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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흰 Mar 31. 2021

열정과 애정의 결과는 위대함이다

그림으로 자신의 삶을 치유했던 고흐


책 <반 고흐, 영혼의 편지>를 다시금 읽으며 느낀 것은 고흐의 그림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는 점이다. 몇 개의 편지만 읽어도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림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그림 이외의 어떤 것에도 주의를 빼앗기고 싶지 않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나 자신을 억제할 수 없고, 손을 뗄 수도, 잠시 쉴 수도 없었다

두 글귀를 통해 고흐가 그림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얼마나 그림에 몰두한 상태였는지 알 수 있다.


그에게 그림은 치료법이기도 했다.

내 치료법이 너에게도 통하히라 생각하는데, 그건 툭 트인 야외로 나가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 주된 치료법은 그림이다.

특히나 그가 몰두했던 것은 자연을 그리는 것이었다. 인물을 그리게 될 경우 모델비가 발생한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겠지만, 그의 말처럼 "하늘이 보여주는 갖가지 색채와 색조"에 그는 매료되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한다.

화가의 의무는 자연에 몰두하고 온 힘을 다해서 자신의 감정을 작품 속에 쏟아 붓는 것이다 ... 만일 팔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면 그런 목적에 도달할 수 없다

고흐의 그림에 대한 열정은 여러모로 나에게 많은 영감을 준다. 한 때 화상이었고, 목사였고, 탄광에서 일했던 그는 결국 화가가 되었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봉사정신, 엘리트 층의 그림에 대한 환멸감, 그리고 자연을 바라보며 키운 분석과 관찰 능력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직업을 찾은 것이다. 바로 화가이다. 그의 나이 27세였다. 그리고 그가 그림을 그렸던 10여 년 동안 그는 100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이것이 그를 위대한 화가로 부르는 이유다.


어렸을 때부터 나의 꿈은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이었다. 그게 어떤 일이던지 간에, 감독이던 제작이던 연기던 그것도 아니면 완성된 작품을 홍보하던, 어떤 방법으로든 그 과정 속에 내가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나는 교사가 되었다. 중국어도 지지리 못하면서 중국어를 가르치는 중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칼퇴와 방학, 육아휴직이 보장되는 안정적인 직업이자 평생토록 나에게 실망만 했던 나의 부모님을 만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기 때문이다. 역시나 전자보다는 후자의 이유가 더 커서 임용고시를 준비했고 첫 해만에 덜컥 붙어버렸다.


준비되지 않은, 직업에 열정이나 애정이라곤 없는 내가 교직사회에서 버티는 것은 3년 짜리 유통기한이 있는 통조림과 같았다. 그 통조림 속에서 '어린 나이에 임용고시를 붙은 똑똑한 애'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떵떵 거리며 다니는 것도 3년이면 충분했다. 통조림에 갇혀 산 지 3년 째, 나는 다시 통조림 밖의 세상이 궁금해졌다.


임용고시를 준비할 때 나는 내내 이 생각 뿐이었다. '나중에 선생님이 되면 칼퇴하고 맨날 영화만 보러 가야지!' 하지만 영화를 볼 때마다 후회가 몰려왔다. '저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 건 난데, 저 자리에 있어야 하는 건 난데...' 어렵게 찾은 문을 코 앞에 두고 쓰러진 사람 마냥 나의 선택을 후회했다. 내가 임용고시에 붙었다고 했을 때 왜 그리도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했는지 뒤늦게 이해했다.


자살시도에 실패하고 병동에 갇혀있는 요즘, 나는 새로운 기회가 나에게 다가왔다고 생각한다. 모든 이들이 반대하고, 사주에서도 공무원 할 팔자라고 나와있다지만 내 운명을 내가 정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도래했다. 새로운 인생을 살 기회 말이다. 남들은 빠르면 10대, 느려봤자 20대 초중반에 끝날 진로 고민이 이제야 시작된 것이다. 아니 어쩌면 나의 진로는 항상 정해져 있었고, 단지 조금 돌아갈 뿐이다. 직업적인 면에서도, 생활적인 면에서도,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정서적인 면에서 진짜 '나'를 되찾고 싶다. 어쩌면 현실적인 이유로, 혹은 또 다른 이유로 외면해왔던 진짜 나를 되찾을 시간이다.


나는 지금 내가 선택한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공부하지 않고 노력을 멈춘다면, 나는 패배하고 만다. 묵묵히 한 길을 가면 무언가 얻는다는 게 내 생각이다 ... 그 목표는 더 명확해질 것이고, 느리지만 확실하게 성취되는 것이 아닐까

이 글은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수험생에게는 목표하는 대학이, 취준생에게는 목표하는 기업이 될 것이다. 허나 나에게는 '나를 되찾기'가 목표이다. 우울증에 잠식되어 잃어버린 나 자신을 되찾는 게 나의 목표다. 부모님의 기대로, 현실적인 여러 이유로 택해버린 그 길을 떠나는 용기를 갖는 건 역시 나의 목표다.


꽤 오랫동안 나는 우울증과 자기 연민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무언가를 시작할 힘도, 그만둘 힘도 없었다. 그렇다고 지금 내가 다시 태어났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죽음의 길 앞에서 다시 돌아온 것도 나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여러 이유로 인해 사라진 나를 되찾는 일이다. 내가 무엇을 좋아했는지, 어떤 일을 할 때 행복했는지, 누구와 함께 있을 때 안정적인지 고민할 시간이다.


진짜 나를 되찾은 이후 내가 선택한 길에 남을 것인지, 아니면 떠날 것인지 결정할 것이다. 그리고 그 책임 역시 내가 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결코 두렵지 않다. 새로 시작하는 용기보다 떠나는 용기가 더 어렵기에, 다행히도 내 주변에 응원하는 이들이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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