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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제힘 May 08. 2019

내가 방탄소년단을 좋아하는 이유

영어라는 거대한 문화 자본에 대항하는 문화 콘텐츠의 힘

빌보드 뮤직 어워드 톱 듀오 그룹상, 톱 소셜 아티스트상, 그래미 어워즈 참석, BTS신드롬......

최근의 방탄소년단을 설명하는 수식어다. 2013년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한국의 한 작은 기획사의 아이돌은 이제 세계가 주목하고, 유수의 아티스트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아티스트"가 되었다.

출처 : 구글 이미지

방탄소년단이 어떻게 인기를 얻게 되었는지에 대한 기사나 자료는 이미 많다. 그래서 나는 나는 방탄소년단을 왜 좋아하는지를, 물론 외모나 노래 실력, 디지털 마케팅 능력 등을 언급하며 얘기할 수 있겠지만 조금 개인적인 측면으로 얘기를 하려 한다. 


지난 주 쯤이었을까, 학교 기숙사 식당에서 메뉴를 고르던 나에게 어떤 외국이 다가와서 이렇게 도움을 요청했다. 

May I ask you a qusetion?


기숙사에 워난 외국인이 많은지라 각각의 메뉴에 대해서 설명해 주고, 주문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까지 했다.


주문을 마치고 난 뒤, 찝찝한 기분을 떨쳐낼 수 없었다. 왜냐하면 아주 비슷했지만 조금은 다른 나의 경험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가 유럽에 갔을 때, 나는 한국어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모든 한국 사람들이 외국에 나가서 그렇듯이, "Excuse me" 라는 말로 시작했다. 만약 내가 파리의 한 가게에서 "저기요?" 라고 얘기했다면 어떤 반응이었을까?


우리나라는 '영어공화국'이다. 우리는 영어 유치원 부터 시작해서 입시를 할 때까지 20년간 영어를 배우고, 대학교에 와서도 영어 강의를 들으며 취업 준비도 영어 자격증을 획득하려고 수 많은 시간을 강남 학원가에서 보낸다.


그래서 그런지, 영어를 못하는 것은 곧 '부끄러운 일'이 되었다. 미국인은 당연하게도 한국의 스타벅스에 가서 영어로 주문을 하고, 만약 점원이 영어를 하지 못한다면 모든 직원이 총동원되어 그들의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려 한다. 

술게임에서 훈민정음 하면 맨날 술 먹는 사람을 위한 우리말 익히기 ㅋㅋㅋ

내가 겪은 사례도 이와 비슷하다. 심지어 그는 우리나라의 문화, 언어를 배우려고 '유학'까지 온 사람인데, 당연히 내가 영어를 잘할 것이라는 판단을 했고, 그렇기에 영어로 질문을 하는 것을 너무나도 당연히 생각한 것이다. 


물론 요즘 같은 글로벌화 시대에 영어는 필수이다. 선진 지식을 습득하려면 영어를 잘해야 하고, 컴퓨터 언어, 전공 서적, 심지어는 커피 전문점의 메뉴도 영어를 알아야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우리나라가 너무나도 영어를 중시해서 영어라는 '문화자본'에 사회 전체가 잠식되어 있지는 않은지에 대한 고민을 자주 하곤 한다.  마케터들은 온갖 어려운 영어 용어를 쓰면서 의사소통하고, 가수들은 괜히 영어 가사를 넣어 노래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 라는 고민 말이다. 그리고 그 문화자본을 한국에 온 외국인 조차도 기득권으로서 너무나도 당연히 누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고민.

미국 아미(방탄소년단의 팬클럽)의 떼창

그래서 나는 방탄소년단을 좋아한다. 물론 그들의 가사에 영어가 들어가지만, 어떤 의미일지 알지도 못할 한국 가사가 담긴 노래를 통해 전세계의 사람들을 열광시킨다.


방탄소년단이 아니었다면, 그들이 한국어를 배울 필요를 평생 느끼기나 했을까? 자신들이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한국어로 노래를 하니 그 노래를 따라 부르고 싶었을 뿐이고, 평생 들어보지도 못한 한국어를 하나하나 암기하면서 그 뜻을 공부했을 것이다.


방탄소년단의 팬들 중 방탄의 노래에 담긴 가치관에 빠져 입덕한 사람이 많다고 한다. 한국어 가사의 뜻을 배우고, 그 뜻이 어떤 뜻인지 알게 된 후 감동했기에 방탄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무려 '미국인'이 말이다.


영어라는 문화 자본을 누리는 이들이 방탄소년단이라는 매혹적인 문화콘텐츠에 빠져 큰 불편함을 감수하고 한국어를 배우는 것이다.(물론 이것이 지속적인 한국어 학습으로 이어지지 않을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흔히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라고 한다. 하지만 현실세계에서는 감성이 이성을 이기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해외 아미들도 그렇다. 한국어를 배울 이유가 전혀 없는 사람들이다. 평생 한국을 방문할 일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감성은 이성을 이긴다. 단지 방탄의 노래가 좋기 때문에, 수 많은 수고를 감수하며 한국어 가사를 공부한다.



물론 이런 다소 '국뽕'적인 이유를 제외하고도 나는 방탄을 좋아한다. 일단 너무 뮤비가 멋있고, 노래도 잘하고, 퍼포먼스를 보면 참 좋아할 수 밖에 없게 만든다. 허나 앞의 이유로 방탄소년단은 나에게 좀 더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방탄의 인기가 언제까지 유지될지는 모른다. 영원한 건 없기 때문이다. 허나 방탄소년단이 현재 미국을 열광시키는 이런 모습들은 훗날 '문화콘텐츠'의 중요성으로, 또 '감성이 이성을 이기는 하나의 대표적인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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