년대 초반 우리나라에서 활발하게 일어났던 농촌 계몽운동을 연상시킨다. 여러모로 우리와 멀어질 수 있는 요소가 다분히 있는 작가다. 하지만 작가는 작품으로 이야기한다. 문학은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뛰어넘으며, 역사책에 나오지 않는 무수한 사람들의 존재를 환기시킨다. 미야자와 겐지가 남긴 글도 그런 것 같다. 


미야자와 겐지의 시가 큰 울림을 주는 까닭은 진짜로(!) 그런 삶을 살았던 어떤 이를 보고 쓴 시라는 것, 다시 말해서 실제로 그런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다. 겐지와 가까운 곳에 살았던 사이토 소지로라는 기독교인이 모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겐지의 삶을 보면 그 자신이 실은 이 시의 모델이었다고 해도 틀리지 않지 싶다. 겐지는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기 전 수첩에 이 시를 적었고, 시는 그의 사후에 발표되었다.  


시는 한 줄 한 줄 이어지며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는다. 음, 이런 사람이 있구나, 몸도 튼튼하고 소박하고 선량한 사람이. 그런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있구나, 생각하며 우리는 시를 읽어나간다. 우리말 번역을 보면 주어가 내내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짐작할 수밖에 없다. 일본어 원문 시에서도 그럴지 참 궁금하다. (이 그림책 뒤에 실린 영어 번역시에서는 여덟째 줄에서 주어 'I'가 등장한다.) 그러다가 맨 마지막 줄에서 '그러한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고 마침내 고백하는데, 그렇게 해서 시는 폭발하듯 절정에 도달한다. 


이 고백을 맨 마지막 줄에서야 비로소 조심스럽게 내놓는 까닭은, 돌아보아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극도의 자기 겸손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의 고백은 마치 폭죽처럼 터진다. 감추고 감추는 소박한 마음이 오히려 화려한 폭죽처럼 어두운 세계 구석구석을 환하게 밝히는 것 같다.


모두에게 멍청이라고 불리는 / 칭찬도 받지 않고 미움도 받지 않는/ 그러한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


미야자와 겐지는 톨스토이를 흠모했다고 하고 농촌에서 학생들과 농부들을 지도하면서 일생을 소박하게 살았다고 하니 그의 철학이 무엇이었는지 충분히 짐작된다. 자신의 철학대로 살려고 노력했던 사람이라는 것도. 하지만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은 사상이 아니다. 머리로 사는 일은 절대. 미야자와 겐지의 시와 겐지라는 사람에게 감동되는 까닭은 다른 데 있는 것 같다. 


미야자와 겐지의 시를 읽으며 엉뚱하게도 나는 고흐를 떠올렸다. 겐지와 사상적으로 닮았다기보다는 영혼이 닮았다는 느낌 때문에. 어떻게 보면 두 사람은 마치 쌍둥이 영혼 같다.  


내가 동봉한 자화상을 보면 너도 알 거야. 난 파리, 런던을 비롯해 수많은 도시를 보았고 여러 해 동안 그런 여행을 했지만, 그런데도 내 모습은 어쩐지 톤이나 피트 프린스 같은 쥔더르트 태생의 농부를 닮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실제로 난 이따금 그렇게 느끼고 생각한단다. 농부들만이 세상에 보다 도움이 되는 사람들이라고. 사람들은 모든 것을 가졌을 때에만 그림이나 책 따위에 대한 욕구를 느끼게 되는 거야. 그렇다면 난 농부들보다 못한 존재임이 분명해지지. 그렇긴 해도, 농부들이 밭을 갈듯 나 역시 캔버스를 일구고 있어. 지금은 이곳 환자들 가운데 한 명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지. 이상한 일이지만, 그들과 함께 어느 정도 시간을 보내고 익숙해지면 그들을 더 이상 미친 사람들이라 생각할 수 없게 된단다. 

- 1889년 10월 20-22일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Vincent van Gogh>, 빈센트 반 고흐의 편지들, 이창실 옮김, 생각의 나무


겐지는 톨스토이를 몰랐더라도 그렇게 살았을 사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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