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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제힘 Oct 09. 2018

균형 맞추기 : 연극학적 이론이 당신에게 건네는 위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현대인에게 -

4차 산업혁명이니, 인공지능이니 하며 세상이 빨리 변화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내 삶만큼 빠르게 변화하는 것도 없는 것 같다.


매 학기마다 내게는 크나큰 변화들이 다가온다. 대학교 1학년, 수많은 동기들과 대학교 선배들을 만났고, 교복을 입던 나는 혼자 돈을 벌어 내 앞가림을 해야 하는 성인이 되어버렸다.

한 사람에게는 다양한 역할이 주어진다

그 이후로 나에게는 여러 '역할'이 주어졌다. 새내기, 헌내기, 선배, 후배, 군인, 과외선생님, 연인, 친구, 아들, 대외활동가, 여행가, 마케터, 취준생, 알바생, 영상 편집자 등등.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상황에 있는지에 따라서 하루에 여러 가지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던 나날들이었다.

역할 : 주어진 사회적 지위나 위치에 따라서 개인에게 기대되는 행동을 뜻하는 사회학 용어.

여러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일은 어려웠다. 각각의 역할이 나에게 기대하는 행동들은 모두 달랐고, 지식을 습득해야 하는 학생으로서의 내가 3시간 후 과외 학생에게 지식을 전수해야 하는 것과 같은 상황은 아직 어린 나에게 참으로 힘든 일이었다.  


이렇게 다양한 변화를 맞이하며 여러 역할을 수행하다 보니 '역할 갈등'이 일어났다.

역할 갈등 : 한 개인이 두 가지 이상의 지위를 가질 때 각 지위 간에 서로 상반되는 역할이 요구될 때 발생하는 것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기존의 친구들과 멀어지기도 했고, 일을 시작하다 보니 학생으로서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는 순간들도 생겼다.


이런 변화가 가장 심했던 시기는 작년 하반기였는데, 세 학생의 선생님, (복)학생, 대외활동 참여자, 친구, 아들등 다양한 역할이 주어지자 정신을 못 차렸었다. 결국 나는 일종의 번아웃(Burn-Out) 상태가 되어 올해 상반기까지 일종의 현자 타임의 시기를 거쳤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역할 갈등'에 치여서 힘들어하던 나에게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한 사회학 이론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어빙 고프만'연극학적 이론이었다.

우리는 수 많은 가면을 쓰면서 인생을 살아간다

그는 한 개인의 사회생활은 전면부후면부로 나누어지는데, 전면부에서 그는 무대에 오른 한 명의 배우처럼  '인상관리'를 하면서 자신이 맡은 역할을 수행한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자면 서비스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을 들 수 있는데, 영화관에서 근무하는 A 씨는 어떤 컴플레인이 들어오든, 어떤 진상 손님이 있든 간에 항상 웃는 얼굴로 그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다리가 아파도, 인내심에 한계에 도달해도 그는 '인상관리'를 하면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다


무대의 후면부에서는 잠시 자신의 역할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며 다시 역할을 수행할 준비를 한다. 아르바이트를 끝낸 그는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며 근무 중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자신의 역할을 잠시 내려놓는다. 동시에 그는 휴식을 취하며 다음 날 다시 한 명의 배우로서 무대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준비를 한다.




개인적으로 '맞아, 맞아' 하면서 공감했던 이론인데, 올해 초까지의 나는 전면부의 인생에만 몰입했던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요즘 들어 자주 하고 있다. 후면부는 공연을 준비하고, 휴식을 취하는 영역으로 관객 어느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공간인데, 나는 지금 내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데에만 집중했던 것 같다.


그렇기에 번 아웃 상태가 되었고, 결국 나는 휴학을 결정하게 되었다. 휴학을 하면서 느낀 점이 굉장히 많은데, 바로 '균형'있는 삶의 중요성이다. 사회적 존재로서 연기하는 전면부의 인생도 중요하지만, 연기를 준비하는 후면부의 인생도 중요하다.

좋은 사람과의 대화는 늘 위로가 된다

'직장인'으로서의 나는 일이 끝나면 잠시 가면을 벗고 영화를 보고, 사람들과 만나 하루의 일과와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눈다. 어찌 보면 나의 역할과는 관련이 없는 일들이지만, 새로운 사람들과의 신선한 대화, 경험 공유는 내게 다양한 생각 거리를 주고, 좀 더 인생을 가치 있게 살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런 케이스가 비단 나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당장 주변을 봐도 자신의 전면부의 인생을 버거워하는 친구들이 있고, 자신에게 주어진 다양한 역할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런 사람들에게 작은 위로로 '후면부의 삶을 즐길 것'을 제안하고 싶다. 무대에서 가면을 쓰고 연기하느라 고생 많았다고, 휴식을 취할 때는 전면부의 삶을 너무 걱정하지 말고 푹 쉬어도 된다고 말이다.


물론 후면부의 삶에 너무 치중하는 것도 경계해야 할 것이다. 결국 우리는 사회적 동물로서 '해야 할 일'이 있고, 자신이 이 사회에서 어떤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존재이다. 하지만 이 또한 후면부에서의 휴식, 진솔한 자신과의 대화, 소중한 사람들과의 만남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대로 있어도 된다고 합니다

결국 '과유불급'의 자세로 전면부와 후면부의 영역의 균형을 잘 유지하는 것, 우리에겐 그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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