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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흰 Dec 07. 2020

나의 안식처, 나의 고양이

내가 사랑을 주는 만큼 돌려주는 유일한 존재들


반 고흐 시리즈를 준비하며 그에 대한 영상을 보고 책을 읽으며 느낀 점은 반 고흐가 사랑이 굉장히 많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사랑에 대상에 한계를 두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 뿐만 아니라, 자기가 속한 사회, 자연환경, 그리고 그림과 예술까지 그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을 사랑했다. 다만 자신이 주는 사랑에 비해 그만큼을 돌려받지 못했을 뿐이다. 물론 사랑이라는 것이 '내가 이만큼을 주면 이만큼을 돌려받겠지'라고 계산하며 이루어지는 행위는 아니지만, 그는 모든 것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다. 유일하게 그에게 사랑을 돌려주었던 그의 동생에게 자신이 짐이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 그는 자살을 선택했다.


나는 그의 일대기를 추적하며 나와 굉장히 많이 닮아있다고 느꼈다. 나 역시 사랑이 굉장히 많은 사람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사랑을 주는 대상을 열심히 찾는 편이다. 사랑이 너무 많아서 이 사랑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를 정도로 그냥 그렇게 태어난 것 같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남들은 아이돌 하나만 덕질할 때 나는 항상 두 세 그룹씩 덕질을 했고, 영화배우 한 명만 좋아할 때 한국 배우 한 명, 미국 배우 한 명, 영국 배우 한 명, 이런 식으로 여러 사람들을 좋아했다. 한 사람에게만 사랑을 주기엔 내 사랑이 너무 넘쳐서 그것이 집착으로 이어질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게 내 연애의 문제였는지도 모르겠다. 영화, 덕질, 운동 등 평소에 그렇게 바쁘고 잘 지내던 애가 연애만 시작하면 남자에 목을 매고 집착이 심해졌다. 나 없이는 어떻게 지내는지, 주말에 연락이 안 되면 혹시라도 누굴 만나는 건 아닌지 항상 불안해했다. 여러 곳에 나뉘어 있던 나의 사랑의 대상이 하나로 집결이 되자 그게 집착으로 바뀌었다.


설령 이런 성향이 나의 문제라고 할지라도 그 누구도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내가 주는 사랑만큼 돌려주는 사람도 없었다. 처음 만날 땐 밝고 당당해 보여서 좋았는데 만나면 만날수록 우울하고 어두운 사람이라고 나를 피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나는 항상 내가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사랑조차 받지 못하고 버림받았다.


그럴 때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이자, 가장 닮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인 반 고흐가 생각났다. 사랑하는 여자가 생겼는데 알고 보니 사촌이고,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어 같이 살림까지 차렸는데 집안에서 반대하고, 유일하게 사랑을 서로 주는 관계였던 동생이 자신을 짐으로 생각하게 될까 자살하고. 그는 나처럼 너무나도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사랑은 제대로 받지 못한 채로 이 세상을 떠났다.


어쩌면 그 받지 못한 사랑을, 미처 주지 못한 사랑을 예술로 승화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남은 일생을 그림을 그리는 데에 바쳤다. 자신의 사랑을, 열정을,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사람들로부터, 가족으로부터 상처를 받는 날이면 가장 먼저 붓을 들었다. 이런 그의 일대기를 읽으며 나 역시 글쓰기를 시작했다. 이러면 조금은 내가 나아지지 않을까, 어쩌면 나의 우울증이 좋아지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


하지만 우울증에 가장 좋은 보약은 글쓰기도, 새로운 사랑도, 정신과 약도 아니라 나의 고양이였다. 지금 남편은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는데, 나 역시 그 고양이의 매력에 빠져 유기묘를 두 마리 키우게 되었다. 처음엔 나를 너무 무서워해 도망 다녔지만, 지금은 그 누구보다도 나를 좋아하는 개냥이들이 되었다. 두 고양이를 키우게 되며 느낀 건 이 아이들은 계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사랑해주는 만큼 나에게 사랑을 돌려준다.


첫째는 항상 나를 깨워준다. 그루밍을 하다 내 손가락도 같이 그루밍을 해준다. 동생을 입양했을 때 많이 무서워 도망 다녔지만 지금은 그 누구보다도 동생을 사랑해주고 잘 받아주는 오빠가 되었다.

둘째는 항상 나를 보고 있다. 멀리서도 눈빛이 느껴지면 언제나 둘째다. 마치 cctv처럼 내가 거실에서 tv를 보던 침대에 누워있던 항상 내 옆에서 나를 빤히 바라본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빠를 너무 좋아해서 항상 꼭 붙어 다니는 것이 너무 사랑스럽다.


이전까지 나는 그 누구로부터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전에 받은 상처로 글을 쓰다 결국 극복하지 못하고 빨리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나를 그 누구보다도 이해해주는 나의 남편과, 내가 주는 사랑만큼 돌려주는 고양이들을 보며 느꼈다. 아, 아직은 좀 살만하구나.


어떤 이들은 나에게 불쌍하다 느낄지도 모르겠다. 사람에게 상처를 받아 사랑받지 못하고 결국 동물에게 의존하게 되는구나 하고 말이다. 하지만 집에 들어오면 나를 반겨주는 저 둘의 존재가, 눈을 뜨면 항상 기다리고 있는 나의 고양이들이, 내가 어딜 가든 졸졸 따라다니는 나의 아이들이 나에겐 너무 사랑스럽고 존재 자체가 내가 그들에게 주는 사랑을 돌려받는 것 같다.


정신과를 다니며 상담을 하고 이렇게 글을 쓰며 나의 상처를 들춰내다 보면 언젠간 나도 우울증이 괜찮아질 날이 올 것이다. 그동안 나의 남편과 나의 고양이가 내가 주는 사랑만큼 나에게 돌려주고, 나는 그 사랑에 못 이겨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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